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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강성 Mar 31. 2024

정의란 무엇인가 (4)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 지음

제4장 대리인 고용: 시장 논리의 도덕성 문제
(Hired Help: Markets and Morals)


정의에 관해 뜨겁게 논쟁할 때면 시장의 역할이 자주 거론되곤 한다. 자유시장은 공정할까? 돈으로 살 수 없는, 혹은 사면 안 되는 재화는 있을까? 있다면 어떤 재화이며 그것을 사고파는 것은 왜 문제가 될까?

 

자유시장에 우호적인 시각은 보통 두 가지 주장에 근거한다.


첫 번째 주장은 친시장 자유지상주의자의 견해다. 자발적 교환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길이며, 자유시장을 법으로 간섭하면 개인의 자유가 침해된다고 말한다.


두 번째 주장은 친시장 공리주의자들의 견해다. 이들은 자유시장이 사회 전체의 복지를 증진시키며, 거래가 이루어지면 거래하는 양측이 다 이익을 얻는다고 말한다. 그로 인해 전체 공리는 당연히 높아질 것이다.


반면 시장 회의론자들은 시장에서의 선택이 늘 자유롭지만은 않다고 반박한다. 또한 돈으로 사고팔 경우 타락하거나 질이 떨어지는 재화와 사회적 행위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 장에서는 전쟁 수행과 대리 임신의 대가로 돈을 주고받는 것의 도적적 문제를 따져 봄으로써 정의에 관한 대표적인 주장들의 차이점을 밝히고 있다.


징집과 고용, 어느 쪽이 옳을까?


미국 남북 전쟁 당시 북군이 불런(Bull Run) 전투에서 패배하고 조지 매클레런(George B. McClellan) 장군이 리치먼드를 공략하는데 실패하면서 북군의 군인이 필요해지자 1862년 7월 에이브러햄 링컨은 북부에서 처음으로 징병법에 서명했다(남부에서는 이미 실시하고 있었다).

[불런 전투 상황도]
[조지 매클레런 장군의 부대를 방문한 링컨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징병제도는 미국의 개인주의 전통을 거스르는 일이었기 때문에 징병 제도에 놀라운 양보 조항이 삽입되었는데, 징집을 원치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고용해서 대신 보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당시 구인 광고에 제시된 금액은 최고 1,500달러로 당시로서는 엄청난 돈이었기 때문에 ‘부자들의 전쟁, 가난한 자들의 싸움’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대리인을 고용할 권리는 그대로 두고, 정부에 300달러를 내면 병역을 면제하는 법을 만들었다. 이는 당시 미숙련 노동자의 1년 치 임금에 달하는 금액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제도는 정치적 반응이 좋지 못했고, 1863년 뉴욕에서는 징병 거부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고 한다.

[1863년 뉴욕의 징병거부 폭동 출처 구글 이미지]

이듬해 병역 면제 조항이 삭제된 새로운 징병법이 제정되었는데, 실제로 징집된 20만 7천 명 가운데 8만 7천 명이 비용을 지불했고, 7만 4천 명이 대리인을 고용했으며, 실제로 복무한 인원은 4만 6천 명에 그쳤다고 한다.


당시 자기 대신 전투에 참가할 대리인을 고용한 사람 가운데에는 앤드루 카네기, J.P. 모건, 시어도어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아버지, 나중에 미국 대통령이 된 체스터 아서와 그로버 클리블랜드 등이 있었다;;;

[카네기, J.P. 모건, 체스터 아서 출처 구글 이미지]

이러한 대리복무제도에 대해 오늘날 대부분의 학생들은 정당한 방법이 아니라 계급 차별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완전 모병제 역시 원리적으로는 별 다를 바가 없다.


왜냐하면 남북전쟁 시에는 부자가 직접 돈을 지급해서 자신의 복무를 대신했다면, 오늘날은 가난한 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 부자들이 낸 세금을 월급으로 받아 복무를 대신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베트남 전쟁 때도 징병제가 실시되었는데, 학생들과 특정 직업군을 위한 징병 유예 조항들이 너무 많고 수수께끼처럼 복잡해서 결국 많은 사람이 참전을 피해 갔고, 특히 대학을 중심으로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에 기름을 부었다고 한다.

[베트남 전쟁 당시 징병 반대 시위 출처 구글 이미지]

이를 감안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징병제 폐지를 제안했고 1973년에 미군이 베트남에서 단계적으로 철수하면서 징병제가 모병제로 대체되었다. 군은 보수를 높이고 복리 후생을 늘렸다. 오늘날 미국의 군대는 노동 시장을 통해 병사를 모집한다.

