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마지막 20대, 나의 서른을 공항에서 맞기로 했다.
서른 살, 그 나이가 되는 날은 뜻깊게 보내고 싶은 바람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나 다짐이라기보다는 지금까지의 내 삶, 특히 이십 대를 깊이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뜻대로 흘러가지 않아 아플 때도 감정적으로 방황할 때도 여러 번 있었지만, '나'에 대해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많은 일들이 '세상 속의 나'에게는 너그러울 수 있었다. 어느 날 나에게도 서른이 오고 있었다. 특별하기 위해서는 매년 찾아오는 연말 분위기에 더해질 무언가가 있어야 했다. 출근길에 내가 좋아하는 David Foster의 'My Grown-up Christmas List'를 듣고, 주말마다 지인들과 시간을 보내며, 급하게 휴가를 내고 짐을 챙겨 독채에서 며칠을 지내다 오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어느 날, 자주 가던 중고서점에서 제목에 이끌려 산 알랭 드 보통의 '공항에서 일주일을'을 읽으며, 공항처럼 나를 설레게 했던 장소는 없었다는 기억과 함께 나의 서른을 공항에서 맞기로 했다. 그날, Airbnb 검색창에 인천공항을 입력하였다.
오후 9시, 예약한 숙소로 가기 위해 인천공항 1 터미널 역에 도착하였다. 공항은 놀랍게도 고요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건강을 앗아가는 동시에 일상에 큰 변화를 주었다.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했고, 저녁 9시면 모든 음식점과 카페, 술집을 나와야 했으며, 해외여행을 갈 수 없게 되었다. 평소와 다르게 역동적이지 않은 공항은 우리의 바뀐 일상을 말해주고 있었다. 공항을 나와 택시를 타고 숙소에 도착하였다. 여행을 갈 때면 항상 가지고 다니는 BOSE 스피커를 책상에 두고 Stanley Myers의 'Cavatina'를 들으며 창 밖을 보았다. 정부합동청사와 그 뒤로 보이는 인천 국제공항 건물이 낯설게 느껴졌다. '낯섦'이 항상 '설렘'을 동반하지는 않고 그 반대 역시 그렇지만, 둘 사이에는 분명히 어떤 끈끈함이 있다. 익숙하지 않음이 주는 신선함은 여러 번 나의 마음을 움직였고, 공항은 매번 낯선 장소와 사람, 경험으로 가는 출발점이었다. 아직 겪어보지 못한 이후의 삶을, 그래서 낯선 서른을 공항에서 맞아야 할 것만 같은 묘한 기분은 결국 내가 이 숙소에서 연말을 보내도록 이끌었다.
카메라와 노트북을 챙겨 Rachael Yamagata의 'Duet'을 들으며 공항으로 걸어갔다. tvN의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 편의 삽입곡이어서인지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사막이 떠오른다. 누가 보아도 어울리지 않을 한 남녀의 사랑 노래와 사막이지만, 나는 그 부조화가 주는 묘한 긴장감이 좋다. 여러 세대의 건축물들이 동시대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바르셀로나의 거리를 많은 이들이 찾고, 즉흥성과 무질서, 부조화의 음악 재즈가 오랜 시간 인기를 끌었던 것도 같은 이유이지 않을까. 노래 한 곡이 다양한 감정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니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공항과 나를 느낄 준비가 되었다는 기대를 안고 공항에 들어갔다.
