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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소금 Feb 08. 2017

디자이너+어른으로 함께 성장하기

2016년 10월의 일기

자아 잃어 버리는 직업

어디선가 우스갯소리로 "디자이너는 자아 잃어버리는 직업”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 클라이언트 잘못 만난 경우에) "내 의견은 전혀 없이 상대가 원하는대로 껍데기만 만들어 주는"사례를 들면서 나온 말이었다. 또 아직까지 많은 프로젝트에서 "디자인은 선택사항"이기 때문에 직무적으로 존중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이유도 있었다.


나도 위의 내용을 포함한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로 한 때는 "디자이너가 되지 않겠다."는 생각을 ‘대학 와서’ 한 적이 있다. 디자이너는 내가 꿈꿔 왔던 것보다 멋있지 않았고, 돈도 못벌었다. 무엇보다 디자인 자체가 너무 어려웠다. 물론 지금도 어렵고, 무언갈 더 알게 될 때마다 새로운 고민이 생기지만 그때 느낀 어려움은 그냥 디자인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좋은 걸' 만들고 싶어

이 오래 못살 것 같은 직업을 전공으로 정한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보통 과 동기들 중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 미술학원을 취미로 다니다가(혹은 예중, 예고를 나오거나) -> 디자인 전공 선택'의 흐름을 탄 친구들이 많은데, 나는 사실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그림 그리는 걸 그렇게 좋아한 편은 아니었다. 한번도 꿈이 ‘화가’였던 적은 없는데, 재밌는건 초등학교 4학년 때 장래희망에 ‘악세사리 디자이너’라고 적었던 기억이 난다. 그 외에 헤어 디자이너, 문구 디자이너 등 수식어만 바꿨지 무언갈 '보기 좋게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은 꼬꼬마 때부터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구의 명암을 이해해서 사실적인 질감의 돌을 그린다거나, 일명 ‘사고의 전환’이라고 불리는 홍대 실기 전형에는 그닥 재능이 없었다. ‘연필깎기와 기차를 이용해 미래의 운송수단을 그리시오.' 따위의 러프 스케치를 뜨는게 매달 50만원 어치의 미술학원 스파르타 훈련으로 형성된 기본기, 그 이상은 발휘가 어려웠다. 하지만 별개로 시각디자인과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고, 빨리 대학에서 가서 좀 더 ‘디자인 다운 디자인’을 해보고 싶었다.



과제가 많아서?

나는 언제나 공교육을 착실히 따라온 학생이었다. 그런데 딱히 독한 성격도 아니어서, 공부는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만큼만 했다. 공부 자체보단 체력이 약해서 미술학원이랑 학교 기숙사를 왔다갔다하는 일이 더 힘들었다. (아, 멘탈도 약해서 맨날 부서지고 그거 다시 붙이느라도.)


그렇게 해서 어찌어찌 원하던 대학에 딱 와서 1학년 초반엔 그 승리감에 계속 도취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서울 한복판, 그것도 가장 정신 없는 동네 중 한 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과, 주변을 둘러보면 멋지고 세련된 사람들이 널려 있으니 그런 환경적인 요소들도 나를 늘 들뜨게 했다. 전공상 과제도 엄청 많아서, 늘 뭔가 정신이 없었다. 2학년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과제는 여전히 많았으며, 본격적인 디자인스러운 과목들을 수강하기 시작했고, 소모임 활동을 하면서 타이포그래피에 잠깐 재미를 붙이기도 했다. 나는 고등학교 때 공부 했던 것처럼 늘 교수님이 내주는 과제를 착실히 해갔다.


그런식으로 매학기를 보내는데 2학년 2학기가 딱 끝내니까 스물스물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회의감은 3학년 1학기 중에 극단을 치닫는 우울함으로 바뀌었다. 전공 수업의 대부분은 크리틱 형식으로 매주 해온 과제들을 다같이 벽에 걸거나 앞에 나와서 발표하는데, 매주 내 작업을 모두 앞에서 보이는 게 너무 힘들었다. 다른 친구들은 매번 뭔가 더 멋있는걸 생산하는 것 같은데, 내가 하는건 논리도 없고 완성도도 떨어졌다. 당연히 보람도 없었다. “해야 되서 한다.” 는 마음 가짐이 5학기 째를 넘어서니까, 몸도 지치고 점점 아무 생각도 없어지는 것 같고 그냥 인생 일시정지 하고 싶다는 생각뿐 이었다. 그렇게 가고 싶어했던 대학교에 왔는데, 즐겁게 놀지도, 그렇다고 작업을 열정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었다. 엄마한테 힘들다고 말을 하면, “과제가 많아서 그렇냐” 는 대답이 돌아왔는데, 그러면 오히려 내가 겪는 괴로운 감정들이 고작 ‘숙제가 많아서’ 따위인가 라는 생각에 더 짜증이 났다. 학교 생활을 일시정지 하고, 좀 더 새로운 하루하루를 마주하고 싶었다.


3학년 1학기 종강 즈음 야작하던 도중에 엄마와 통화를 하다가 삼십분이 넘도록 울기만 한게 생각이 난다. 그리고 다다음날인가 우연히 한 마케팅 에이전시의 인턴 공고 모집 요강을 보았다. 네이버에서 후기를 찾아봤는데 "돈을 많이 준다."라는 말이 있길래, 여기서 일을 하면 빨리 돈을 모아서 유럽여행을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운 좋게 인턴에 뽑혀서 6개월 동안 회사를 다니고, 700만원으로 여행도 다녀왔다. 인턴을 할 당시에 21살이었는데 같이 노는 친구들 사이에선 일을 가장 일찍 시작한 사례였다. 그리고 그 사실이 전에 전공 수업에서 느끼지 못했던 '내가 또래에서 앞서 나가고 있다는 안도감’이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외에도 일을 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진짜 어른으로 성장하는데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직도 성장중이지만.  




어떤 디자이너 < 어떤 사람

“디자이너가 되지 않겠다."고 한 21살의 생각은,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내가 무엇으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다르다는걸 깨달으면서 바뀌었다. 그리고 근 1년 사이, 그니까 2015년 복학 이후로 많은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었고, 현재 디자이너로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 성장엔 디자인 뿐만 아니라 '어른'이 되간다는 느낌도 크다. 내가 좀 더 완성도있는 인간이 되가는 느낌이랄까. 나중에 보면 작은 부분일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내가 "어떤 디자인을 잘 하는 디자이너"인지 고민하기 전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착실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지금 내가 이렇게 디자인디자인거려도 어느날 갑자기 다른 일을 하게 되고, 그 안에서 재능을 발휘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내가 어떤 영화를 좋아하고, 어떤 음악을 들을 때 행복하고, 화가 들끓을땐 뭘 해야 평화로워지는지 아는 것, 이런 것들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아야, 어떠한 환경에서도 날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게 생각보다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과목 공부하듯이 나에 대해서도 계속 공부를 해야한다. 이렇게 끄적이는 것도, 공중에 떠다니는 스스로에 대한 생각을 공부처럼 '자료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늘 성장하고 싶다. 좋은 사람이 되서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영향으로 미치고 싶다. 



- 2016년 10월의 생각 옮김.

유소금 소속스포카 직업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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