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팀에선 어떻게 협업해야 할까?
현 회사로 이직과 동시에 나에게도 드디어 '프로덕트 디자인팀(이하 디자인팀)'이 생겼다. 늘 1인 디자이너로 일해왔는데 최초로 디자이너 동료가 생긴 터라 감격스러웠다.
처음에는 그냥 팀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다. 내가 디자인을 하면 누군가에게 피드백이 오는 것 자체가 감동이었다. 하지만 온보딩 기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진짜 일'을 하게 되면서 협업은 더욱 긴밀해졌고 자연스레 어려운 점도 생겼다. 대부분 커뮤니케이션이나 프로젝트 매니징에 해당했다.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은 디자이너와 타 직군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줄 알았는데 디자이너끼리 협업할 때의 어려움은 또 다른 결로 존재했다.
요새는 ‘회사에서 꽤 중요한 랜딩 페이지를 빨리 만들어 내야 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이 프로젝트에서 디자이너끼리의 협업은 이런 거구나, 하고 1일 1깨달음 하는 중이다. 나의 첫 디자인팀에서 좌충우돌하며 정말 많이 배우고 있다.
랜딩 페이지 프로젝트의 첫 협업 방식은 프로젝트 킥오프와 동시에 각자 레퍼런스를 찾고, 취합한 레퍼런스를 공유하는 미팅을 거친 후, 다시 각자 디자인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C레벨 분과 함께하는 첫 디자인 미팅에서 "님은 이렇게 디자인했고, 다른 님은 저렇게 디자인을 했고..."를 설명하며 서로의 시안을 쭉 훑었다. 그런데 그러고 나니 '그래서 이제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C레벨 분이 "어느 분이 리더예요?"라고 물었는데 대답하기 어려웠다. 우리 팀엔 딱히 헤드나 디자인 팀장이라는 직함이 없다. 시니어가 한 분 계시긴 하지만 셋 모두 입사한 지 4개월에서 8개월 내지고, 큰 프로젝트를 함께 킥오프 한 게 처음이라 협업 방법 대한 논의가 전무한 상태였다.
'누가 리더(처음엔 메인 작업자의 개념으로 썼지만 나중엔 오거나이저, 커뮤니케이터 정도로 바꿔 정의했다.)냐'를 딱 부러지게 정하려고 하니 개인에 따른 프로젝트 자체의 흥미, 프로젝트 리딩 경험, 향후 가져갈 수 있는 크레딧 등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아 참 애매했다. 누가 나타나서 땅땅땅 "너는 이거 하고 너는 이거 해!"정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너무나 애매한 상황에서 가위바위보(...)로 급하게 리더를 정했지만 이때의 리더는 메인 작업자의 개념이었고 협업에 도움이 되는 역할은 아니었다. 피드백을 주는 사람은 있지만 어쨌든 작업자는 1명이었다. 두(head..) 당 시안을 생각하면 3명밖에 안 되는 작은 팀의 한 명, 한 명의 인력이 너무 소중했고, 제한된 자원의 효율적인 활용 방법을 찾고 싶었다.
문제의식을 느낀 후 여러 번의 회의를 거쳐 작업 방식을 바꿨다. 우선 각자 시안을 내기 전에 무엇을 디자인할지 페이지 안에서의 스토리 텔링을 협의했다. 이번 랜딩 페이지 프로젝트는 빠르게 one page로 나와야 하는 프로젝트였고 그 안에서 핵심의 내용을 잘 담는 게 중요했다. 어떤 콘텐츠를 가장 먼저 보여줄지 전략을 함께 짰다. 콘텐츠 기획도 디자인팀이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어렵기도 했지만, 콘텐츠를 짜면서 동시에 입혀질 UI를 고려하다 보니 UI와 콘텐츠가 어떻게 상호 작용될지 그리기 쉬웠다. 콘텐츠의 뼈대를 정하고 나니 셋이 다르게 시안을 내면서도 엉뚱한 길로 새지 않을 수 있었다.