고요했던 어제와는 다르게 공항의 직원들과 입출국하는 사람들이 몇몇 보였다. 그럼에도 여행의 들뜸과 설렘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나는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차분한 공항을 음미하였다.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켜니 마치 거대한 카페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에 한 방송에서 들었던 'Coffee House Effect'가 떠올랐다.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경계에서 공간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을 때 사람들은 몰입을 가장 잘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카페에서 우리는 이어폰을 꼽고 일에 집중할 수도, 잠시 주변을 둘러보며 사람들을 관찰할 수도, 카운터에 가 직원에게 말을 걸 수도 있다. 그렇다면 가히 모든 것이 집합하여 있다고 할 수 있는 공항은 어떻겠는가. 만인의 공항을 내 작업실 마냥 쓰는 쾌감과 함께 공간의 경계를 드나들 수 있는 많은 가능성을 누리며 글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숙소에 돌아가려고 짐을 챙기다 말고 멍하니 착륙하고 있는 비행기를 바라보았다. 긴장감과 안정감이 나를 감싼다. 언제부터인가 해질 무렵 역에 들어오고 있는 기차를 상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지금까지 옳다고 여겨지는 일은 과감하게 시도한 적이 많았다. 용기는 쉽게 얻을 수 없는 배움을 주기도 하였지만, 후회와 아픔을 남길 때도 있었다. 가끔은 스스로 '어? 이게 아닌데...'라고 되뇌면서도 한동안 그 길을 가야 하는 나를 발견한다. 떠나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기차는 주저 없이 나아가더라도 반드시 돌아올 거라는 믿음을 주며, 나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는 위안을 준다.
스무 살이 되면서 이미 어른(성인)이 되었지만, 그동안 20대 학생이라는 꼬리표 덕분에 부족함을 감출 수 있었다. 서른이 되니 어른이라는 말이 더욱 실감 난다. 몰랐다고, 아직 경험해보지 않았서라고 핑계를 대기에는 이미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을 스스로 인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길을 가다가 서점이 있고 바쁘지 않다면, 들어가 책 제목을 훑으면서 산책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사람들의 감정을 어루만지는 에세이가 많이 보이는데, 그중에는 제목만으로도 감동을 주는 책들이 있다. 얼마 전에는 '엄마도 처음이라서 그래'와 '아빠도 아빠는 처음이라서'가 내 마음에 크게 와닿았다. '나이를 먹는 것'이 '감정적으로 완벽해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음을 깨닫고 있었으며, 평소에 '부모'처럼 큰 책임감을 주는 단어는 없을 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미치 앨봄은 그의 저서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에서 '천국'을 자신의 삶을 이해하는 과정으로 묘사한다. '다섯 사람'은 나에게 큰 영향을 준, 또는 내가 큰 영향을 준 사람들이다. 그들과의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과거에 인지하지 못하였던 과오를 반성하며, 자신이 세상에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음을 깨닫고는 감사함을 느낀다. 어른이 된다는 것도 이렇게 세상을 조금씩 이해해나가는 과정이며, 그래서 행복이지 않을까.
서울에 다녀왔다. 마치 이곳이 나의 집인 마냥 인천을 나서 볼 일을 보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자니 매우 어색하였다. 공항에서의 일주일은 일과 여러 잡념들로부터 완전히 작별해보겠다는 나와의 약속이기도 하였기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꽤 오래전부터 너무 이성적이지도 너무 감성적이지도 않은 그 사이 어디쯤인 사람이고 싶은 바람이 있었다. 이십 대 초에는 자꾸만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고, 사랑이 내 삶의 전부라고 확신하였으며, 일부러 해가 지는 시간에 맞추어 산책을 하고는 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공학을 공부하면서 세상을 마음보다는 머리로 이해하려는 버릇이 생겼고, 일을 우선시하는 일상 속에서 잃어버린 감성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고스란히 공항을 느끼고 지내며 잠들어 있는 감성을 깨울 기회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침대에 누우니 중간중간 비행기 이착륙 소리가 들린다. 눈을 감고 가만히 어두운 밤하늘을 날고 있을 비행기를 상상하니 아쉬움이 사라졌다. 잠시 서울에 다녀온 그 시간은 이곳에서 보낼 일주일을 더욱 돋보이게 해 줄 것이므로.
