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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TAX Dec 12. 2022

'제주도'의 추억

지갑만 들고 제주도에 가는 건 저의 버킷리스트였습니다.

    "고 변호사, 월요일에 일정 있어?"


    국장님에 호출에 마치 술 한잔 하자하실 때나 들을만한 멘트를 들었다.


    "내가 월요일에 급한 회의가 잡혀서.. 대신 교육 좀 가줄 수 있나?"


    교육을 대신 들으러 갈 일은 전무하니, 강사 대타를 뛰러 가야 할 상황이었다.

   

    마침 나는 월요일 참석하기 껄끄러운 위원회가 하나 있었고, 후배 변호사분에게 내 대타를 부탁하고, 나는 국장님의 대타로 제주도를 가게 되었다.


    때는 금요일 오전, 평소에 여유로운 마음으로 제주도에 강사로 가게 되면 금토일월 즐겁게 놀다 올 수도 있었지만, 나는 주말에도 일정이 있었고 주말 동안 혼자 여행을 갈 여유도 없었다. 심지어 화요일 아침에도 코로나로 미뤘던 재판이 있었다.


    그렇다. 나는 숙박도, 렌트도 없는 제주도 당일치기를 할 상황이었다.


    월요일 11시 교육에 나는 월요일 아침 비행기와 월요일 오후 비행기를 검색했다. 6시나 7시 비행기를 타면 여유롭게 제주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올라오는 비행기는 3시를 끊었다. 4시에 타면 차가 막히는 시간에 김포에서 집으로 와야 할 것 같아서이다.


    저번 강의 때 가보니, 노트북이나 아이패드는 전혀 연결할 수 없었다. 강의자료를 미리 송부해두어서 아무런 지장 없이 강의를 했지만, 강의안에 필기를 하며 강의하는 스타일인 나에게는 조금 불편한 기억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가방을 가져가지 않으면 기내 수화물도 없다. 지갑과 핸드폰과 차키만 있으면 제주도 출장이 끝나는 것이었다. 


    작년 혼자서 제주도를 갔던 적이 있다. 제주도에 코로나 격상으로 4인 이상 집합 금지가 지정되었고, 렌트비와 비행기 모두 바닥을 치고 있었다. 당시에도 백팩 하나를 메고 제주도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2박 3일을 제주도 북쪽을 누비며 다녔다. 43 기념관이나, 만장굴 등 가족이나 커플이 가기 애매한 곳을 다녔다. 혼자서 제주 흑돼지를 먹고 물회를 먹고 해물라면을 먹으면서 해변을 걸었다. 마침 동기형이 사건으로 제주도에 방문했다는 말을 듣고 전화를 했더니, 방금 올라왔다가 재판 끝나고 다시 공항을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느꼈다. 진정한 제주도 방문은 당일치기 출장에서 멋이 나는구나.


    그때의 경험이 나의 버킷리스트가 되었고, 나는 롱 패딩 안에 정장을 입고 7시 제주행 비행기를 타러 새벽에 출발하였다.


    


    차에서 짝꿍이 전날 주고 간 감동란 4알을 전부 까먹었다. 그리고 비행기에 내려 처음 먹은 것은 공항 내 애월까츠 점포의 안심까츠였다. 사실 국물이 먹고 싶기도 했지만 뭔가 속이 더부룩할 것을 대비해서 국물이 없는 것을 먹기로 했다. 먹고 나서 9시 서귀포행 버스에 몸을 싣게 되었다.


    사실 비행기와 버스에서는 기억이 없는 게, 나는 대중교통을 타면 보통은 자는 편이다. 자차 운전을 오래 하면 할수록 대중교통을 타는 능력이 부족해지는 것 같았다. 잠깐의 바깥구경을 하긴 했으나, 눈떠보니 서귀포시내에 도착하였다.


    열 시가 조금 넘은 시간, 편의점에서 몬스터 한 캔을 사서 이를 마시며 교육원 언덕을 올랐다. 30분 정도 여유롭게 도착해서 강의자료를 다시 보고, 어떤 이야기를 해줄지 고민하고 있었다.


송파세무서 9급직원 사망…송파경찰서 사망원인 조사중 - 日刊 NTN(일간NTN) (intn.co.kr)


    사실 세무공무원은 국가직 지방직 구분 없이 자살기사가 자주 나는 편인데, 지켜본 바로는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된다. 나는 이 기사를 블라인드에서 처음 접했고, 혹시 내가 한 신규공무원 강의 수강생이 아니었을까 하고 마음 아파하기도 했다.


    "여러분, 취미를 꼭 가지세요. 취미가 아니라 운동이건 뭐건 다 좋습니다. 집에 가서는 회사일을 잊고 사는 '나'를 그리며 사세요. 크로스핏을 하는 '나', '서핑을 하는 '나', 한식조리사 자격증이 있는 '나'. 뭐든 좋습니다. 부케를 만드세요. 여러분은 힘든 일을 앞으로 해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고통을 이겨낼 양분을 기르셔야 합니다."


    어떤 말로도 지금 앉아있는 신규공무원들에게는 공포도, 불안도, 그리고 위로도 심어줄 수 없음을 안다. 그러나 나는 저런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발령 이후에는 제주도 교육을 오기가 사실 상당히 어렵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동기들과 즐기고 추억으로 남기세요"


    나는 국세청에서 여러 경험과 추억을 쌓았고, 사실 너무나 힘들기도 했고 굉장히 즐겁기도 한 추억을 쌓았다. 십수 년을 근무한 직원들에 비하면 적은 경험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근무한 기간 동안 보람찬 기간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이 근무를 하다가 법적으로 힘든 일이 생기면, 국세청 소속 변호사들에게 연락해서 도움을 받으세요. 혼자서 해결하는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도우라고 만든 제도입니다."


    깨알같이 업무 홍보를 하고 나오는 길에 제주도의 소나기를 만났다.


    나는 우산 하나 챙기지 않고 왔는데... 


    공항에서 간단히 국수를 먹고 여유롭게 김포행 비행기를 탑승했다. 밀린 일을 하러 회사에 다시 갔고, 직원들은 아침에 제주도에 있었던 나를 보고 놀랐고, 나 또한 아침에 제주도에 있었던 것이 꿈만 같아서 놀랐다.


    1년 만에 버킷리스트를 해소한 것도 놀랍지만, 다음에 간다면 더 즐겁고 여유롭게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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