[닉슨의 병역 기피자 사면과 미군 모병 포스터 출처 위키백과]

현재 미국인 대부분은 모병제를 좋아하며 징병제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인 대상 갤럽 설문 조사에서 징병제 부활에 반대하는 비율은 80퍼센트였다).


그렇다면 정치 철학과 관련하여 개인의 자유를 중시할 것인가, 시민의 의무를 중시할 것인가의 문제로, 다음 세 가지의 병역 의무 이행 방법 중에 어떤 것이 가장 공정한지 생각해 보자.


1. 징병제

2. 유급 대리인 허용 징병제(남북 전쟁 당시 제도)

3. 시장체제(지원자로 채우는 군대)


모병제를 옹호하는 주장


자유지상주의자라면 우선 징병제는 강제성을 띤 일종의 노예제라서 부당하다고 대답할 것이다. 공화당 의원이자 대표적 자유지상주의자인 론 폴(Ron Paul)은 이라크 전쟁을 위해 징병제를 부활하자는 의견에 반대하며 이렇게 주장했다.


징병제는 노예제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비자발적 노예 상태를 금지하는 헌법 수정 조항 제13조에 위반된다. 군에 징집되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징병제는 대단히 위험한 노예제다.
[출처 구글 이미지]

공리주의자 역시 징병제가 선택권을 제한하여 전체 행복을 감소시킨다는 논리로 반대할 수 있다. 만약 계약 당사자들끼리 서로 원하여 대리복무를 한다면 양자의 행복이 증가하는 것이기에 반대할 의미가 없다. 따라서 공리주의 입장에서는 대리복무제가 순수 징병제보다는 낫다.


대리복무제와 모병제를 비교해 보면, 모병제의 경우 노동시장을 통해 더 간단히 모집할 수 있고, 필요 인력과 자질에 맞는 적정 급여와 복리 후생 수준을 정해 놓고 사람들이 스스로 이를 받아들일지 선택하게 하면 되며, 누구도 자신의 의지를 거슬러 강요받지 않으므로 모병제가 가장 이상적인 선택이다.


결국 자유지상주의자나 공리주의자 모두 모병제를 최고의 선택으로 선정할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두 가지 반박이 가능하다


반박1: 모병제는 공정하거나 자유롭지 않다


대안이 제한적 상황이라면 그다지 선택이 자유로울 수 없다. 노숙자가 과연 좋아서 노숙을 하는 것일까? 오히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기에 자발적 선택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모병제 역시 사회의 제반여건이 기회균등의 적절성은 보장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선택의 여지없이 군입대를 가난으로 인해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제도는 결국 부당한 것이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는 강요와 강압에 떠밀린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의 모병제 군대의 계층구성을 보면 저소득, 중간소득 계층(가계소득 중간값 3만 850~5만 7,836달러) 출신 젊은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현저히 높다.


최근 미국 사회 특권층 젊은이들은 군 복무를 기피하고 있다. 《무단 이탈: 미국 상류층의 군 복무 기피》란 책에 의하면 프린스턴 대학교의 경우 1956년에는 졸업생 500명 중 과반수가 입대했지만, 2006년에는 졸업생 1,108명 중 고작 9명이 군에 입대했다.


한국 전쟁 참전 훈장을 받은 할렘 출신 민주당 의원 찰스 랭글(Charles Rangle)은 이를 부당하다고 비판하며 징병제 부활을 요구하기도 했다.

[찰스 랭글 의원 출처 대한민국 국방부]

하지만 강제성을 지적하는 반박은 모병제 자체에 대한 반박은 아니다. 불공평을 줄인다면 반박도 수그러든다. 물론 평등이 완벽하게 구현된 사회는 없다.


노동시장에서의 선택에는 항상 강제의 위험이 내포될 가능성이 있음을 주시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평등이 구현되어야 사회 제도의 공정성이 침해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반박2: 모병제는 시민의 미덕과 공동선을 해친다


군 복무 자체가 바로 나라를 위한 시민의 의무이다. 그렇다면 시민의 의무를 시장에서 거래하는 행위는 부당하다.


이 견해 중에는 반드시 군 복무가 아니라 평화봉사단(Peace Corps), 아메리코(AmeriCorps), 티치포아메리카(Teach for America) 같은 국가적 봉사로도 그 의미를 다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또 다른 시민의 의무인 배심원제도에서 배심원으로 선정되면 당사자는 상당한 불편을 감수하고서 법정에 참여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


만약 자유시장에 맡겨서 본인 대신 돈이 필요한 사람을 배심원으로 보낼 수 있을까? 공리주의 입장에서는 계약 당사자간의 이익이 있기에 찬성되어질 수 있는 원리다.