공항이 점점 편해지기 시작하면서 나의 옛 기억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스무 살 겨울, 지인의 초대로 마드리드에 가게 되었다. 혼자 다른 나라에 가는 첫 여행이자, 스스로 모든 것을 계획한 첫 시도였다. 비행기 표를 구하기 위해 검색하다가 다른 티켓보다 훨씬 싼 티켓을 발견하고는 신이 나서 바로 예약했다. 베이징을 경유하는 비행기였는데 18시간 후에 다시 출발하는 일정이었다. 당시에는 잠시 공항을 나갔다가 다시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몰랐기에 거진 하루를 공항에서 보냈다. 면세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를 기대했지만 돈 없이 구경만으로는 2시간을 넘기기란 어려웠고, 중국 특유의 향이 나는 음식은 입에 너무 맞지 않아 햄버거로 세 끼를 전부 때워야 했다. 짐을 가져갈까 봐 불안하여 잠을 참는 것 또한 고통스러웠는데, 결국 의자에 누워 잠이 들었고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탑승 시간이 지난 후였다. 다행히도 자는 동안 비행기가 연착되어 시간이 미루어졌지만, 시계를 보고 놀랐던 그 감정은 정말이지 잊을 수가 없다. 그 이후 경유는 무슨 일이 있어도 3시간을 넘기지 말자는 철칙을 만들었다.
지인의 소개로 공항 귀빈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제1터미널 3층에는 매화, 난초, 무궁화, 소나무, 국화, 대나무실로 6개의 귀빈실이 있음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내가 할 일은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찾아오는 타국의 VIP를 비행기에서 귀빈실까지 안내하기, 수행원이 모든 짐을 가지고 나올 때까지 담소 나누기, 이후 의전 차량까지 동행하기 세 가지였다. 어학연수를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근자감에 시작하였지만, 사실 심도가 있는 대화보다는 간단히 한국을 소개하거나 정해진 말을 하였기에 큰 능력이 필요하지 않아 무사히 잘 해낼 수 있었다. 공항 내에 있는 언론사 사무실에 인터뷰 일정 조율을 위해 들락날락하고 보안 요원들과도 소통하며, 인천공항의 시설들과 시스템에 대해 세세하게 알게 되었다. 공항을 좋아하던 나에게 이 아르바이트는 소중한 배움이었다.
공항에서 돌아오는 길에 미리 저녁 약속을 하였던 친구를 만났다. 코로나를 피해 식사는 숙소에서 직접 요리해 먹었기에 외식은 처음이었다. 친구의 권유로 한 인도 요리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였다. 인도인 두 분이 직접 운영하시는 곳이었고 다른 한 테이블의 손님들도 인도 사람들이었기에 이국적인 분위기가 풍겼다. 종이 식탁 매트에는 타지마할이 그려져 있었고, 벽에는 힌두교에서 신성한 동물로 여겨지는 코끼리 두 마리가 크게 그려져 있었다. 힌두교에서 기네샤로 불리는 코끼리는 어떤 장애도 극복하고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는 슬기가 있어, 사업을 번창하게 하고 학문의 성취를 이루게 해 준다고 믿는다. 코끼리 그림은 사업에 성공하고 싶다는 이들의 기원인 한편 먼 타지인 한국에 오는 많은 인도인들에게도 용기를 줄 것이었다. 전통 인도 요리는 처음이라 기대하면서 카레-치킨 타카-난-그린 샐러드-라씨로 구성된 세트 메뉴를 주문하였다. 난과 라씨는 처음 들어보는 음식이어서 혹시 특이한 향이 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평소에 흔하게 먹는 얇은 피자의 도우와 같은 빵과 요구르트였다.
친구와 식사를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현재의 일과 지향하던 자아가 일치하는지'가 주된 화제였다. 3년 전, 관세 공무원으로 재직하게 된 친구는 고향이었던 울산과 학창 시절을 보낸 서울을 떠나 인천에서 혼자 지내고 있었다. 친구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따분하게 생각하였고, 이렇게 30년을 더 보내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하며 아직 선택을 할 수 있는 내가 부럽다고도 하였다. 청년들의 취업이 힘든 요즘 혹자에게는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나는 어느 정도 공감되었다. 아직 취직을 하지는 않았지만 나 역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직장이 나에게 큰 의미를 주지 못 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하던 터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며, 그중 어떤 선택은 삶에 큰 영향을 준다. 친구를 위로하며 스스로에게 읊조렸다. 언제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남겠지만, 아프고 방황하지는 말자고. 그 미련이 나와 다름에 대한 동경을 만들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세상을 아름답게 보이게끔 해주는 것이라고.
