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마주한 브런치의 하얀 백지......까지 쓰고 한참을 가만히 앉아있었다. 이 문장은, 거짓이니까. 진실을 고백하자면, 이 화면을 오랜만에 마주한 건 아니었다. 지난 몇 달간 이 화면을 켜본 적은 정말 많았다.
뭔가 써야지, 새로운 걸 써야 해, 이대로 가다간 애써 키운(?) 내 부캐가 사라져버릴지도 몰라.
그건, 일종의 압박감이었다. 부캐의 존재가 본캐의 정서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고, 부캐의 능력치를 키워가는 것이 앞으로 남은 삶의 과제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니까.
그럼에도, 새로운 글을 쓰는 것이 참 어려웠다. 오늘은 기필코! 잡소리라도 쓰고 말겠다는 다짐을 하며 앉은 자리. 하얀 화면 위의 커서를 노려보고만 있다. 몇 년 전의 나는 어떻게 그렇게 쉽게쉽게 글을 써댔던 걸까. 그 녀석은 누굴까.
처음엔 단순한 글태기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여러 번 이 화면을 꺼버리면서 '단순한'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욕심을 내고 있었다. 좀 더 완성도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훌륭한' 글을 발행하고 싶다는 욕망. 그 욕망의 이유 또한 짐작할 수 있었다. 철없는 부캐의 고향같은 이곳을, 본캐 주변사람들이 알아가고 있는 상황. '나 책 냈어' 하는 그런 말에 걸맞은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 그런 헛되고 헛된 욕망이 글 쓰는 걸 망설이게 만들고 있었다. 그래. 나는, 역시나 겁쟁이니까. 평가는 두려운 거니까.
나의 본캐릭터. 오프라인 현실 위에서 아등바등 하루를 보내는 나의 본캐릭터는 엄마이자 직장인이다.
7시 10분. '어제의 나'를 욕하며 힘겹게 눈을 뜨는 직장인.
어젯밤의 본캐는, "아직까진 졸리지 않아"를 되뇌며 "조금만 더”를 외쳤더랬다. 책을 읽어도 조금만 더, 글을 써도 조금만 더, 혼술을 마시면서도 조금만 더. "이렇게 기분전환하는 게, 자는 것보다 더 유익할거야"라는 놀라운 합리화를 밤마다 반복하는 그런 직장인.
어젯밤의 나는, 모든 피곤과 숙취를 감당하며 눈을 뜨게 될 오늘의 나를 잘 알고 있었음에도 그랬다. 쫓기는 듯 살아가는 본캐에게는 도피처가 필요했으니까. 어디든 몰입해 현실을 잊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으니까.
다시 스르르 감기는 눈. 깜짝 놀라 일단 이불을 걷어차며 몸을 일으킨다. 비척비척 걸어가 씻으면 일단은 성공. 아이의 아침을 차리고, 내가 먹을 점심 도시락을 챙기고, 7시 40분엔 아이를 깨운다. 아이가 밥을 먹는 동안 얼굴에 색칠을 하고 함께 집을 나서는 건 8시 25분.
8시 50분 즈음이 되면 영혼이라곤 1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안녕하십니까"를 읊조리며 사무실로 출근. 가장 먼저 할 일은? 커피 투여다. 카페인을 투여해 정신을 차리려 애써보지만, 어젯밤의 '조금만 더' 랠리에 기절해버린 녀석은 좀처럼 제 자리로 돌아올 마음이 없는 듯하다.
18시 퇴근. 집으로 돌아와 아들과 상봉. 저녁을 준비하고 먹고 치우면 20시 30분. 아이에게 이런저런 숙제를 시키고, 아이가 책상에 있는 동안 씻고 집안을 정리하고 이런저런 수다까지 떨다보면 22시.
이 시간 즈음 아이에게 여러 번 외치는 말.
"잘 시간이야!!! 자야 해."
이건 어쩌면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재우고 거실로 나오며 다짐에 다짐을 더한다.
"오늘은 진짜 12시에 자고 말 테다!!!!"
하지만 역시, 조금만 더 '즐거운' '나만의 시간'을 누리고 싶어지는 욕심. 결국 "이렇게 기분전환하는 게, 자는 것보다 더 유익할거야"라는 놀라운 합리화가 빛을 발하고, 내일의 내가 모든 피곤을 감당하며 눈을 뜨게 될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또 조금만 더 조금만 더.
7시 10분. '어제의 나'를 욕하며 힘겹게 눈을 뜨고, 다시 스르르 눈을 감았다가...
반복. 반복. 반복.