[미국의 배심원 제도와 우리나라의 국민 참여 재판 출처 구글 이미지]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방법을 인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유급배심원제가 허용되면 돈이 필요한 특정계층만 압도적으로 몰리게 되고, 그렇게 되면 애초에 공정한 정의 집행을 위한 배심원들의 판단이 잘못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결국 자유도 공리도 아닌, 시민의 미덕을 위해서 판단이 되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군복무의 경우도 적용해 본다면 군 복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 자체가 시민의 미덕에 어긋난다.


역사학자 데이비드 케네디(David M. Kennedy)도 같은 견해를 밝혔다. 그는 “오늘말 미국 군대는 용병의 색채가 짙다. 인구 비율로 볼 때, 오늘날의 현역 군인 수는 제2차 세계 대전 때의 4퍼센트 수준이다. 같이 나눠야 할 희생을 면제함으로써 정치적 책임의식의 약화라는 대가가 불가피해졌다고 이야기한다.


오늘날 대다수의 미국인은 같은 국민인 소외 계층 사람들을 고용해 가장 위험한 일을 시켜 놓고, 자신들은 병역으로 인한 어떠한 위험에도 노출되지 않은 채, 피 한 방울 흘리거나 별다른 신경도 쓰지 않고 자기 삶을 살아간다.
[데이비드 케네디와 그의 저서 출처 구글 이미지]

병역을 시민의 의무로 본 가장 유명한 발언 가운데 하나는 제네바 태생의 계몽주의 정치 이론가 장 자끄 루소(Jean-Jacques Rousseau)(1712~1778)의 말이다.


그는 《사회계약론(The Social Contract)》(1762)에서 '시민의 의무를, 팔릴 물건으로 전락시키는 행위가 자유의 가치를 오히려 깎아내리는 행위'라고 비판한다. 진정 자유로운 국가라면 시민은 모든 일을 자기 손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의 업무를 시민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로 여기지 않게 되면, 그리고 그것을 사람이 아닌 돈으로 해결하려 들면, 국가의 몰락이 가까워 온다. 전쟁터로 진군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그들은 군대에 돈을 지불하고 집에 머무른다. (……) 진정으로 자유로운 국가라면 시민은 모든 일을 직접 하지, 돈으로 해결하지 않는다. 돈으로 의무를 면제받으려 하지 않고, 의무를 직접 이행할 특권을 얻기 위해 오히려 돈을 지불할 것이다. 나는 사회 통념과 달리, 강제 노동이 세금보다 자유에 덜 위배된다고 생각한다.
[장 자크 루소와 사회계약론 출처 구글 이미지]

결국 모병제라는 시장원리에 의지하면서도 군 복무를 애국심과 혼용해서 개념의 혼동을 초래하기도 한다. 사실 모병제도를 옹호한다면, 굳이 오늘날의 지원병과 용병의 차이를 둘 필요가 없다.


임금이 낮고 질 좋은 외인구단을 제3국에서 얼마든지 수입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국인을 중심으로 하는 것은 그만큼 민족적 특성과 미덕에 호소하는 반증이 된다.


프랑스 외인부대는 프랑스를 위해 싸울 외국인을 모집하는 오랜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 법은 이 부대가 프랑스 밖에서 적극적으로 군인을 모집하는 행위를 금하고 있지만, 인터넷의 발달로 이러한 제약은 무실해졌다. 현재 부대 병력의 약 4분의 1이 라틴아메리카 출신이라고 한다.


시장 논리는 외국인 병사를 뽑는데 그치지 않는다. 병역을 여러 직업 가운데 하나로 본다면, 신병 모집을 반드시 정부가 해야 할 이유는 없다. 실제로 미국은 군 기능의 상당 부분을 민간 기업에 맡기고 있다.


블랙워터 월드와이드(Blackwater Worldwide)는 대표적인 사설 군사 용역 기업 중 하나다. 이 기업의 CEO인 에릭 프린스는 특수 부대 네이비 실 출신으로, 열렬한 자유 시장 지지자다. 그는 “페더럴 익스프레스가 우편 업무를 담당하듯이, 우리는 국가 안보 기능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블랙워터 자료들 출처 구글 이미지]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은 블랙워터처럼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들에게 전투를 외주 주는데 반대했다. 그들은 이런 기업을 신뢰할 수 없다고 비판했으며, 역할 남용을 우려했다.