아침에 조금 눈이 내리는가 싶더니 오후가 되면서 구름 한 점 없이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인천에 온 이후 처음 마주한 좋은 날씨였기에 오늘은 동네를 천천히 산책하기로 하였다. 숙소 주변에는 여행객들을 위한 호텔과 정부합동청사, 인천 국제공항공사 직장인들을 위한 오피스텔이 많았다. 오피스텔은 주상복합단지의 형태로 일층에 들어와 있는 식당들은 여러 나라의 현지 모습을 하고 있어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베이징과 칭다오에서 음식점 벽에 붙은 메뉴판은 다른 나라에서와 달리 큰 음식 사진들이었는데, 문맹률이 높았던 사람들을 배려하였던 중국의 문화가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었다. 이곳에서도 외부에 사진 메뉴판을 붙여 놓은 중국 식당들이 많아 옛 추억들이 생각났다. 바다 방향으로는 파라다이스 시티 호텔과 플라자가 보였고, 그 옆으로 공연장, 비즈니스호텔, 오피스텔 등 복합리조트를 확장하기 공사장이 있었다. 북경, 상해, 동경 등 동북아 주요 도시들로부터 4시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는 입지 조건이라는 사업 계획을 읽으며 중국 정부의 마카오 카지노 규제가 우리나라에 수혜를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지노 산업은 대게 자국민 출입은 제한하면서 외국인 관광객으로부터 외화를 획득하므로 국가적으로도 경제적인 도움을 줄 터였다.
거리는 놀라울 정도로 한산하여 마치 주인이 없는 도시를 걷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호텔과 오피스텔이 주를 이루는 이곳은 어찌 보면 방문객들의 도시이다. 공항과 주변의 여러 정부 기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오피스텔은 주거가 목적이겠지만, 그들에게는 일을 위해 머물다가 떠나는 장소일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대로를 걷다가 순간적인 외로움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없지만 문득 나의 내면이 지향하는 도시라는 것이 궁금해졌다.
내가 살고 싶은 도시. 내가 살고 싶은 도시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개방과 보존이 공존하는 도시'이다. 개방에 대하여 논하기 위해 경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의 3T (Tolerance (관용)-Talent (재능)-Technology (기술)) 이론을 빌리자면, 관용이 재능이 있는 사람들을 모으고, 기술을 발전시킨다. 리처드는 미국의 여러 도시를 대상으로 다양성의 척도를 대변하는 게이지수 (gay index)를 측정하였다. 그는 기술 발전과 게이 지수 사이에 높은 상관관계 (correlation)가 있음을 발견하고는 다양성은 창조도시의 기반과 생산성의 토대가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가장 차별받는 소수집단인 게이가 많다는 것은 그 사회의 포용성과 다양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발전은 바람직하지만 그 자체만으로 내게 큰 매력을 끌지 못한다. 주변의 자연환경, 문화, 사람들의 성향 등 도시마다 다른 여러 요인은 오랜 시간에 걸쳐 각기 다른 고유의 색을 만든다. 나는 그 색을 유지하면서 서서히 새로움에 물든 도시가 좋다. 결국 개방과 보존의 공존은 기존의 것과 새로운 것 사이의 상호 존중을 의미하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공간으로 여겨질 것이다. 미국 포틀랜드에서 이러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B Magazine 김영민 에디터의 포틀랜드에 대한 묘사는 정확히 내가 추구하는 도시를 담고 있다.
"점심시간이면 끝없이 줄이 이어지는 푸트 카트와 '성 소수자의 날'을 기념하며 무지개색으로 물든 도시만 봐도 알 수 있듯, 포틀랜드는 '주류'보다 '비주류'가 환영받고, 틀에서 벗어난 삶도 틀 안에서의 삶만큼 존중받는 곳이다. 고요한 시골 도시 포틀랜드가 세계에서 가장 진보한 도시 중 하나로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무언가에 쫓기듯 바쁘게 살다가 문득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인가?', '이것이 최선의 방식인가?'라고 질문을 던질 때가 있다. 포틀랜드 사람은 이러한 고민 속에서 발랄한 상상력으로 대안적 삶을 개척한다. 누군가에게는 어지러운 속세를 떠나 자연을 벗 삼는 삶일 테고, 어떤 이에게는 전통이나 권위에 맞서 이루어낸 혁신을 의미할 것이며, 또 다른 이에게는 색다른 재미를 좇는 이단아적 실험 정신일 것이다."
