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신문 2021. 4. 5.자 기고
주점의 주인은 돈키호테에게 ‘슬픈 수염의 기사’라는 이름을 부여합니다. 저는 잘 모르겠는데 돈키호테는 그 이름이 맘에 들었나 봅니다. 저는 뮤지컬로 돈키호테를 접해서 그 이름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릅니다.
소송을 수행하면서 느끼지만, 모든 서면에 사실관계와 법리만 담기지 않는 것을 압니다. 저 또한 공무원의 역할과 변호사의 역할이 모두 필요한 입장에서 어느 부분은 변호사답게, 어느 부분은 공무원답게 서면을 쓸지 늘 노력합니다만, 아직도 쉽지 않다고 느낍니다.
제가 만난 대부분의 상대 변호사님들은 법정에서는 강하게, 그리고 밖에서는 부드럽게 대화하시며 사건을 진행하시고, 또한 대리인의 입장에서 납세자의 고충을 한껏 서면에 담아야 하기에 국가기관으로서 납세자의 숭고한 재산권을 침해한 행위를 단죄하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어도 ‘이것 또한 대리인의 고충’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충이 심한 것으로 예상되는 변호사님께 존경의 인사를 드리다 보면, 사실 서면의 내용은 원고의 진심이 아니라 대리인의 진심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도 있습니다. 저는 명함을 다시 집어넣고 슬픈 마음으로 법원을 나갑니다.
어느 날 송무과 소송담당 직원분이 찾아와 “서면에 사자성어를 적으면 안 되느냐”고 물어보는 질문에, “법률문서에 그런 표현은 지양하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며칠 후 다른 직원이 받은 서면에는 ‘국세청의 주장은 마치 ‘위록지마’와 같다’라는 문장이 기재되어 있었고, 사무실에서 ‘‘지록위마’ 아니냐’ ‘이런 표현을 써도 되느냐’는 주제로 대화를 하였습니다. 당시 법조 선배님의 ‘사자성어’의 항변을 본 것에 마음이 복잡했지만, 그 직원이 느꼈을 불쾌함을 생각하니 매우 슬펐습니다.
여타 다른 사건도 마찬가지겠지만, 조세소송에서도 납세자가 당사자신문이나 증인신문에 소환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상속세 사건에서는 납세자가 고인의 가족이기 때문에, 저는 증인신문 전에 “어려운 걸음 하시게 하여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어느 분은 아버지의 재산으로 사업을 영위하다가 재산을 탕진하고 졸지에 아버지도 돌아가셨는데, 상속세 신고에서 큰 실수를 하여 감당하지 못할 상속세가 부과되었습니다. 끝에 “판사님, 지난 과거를 반성하고 살아계신 어머니께 효도할 기회를 주십시오”라며 통곡을 하였고, 법정에서 눈시울이 붉어지는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형사사건이 아니었지만, 판사님은 많이 고민하셨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저는 처음 소송을 접한 직원분들께 “사건에 감정을 이입하면 힘들다”라고 조언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건에 감정을 배제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서면에 쓰이는 한 줄마다 정의의 붓으로 쓰고자 노력하지만, 그 붓으로 차마 담기 어려운 당사자들의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만약 저에게 ‘변호사 이름’이 주어진다면, 저는 ‘슬픈 서면의 변호사’라고 하고 싶습니다.
출처 : 법조신문([사내변호사 길라잡이]슬픈 서면의 변호사 < 사내변호사 길라잡이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법조신문 (koreanba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