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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hwi Cho Jul 09. 2016

채식주의자가 되다

삶의 또 다른 전환점


나는 불과 3년 전 까지만 해도 삼겹살과 치맥 없이는 못살던 대한민국의 평범한 식습관을 가진 사람 중 한명이었다. 아침에는 항상 돼지고기 찌개와 생선을 먹어줘야 했고, 친구들과 만나면 삼겹살, 족발, 곱창, 치킨집을 하루에 다 돈적도 있을 정도로 거의 육식에 가까운 식성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금은 내 와이프가 된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됐다. 그녀는 우리나라와 참 비슷하지만 지구 정 반대편 아일랜드에서 날라온 유럽인이었고, 살생을 혐오하고 동물을 매우 사랑하는 채식주의자 였다. 사실 미국 유학시절 채식주의자들을 많이 봐 왔고, 내 룸메이트 중 한명도 채식주의자 였지만, 내 인생에 채식주의자와 연애를 해 본 적은 없었고, 사실 채식주의자의 개념조차도 모호하던 시절이었다.


지구 반대편 아일랜드에서 날라온 디즈니월드의 공주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그녀는 채식주의자였다.


채식주의자는 종류가 여러가지가 있지만 (건강상 채식을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는 다음과 같다.

동물권 보호에 대한 개인적 신념으로 인해 동물로 분류되는 고기, 생선등의 섭취를 거부하고 과일, 곡식, 야채 등 식물성으로 구성된 음식만을 섭취하는 사람들.

저런 얘기를 듣게되면 흔히들 묻는 질문이 있다.

그럼 도데체 먹을 수 있는게 뭐야? 샐러드?


사실 채식주의자의 역사도 깊고 영양학적으로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단이 많이 발달해 왔기 때문에 우리가 먹는 거의 대부분의 음식 메뉴들을 고기와 생선을 뺀 채식으로 만들어 먹는 것이 가능하다. 우리 부부도 사실 먹는 식단은 볶은밥, (비건)스테이크, 두부스테이크, 파스타, 야채볶음 등등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먹는 음식 메뉴들과 크게 다를게 없다.


자주 만들어 먹는 두부 스테이크 이다.


그녀가 채식을 시작한 것은 10살때 부터라고 하는데 계기는 이렇다. 어느날 가족끼리 양치는 농장에 놀러가서 양들과 뛰어 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에 왔다. 하필 그날 엄마가 저녁 메뉴로 양고기 요리를 했다. 그녀가 혹시 이게 아까 뛰어놀던 그 양들로 만든 음식이냐고 물었고, 엄마는 같은 양은 아니지만 대략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때 엄청난 충격의 쓰나미를 겪은 이후부터 채식주의자를 선언했다고 한다.


이렇게 귀엽게 웃고 있었던 어린 새끼양이 내 저녁 식탁에 올라와 있는 메커니즘을 깨달은 것이다.


이런 그녀의 영향을 받아 결국 나도 채식주의자가 되었지만, 내가 채식주의자된 과정은 그녀의 그것과 매우 다르다. 그녀는 어떤 단편적인 사건이 계기가 되어 채식주의자가 되었지만, 사실 나는 그런 단편적인 사건같은건 없다. 물론 사랑하는 마음에 모든것을 닮아간다지만, 내가 채식주의자가 된건 순전히 개인적인 고민과 성찰의 시간을 통해 점진적으로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왜 채식주의자가 되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가축'이라는 인간의 행위에 대한 반대의 뜻으로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가축을 반대한다.


가축이라 함은 사전적으로는 인간이 집에서 기르는 동물들을 의미하겠지만, 나는 넓은 의미로 인간이 대량공급을 위해 집단적으로 사육해서 도살하게 되는 동물들을 가축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사실 생태계에서 먹이사슬이라는 건 필연적인 것이다. 풀을 먹는 초식동물이 있고, 이를 잡아먹어야만 하는 육식동물이 있는 것 처럼, 호모사피언스도 사실 태초에는 이런 먹이사슬의 한 지점에 위치한 다른 동물들 중 하나였을 뿐이다. 이들은 수렵과 채집활동으로 영양분을 섭취하였고,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필요하면 사냥을 하기도 하고, 때론 다른 더 강한 육식동물에게 잡아먹히는 존재가 되기도 하였다.


중요한 것은 우리 호모사피언스는 먹이사슬의 일원이었지, 먹이사슬을 벗어나서 모든 동물 위에 군림해서 그들을 대량 사육해서 도륙하는 존재는 아니였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현재 인간의 가축 행위에 있어서 그 대상이 되는 동물들의 인생에 대해 고민해 보기 시작했다. 원래 생태계라는건 먹이사슬 하에 나름의 생존권을 누리며 모든 동물들이 자유롭게 인생이란 걸 누리며 살 수 있게 해 준다. 사자의 먹이가 되는 사슴일지라도 사자에게 사냥당하기 전에는 자유롭게 풀을 뜯고 뛰어 다니고 있었을 것이고, 또 어떤 사슴은 사냥당하지 않도록 나름의 생존전략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만든 가축 세상은 모든 동물들이 생존권을 박탈당하고, 상위 먹이사슬에게 사냥당할 100%의 확률이 된 삶을 강요받는 세상이다. 심지어 이 운명은 세대를 오가며 대물림되고, 한번 이 운명의 속박에 구속당하게 되면 자식의 자식까지 평생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무자비한 운명이다.


가축세상에서는 생존권을 박탈당하고 상위 먹이사슬에게 100% 사냥당하는 삶을 대물림 하는 세상이다.


 

나도 그렇고 내 와이프도 그렇고 우리는 남에게 채식주의자가 되라고 강요하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채식주의라는 건 일종의 신념같은 거고 개인의 신념을 남에게 강요하는 행위는 이유를 불문하고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나의 특이한 식문화 때문에 같이 식사를 하는 상대방의 자유가 제한되는 부분에 매우 미안한 마음을 가질때가 더 많다. 


또한, 이게 어떤 목적성이 있는 운동 같은것도 아니다. 즉, 내가 가축을 반대하는 뜻에서 채식주의를 한다고 진짜 가축이 없어진 세상, 모든 사람들이 고기를 안 먹게 된 세상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실 그런 세상은 오히려 또 다른 심각한 환경문제를 초래할 것 같다. 내 채식주의는 그냥 인간의 폭력성이 나날이 극대화되가고 있는, 그리고 내 스스로도 자중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폭력적으로 변하기 쉬운 이 세상에서 나름의 조그마한 자기 성찰, 또는 자기 방어 기작을 마련하기 위한 몸부림 정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모든사람이 채식주의가자 되면 오히려 이 푸른 강산이 더 남아나지 않을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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