오늘은 공항에 가벼운 마음으로 가서 관찰하고 연상하며 시간을 보내겠다는 다짐으로 카메라만 가지고 갔다. 인상 깊은 장면들을 찍어두면 나중에 그때의 감정들이 다시 떠오르고 글을 마무리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이곳저곳을 촬영하고 있었다. 그러다 공항 보안 요원이 한참 나를 지켜보았는지 인물 사진은 괜찮지만 건물 내부를 이렇게 샅샅이 찍는 것은 안 된다고 제지하면서 사진 여정을 멈춰야 했다. 큰 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고 있는 내 모습을 스스로 상상해보니 드라마 속의 비밀 요원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조금 민망하였다.
기억의 매개체는 사람들에게 각기 다르다. 어떤 이에게는 도쿄에서 녹음한 기차 소리가 그 당시를 떠올리게 하고, 다른 누군가는 조지아의 풍경을 보며 직접 그린 그림으로 과거를 회상한다. 나는 사진을 찍고, 시간이 지나 글을 쓰며 추억을 오랜 시간 간직한다. 그래서인지 내 사진첩에는 랜드마크의 건물보다는 내게 어떤 감성을 불러일으켰던 사진들이 가득하다. 언젠가 쌓여 있는 사진을 보다가 깨닫게 된 점인데, 나는 노을이 비치는 보라색 구름과 비행기 창으로 보이는 일출, 한적한 도로를 좋아하는 것 같다. 드물게는 낯선 곳에서 익숙한 냄새를 맡고는 그때를 꽤 뚜렷하게 떠올리기도 한다. 2년 전 안도현 시인이 글을 쓰기 위해 종종 머물렀다던 전라북도 부안의 한 별장에서 며칠을 지냈다. 당시에도 지금과 비슷한 동기로 휴식과 사색을 하기 위함이었다. 발코니 흔들의자에 앉아 있으면 바닷바람이 집 앞의 작은 숲을 거치며 나무 향이 베어 나에게 불어왔다. 중학교 시절 '연어'와 '갈매기의 꿈'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던 기억은 안도현 시인의 발자취가 아닌 '시인의 방'에서의 마지막 밤 냄새가 불러낸 학교 등나무에서 책을 읽던 회상과 함께 찾아왔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다 보니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지 찾아보다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이름을 딴 프루스트 현상이라는 용어를 알게 되었다. 후각으로 과거를 회상하는 주인공에 대한 묘사로 작가의 이름을 따 만들어진 말이지만, 실제로 미국 모넬 화학감각센터와 이스라엘 와이즈만 연구소를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실험을 통해 입증된 바가 있다고 한다.
여행을 기억하는 습관을 얘기한 김에 조금 더 나의 여행관에 대하여 정리해보자.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나의 지향들을 글로써 적어본다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다.
가끔 함께하는 여행을 가고 싶을 때가 있지만, 나는 혼자 여행에서 더 큰 매력을 느끼는 편이다. 일상 모든 것과 분리되어 사색을 하다 보면 머리와 마음은 투명해지고 새로운 경험은 마치 아주 맑은 물에 떨어진 잉크 한 방울이 빠르게 번지 듯이 강렬하게 다가와 내가 깊은 감성에 빠지게 해 준다. 고스란히 그 아름다움을 즐기거나 때로는 과거의 어떤 기억을 연상하기도 하는데, 이 과정 속에서 기분 좋은 자유를 느끼게 된다. 내가 정말 사랑하고 나를 정말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난다면 둘이 가는 여행을 더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여러 도시를 구경하는 것보다 한 동네에서 '살아보는 것'을 좋아한다. 나에게 만약 한 달의 휴가가 주어진다면, 골목골목이 예쁘고 노을과 잘 어울리며 날이 좋으면 누울 수 있는 잔디 공원을 갖춘 도시 중 유명세를 덜 탄 한 도시를 여행지로 선택하겠다. 그곳에서 한 숙소에 한 달 전부를 머물며 있는 그대로의 공간을 깊이 느끼고 사람들의 일상을 면밀히 관찰하고 싶다. 마드리드에서 처음으로 긴 시간을 살아보면서 이런 매력을 알게 되었다.