소중하고 소중한 나의 부캐릭터. 녀석은 1년의 육아휴직 중에 만들어졌다. 이혼소송을 시작했고, 코로나는 난리였고, 이러다 정말 정신줄을 놓을 것 같다는 위기감에 육아휴직을 질러버렸던 상황.
돌아보면, 이렇게 길게 쉬어본 적이 없던 삶이기도 했었다. 대학 졸업 후엔 언론고시를 치겠다며 난리를 쳐댔고, 어쩌다 입사해서 지금까지 10여 년. 그러니 휴직을 앞두고는 '여유' '휴식' '쉼' 그런 것들을 내 삶에 찾아주자고 대찬 다짐을 하고 있었다. 대낮에 브런치맛집 탐방을 다니며, 슬렁슬렁 산책이나 하는 그런 날들을 꿈꿨었다. 하지만 웬 걸.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조용해진 집에 있으면 온갖 불안들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앞으로 잘될리가 없잖아. 이대로 살아서 답이 나오겠냐. 혼자 애를 어떻게 키울 건데. 이혼녀 되는 거 감당할 수 있겠냐. 애는 괜찮을까. 이 자리에서 그냥 증발해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여전히 위태로운 상태였다. 집중할 무언가, 그 무언가가 정말 간절했었다. 타고난 불안도가 높은 인간에게, 갑자기 주어진 여유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매일매일 글을 썼다. 출간같은 건 꿈도 꾸지 않았던 시절. 그저 도망쳤다. 이곳, 하얀 화면 위로. 하소연, 넋두리...? 이름 붙이기도 힘든 온갖 감정들을 마구잡이로 써댔다. 나의 부캐릭터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글인지 똥인지 모를 것들을 성급하게 쏟아내는 수다쟁이 녀석. 부캐는, 본캐의 살풀이를 담당하는 그런 존재였다.
심지어 익명의 공간이었다. 본캐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한 곳. 무슨 글을 쓰든, 무슨 문장을 만들든 크게 고민도 하지 않았다. 이건 부캐의 영역이니까. 본캐가 뱉고 싶어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앞뒤 가리지 않고 마구 써버렸다. 복직이 다가올 때쯤, 이 글들을 모아 엮고 싶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 욕망은 본캐의 것이었을까, 부캐의 것이었을까. 어쨌건 두 녀석은 의기투합했다.
'휴직 나라에서 떠나야 하는 이 마당에, 기념품 하나 만들어보자.'
딱 그런 마음. 뭐 어때? 안되면 말고. 그러다 투고 성공. 어라?
2020년 9월에 휴직을 했고, 2021년 6월에 첫 책을 계약했고, 8월에 최종 원고를 넘기고 9월에 복직. 2022년 첫 책이 나왔다. 세상에. 맙소사.
이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자 부캐의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기 시작했다. 본캐의 살풀이나 담당하던 처지에서, 본캐의 자존감을 견인하는 것으로 주어지는 역할도 바꼈다. 책이 나온다는데 자랑하지 않을 힘이... 본캐에겐 없었다. 가뜩이나 우울한데, 이거라도 자랑할래!! 욕망에 눈이 멀어 버린 본캐는, 마주하는 사람들에게 툭툭 부캐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여기까진 큰 무리가 없었다.
문제는 두 번째 책 계약 후였다. 어깨에 잔뜩 힘을 준 부캐가 말했다.
"본캐! 얼른 자랑을 하거라!"
부캐의 명령을 받는 신세가 되어버린 본캐는, 아주 신이 나서 여기저기 또 자랑질을 해버렸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도, 이혼을 하는 것도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책을 내는 건 자랑하고 싶었다. 그리고 더 큰 열등감 하나. 내가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인들에게 "나 괜찮아"를 매우 적극적으로 알리고 싶었다. 나 괜찮아!! 나 아직 살아갈 힘이 있는 사람이야!!!
나쁜 소식만 전하는 외길 인생을 수년간 보낸 나는, 좋은 소식을 전할 때의 기분을 첫 책을 통해 충실히 배운 터였다. 오래오래 깊게 구부리고만 있던 허리를 천천히 펴며, 고개를 빼꼼 드는 자존감이란 녀석. 수많은 자랑질로, 이 자존감이란 녀석의 허리를 반듯하게 펴주고도 싶었다. 문제는? 이 책이 매우 엄청나게 사적인 내용만 모아 담은 에세이라는 것. 부캐만 아는 사람들이 가득한 온라인에선 마구마구 말을 할 수 있었지만, 본캐만 아는 사람들에게 섣불리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본캐 주변엔 세 부류의 사람이 존재했다.