우리 팀엔 일주일 중 하루는 디자인팀끼리 셀프로 회의실에 갇혀서(?) 3~4시간 동안 정말 디자인만 하는 'Design Lab' 시간이 있다. 우리 회사에서 디자인 팀은 워낙 운영이나 타 팀 커뮤니케이션 업무가 많아서 어떤 때는 디자인을 하고 싶어도 도저히 디자인할 시간이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이곤 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너무 길게 지속되면 디자이너로서 동기 부여할 의욕을 떨어 뜨린다. 그래서 좀 더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JD에 가깝게 성장하고 동기 부여하고자 Design Lab 시간을 만들었다. 그땐 모두가 '디자인'을 한다.
이번 랜딩 페이지 프로젝트도 Design Lab에서 시안을 함께 쳤다. 셋이서 다 같은 작업을 하고 있으니 실시간으로 질문하며 인터렉티브 커뮤니케이션 하기가 정말 좋았다. 작업 중에 가볍게 툭툭 주고받는 대화에서 나오는 피드백은 주는 이 받는 이 모두 부담 없고 좋았다. "우리 4시까지 작업 후 리뷰해요!" 하는 식으로 시간도 정해 놨다. 평소엔 슬랙이나 지라 같은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하지만 그 시간만큼은 일부러 구두로 소통하려 노력했다. 마치 3시간의 작은 해커톤 같았다.
시안은 되도록 한 사람이 많은 시안을 내도록 합의했다. 한 사람이 베스트 시안 하나를 위해 파고드는 것보다 다양한 콘셉트의 복수 시안을 낸다. 복수 시안은 서로의 아이디에이션에 한계를 깨고 협업에서 '모두의 베스트'를 추출하는 데 용이하다. 피드백에서도 시안 A에 대해서만 이러쿵저러쿵 말하기보다 "이런 부분은 B에서 따오고, 저런 부분은 C에서 따오는 게 어때요?" 하는 식으로 말하는 게 더 좋은 쪽으로 방향을 좁히기 좋다. 복수 시안에 대한 이야기는 이어 얘기할 김창준 저의 <함께 자라기> 책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
디자인팀은 매주 한 시간 김창준 님의 저서 <함께 자라기>라는 책을 읽고 토론한다. (회사 크리에이터팀에서 이 책은 aka'초록 책'으로 바이블처럼 불린다.) 흔히 '에자일'이라는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방식을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책이다. 조직 관리와 생산성 등을 다루며 한 마디로 '일 잘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주로 개발 조직을 예시로 들지만 디자인 팀에도 적용할 만한 주옥같은 내용이 많다. 책의 사례와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비교해보며 적용할 만한 점을 함께 찾고 이야기 나눈다. 다른 팀원분들이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일한 경험이 풍부해서 거기서 일했던 방법도 같이 나누며 참고했다.
매주 딱 한 시간 이지만 '어떻게 하면 일을 잘할지'에 함께 시간을 투자하는 게 팀의 사기충천과 환기에 정말 좋은 영향을 준다. 그 시간만큼은 당장의 실무에서 한 걸음 물러나 프로젝트와 팀이 나아가는 방향을 점검할 수 있다.
일 잘하기를 공부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책과 토론을 소개했지만 각자 상황에 어울리는 수단으로 진행하면 된다. 우리 팀은 기회 닿는 대로 각자가 컨퍼런스, 스터디 등 외부로 배우러 나가는 것도 지향하는데, 배운 것들을 팀에 돌아와 공유하는 시간도 좋다. 팀이 잘하려면 일단 나부터 잘해야 하고 팀의 성취는 결국 나의 동기부여와 성장에도 직결되니 선순환이다.
스스로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마무리할 때의 만족만큼 협업의 성취에서 이뤄내는 기쁨도 짜릿하다는 걸 요즘 느끼고 있다. 앞으로도 더 똑똑하게 잘 일하며 작은 팀에서 크게 성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