나의 여행은 집을 나섰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끝나지 않고, 글로써 남겨질 때 비로소 끝이 난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겠지만, 나는 여행 후유증이 심한 편이다.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부담감이 아닌 행복한 순간이 일시적이었음이 주는 아쉬움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후유증을 글을 쓰며 극복한다. 글은 비록 물리적으로는 돌아갈 수 없지만, 내가 원할 때마다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안도감을 준다.
일어나자 새해가 밝아 있었다. 뭔가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싶을 때마다 꺼내는 Alexis FFrench의 'Bluebird'를 들으며 차를 마신 후, 할아버지와 멘토님께 연락을 드렸다. 두 분은 부모님 다음으로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들이자 내가 의지하는 사람들이다. 가족들은 내가 할아버지와 정말 닮았다고 얘기한다. 얼마 전, 30대부터 지금까지 일기를 매일 쓰셨다는 말을 듣고는 생각보다 깊은 부분까지도 닮아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동생과 할아버지 댁에 놀라갔다가 나 혼자 하룻밤을 자고 오게 되었다. 할아버지와 둘이 있는 동안 조심스럽게 일기를 볼 수 있냐고 물어보았지만, 그곳에는 단순한 사건 나열을 넘는 감정들이 많이 담겨 있기에 부끄럽다며 보여주지 않으셨다. 문득 내가 저 나이가 된다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 것이며, 하루하루를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하였다. 크게 변해 있기를 바라면서도 크게 변해있지 않기를 바라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멘토님은 정부의 지원으로 참여했던 '차세대 리더 육성 멘토링' 사업을 통해 처음 만나게 되었다. 당시의 주 활동은 '4차 산업혁명과 우리의 미래'를 주제로 책을 집필하는 것이었는데, 나는 기술적인 부분을 담당하였고 한 국문학과 친구가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이를 해석하였었다. 이 작업으로 나는 A4용지 한 장 이상의 글을 쓸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이후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일상에서의 대화를 편하게 나누는 사이가 되었으며 지금도 진로와 삶에 대한 조언을 받고 있다. '따뜻한 리더'를 지향하는 공통점이 우리를 점점 더 가깝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마지막 날이 되니 괜스레 아쉬운 마음에 네이버 지도를 켜고 지금 내가 있는 위치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정류장에 가장 빨리 도착하는 버스를 탔다.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모르지만, 계획하지 않은 우연이 영종도의 가장 일상적인 공간으로 나를 안내할지도 몰랐다. 버스 창문으로 보이는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 용유 하늘 전망대에서 내렸다. 전망대에 올라갔지만 역시나 흔히 말하는 '명소'에서 보는 노을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큰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대신 바로 맞닿아 있는 해변으로 내려가 바다에 비치는 분홍 빛 노을을 감상하였다. 이렇게 해가 지는 모습을 보거나 밤에 달을 가만히 보고 있을 때면 '이 시간을 아름답다고 느끼고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라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물론 나조차도 바쁘게 지내다 보면 그러지 못할 때가 많지만, 우리 모두 살아가면서 당연히 마주하는 것들을 좋아하는 연습을 해보자고 조심스럽게 제안해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새해에 새로운 다짐을 하듯이 나도 서른을 맞아 자신에게 한 가지 약속을 하자면, 고집이 있는 사람이 되어보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고집은 한번 정한 자기 의견을 바꾸지 않고 굳게 내세워 우기는 사전적인 의미가 아닌 '옳음을 지속적으로 행할 수 있는 용기'이다. 아직 나의 지혜가 세상의 모든 이치를 품을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그렇지 못할 것이다. 마이클 센델 교수님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여러 번 읽고도 나는 정의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으며, 작가인 그도 결론짓지 못하는 상대적인 가치 판단이라는 것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최소한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분별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옮은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미래의 나에게 책임감 있는 모습이며 작은 내가 큰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