이혼도 모르는 사람 / 이혼만 아는 사람 / 이혼과 출간을 모두 아는 사람
이혼도 모르는 사람에겐 알릴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그만큼 거리가 있는 대상이란 얘기니까. 문제는 이혼만 아는 사람들. 이들에게는 책에 대해 알리고 싶었다. 아니지, 좀 더 정확하게는, 책을 알리고 싶은 욕구도 컸지만 퇴고로 정신이 없는 내 상태를 너무너무 말하고 싶었다. 2022년 7월에 책을 계약해 2023년 1월에 원고를 넘기고, 1교 2교를 거치며 나는 점점 피폐해져 가고 있었다. 아악! 피곤해! 시간이 없어!!!!
머릿속엔 책 생각만 가득한데 현실에선 말할 데가 없었다. "새벽 2시까지 원고를 수정했어요!" 말하고 싶은데 말을 못하는 생활이란. "뭘 먹으면 필력이 자라나요" 궁금해 죽겠지만 물을 데가 없는 삶이란. 그런 건 꽤 고단한 것이었다. 매일 마주하는 사람들에게 숨기는 부분이 있는 것도 '불편'했다. 아아, 거짓말같은 건 피노키오에게 양보할래요. 코가 길어질 능력도 없는 나는, 자꾸만 혼자 불편했었다. 그래서 툭. 자랑하듯 변명하듯 어쩌다 책에 대해 말을 꺼내게 됐다. (수면부족이 이렇게 무서운 겁니다. 여러분)
그렇게 본캐 주변에서 부캐에 대해 아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났다. 부캐의 서식지인, 이곳 브런치를 아는 사람도 늘어났다. 자랑질의 쓰디쓴 결과랄까. 비밀을 지키기엔 내 입이 너무 가볍달까. 이유가 무엇이든 아무튼 부캐의 존재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늘어갈수록 희안하게도 점점 더 주눅이 들었다. 필력도 개뿔 없는 주제에 책을 낸 자가 가지는 열등감.
글을 쓰자 => 아니야, 여기서 만나는 내 초고들이 너무 엉망으로 보일 것 같아.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하고 싶은대로 쓰자 => 뭘 쓰지. 또 불행을 주절주절 거리면 만날 저런것만 쓰고 앉아있다고 생각할 것 같은데.
일단 다음에 쓰자. => 언제? => 몰라. 시간이 없는데 어떡하지.
그리고, 늘 걱정했던 대로, 이 글들을 가장 보이고 싶지 않은 사람 역시도 이곳을 알게 된 것 같다. 부캐의 존재조차도 모르길 바랐는데. 부캐는 과거의 시간들을 뱉어내며 본캐를 정화하는 일을 맡고 있고,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까발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그리고 까발려짐에 소환되는 기분은 나 역시도 엄청나게 싫을 것이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왜 이런 짓(?)을 하게 된 걸까.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일을 질러버릴 만큼 벼랑 끝에 몰려있었다,고 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런 글이라도 뱉지 않았으면 지금의 내가 온전하지 못했을 것 같다,고 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 나의 이유가 무엇이든, 이 과정이 본캐의 삶에 '여러 모로' 엄청나게 도움이 된다 한들, 나는 꽤 두렵긴 했었다. 언짢음이 공격이 되어 또 나를 흔들까봐. 그럼에도, 그럼에도 있잖아. 그럼에도 이런 일을 계속해 나가고 있는 건.. 역시나 앞으로의 삶에 어떻게든 도움이 될 것이란 확신이 있기 때문에. 정서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시간 없는 직장인이 죽어라 상담을 다닐 수도 없는 일이고, 남는 시간을 쪼개어 해볼 만한 무언가도 별로 없으므로.
그 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려 최선을 다할테니. 일단은 그저 모른 척 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이건 어쩌면, 겪어가야 할 일련의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한껏 소심한 본캐와 "다 써버려! 일단 뱉고 마음이 편해져야 해!"를 모토로 하는 부캐가 함께 살아가는 과정이랄까. 상황마다 본캐와 부캐는 맞부딪히며 싸우겠지만, 어느 쪽이 이길지 지금의 나로선 잘 모르겠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본캐의 건강한(?) 삶을 한껏 돕고 있는 매우 소중한 이 부캐를 어떻게든 지켜가고 싶다는 바람은 있다.
역시,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고.
역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건 균형잡기가 아닐까.
부캐는 소망한다. 본캐 주변의 누가 읽든 거리낄 게 없고 자신 있는 그런 글을 쌓아가고 싶다고. 지금의 부캐가 품은 소박한 꿈.
그러니 그대여, 자라나는 부캐에게 부디 응원을 보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