실제로 2007년 블랙워터 경비대원 6명이 바그다드 광장에서 군중을 향해 발포하여 민간이 17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들은 이라크 법으로 처벌되지 않았고 미국 법무부가 이 조급 직원을 살인 혐의로 기소하였다(*트럼프가 이들을 사면하였다).

[트럼프가 사면한 블랙워터 요원들 출처 구글 이미지]

이 문제를 다루다 보면, 민주 사회의 시민은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며, 그 의무는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라는 질문이 필요하다. 정의에 관한 서로 다른 이론은 이 질문에 서로 다른 답을 내놓는다.


돈을 주고받는 대리 출산의 사례


전문직 종사자인 윌리엄 스턴과 엘리자베스 스턴은 아이를 가지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대리’ 출산을 알선해 주는 불임 센터를 찾아갔다. 센터는 ‘대리모’를 찾는다는 광고를 냈고, 이에 응한 여성 가운데 스물아홉 살이고 환경미화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인 메리 베스 화이트헤드가 있었다.


이들은 1985년 2월 계약을 체결하여, 메리 베스는 윌리엄의 정자로 인공수정을 거쳐 임신 한 뒤 출산과 동시에 아이를 윌리엄에게 넘겨주기로 약속했고, 어머니로서의 친권을 엘리자베스 스턴에게 넘기고 그들 부부가 아이를 입양하도록 협조하겠다고 약속도 했다. 그 대가로 1만 달러의 수수료와 의료비를 지급받기로 했다.


이후 1863년에 메리 베스는 여자 아이를 출산하였는데 막상 출산하고 그녀는 아기와 떨어질 수 없어 결국 아기를 주지 않기로 결심하고 플로리다로 도망쳤다. 이에 양육권 다툼이 벌어져 뉴저지 법원으로 넘어갔다.

[대리모 사건 뉴스 기사 출처 구글 이미지]

1심 법원은 불임부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성인들이 합의하여 서로 이익에 맞게 계약을 맺은 것이기에, 자유주의적이든, 공리주의적이든 간에 타당한 입장이 된다. 그리고 계약은 곧 계약이라는 논리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를 찬성하기에는 무언가 망설임이 생긴다. 첫째, 대리모는 돈을 받고 아이를 넘겨주는 상황에 대해 약속할 당시 충분한 관련정보를 인지하고 있었는가? 둘째, 양쪽이 합의를 자유롭게 했더라도 아이를 사고파는 것, 여성의 출산능력을 상품화하는 행위 자체가 과연 정당하냐는 의문이 생긴다.


1심 법원의 하비 소코(Harvey R. Sorkow) 판사는 어느 쪽도 정보적으로 부당하게 유리한 입장이 아니었기에 공정한 거래라 보았고, 대리출산의 판매대상은 아이가 아니라 임신이라는 서비스에 대한 지불일뿐이라는 것이다. 아이는 실제로 아버지의 정자를 통해 태어났고, 남자가 정자를 팔 수 있듯이 여자도 자신의 생식능력을 팔 수 있다고도 판단했다.


그러나 뉴저지 대법원은 이러한 판결을 뒤엎었다. 우선 그 계약에는 결함이 있다고 보았다. 모든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에, 메리 베스의 약속은 실제로는 자발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 계약하에서, 친어머니는 자신과 아이의 강한 유대감을 알기도 전에 되돌릴 수 없는 약속을 했다. 그녀는 충분한 정보를 가진 상태에서 완전히 자발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아이를 출산하기 전에 내린 결정은 그것이 무엇이든, 충분한 정보에 근거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며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한 대법원 판결은 보다 근본적인 두 번째 근거를 제시했다. 또한 아기를 파는 것이 아니라 출산을 대리하는 서비스에 돈을 지불한 것이라는 주장에도 반박했다. 그 계약에 따르면, 1만 달러는 양육권을 넘기고 친권을 포기했을 때 지불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여성에게 돈이 얼마나 절박했든 간에, 그리고 그녀가 계약의 결과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었든지 간에, 우리는 그 합의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문명화된 사회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다.

이는 아기를 판매하는 행위이거나 적어도 아기에 대한 어머니의 친권을 파는 행위이다. 그나마 고려할 수 있는 점은 구매자 중 한 사람이 아버지라는 사실이다. (……) 중개인은 이익을 추구하느라 판매를 부추겼다. 당사자들이 이상적인 생각으로 동기 부여되어 일을 추진했더라도, 이 거래에 끼어들어 영향을 미치고 궁극적으로 거래를 지배한 것은 이익 추구 동기다.


대리 출산 계약과 정의


대리출산 계약에 찬성하는 입장은 자유지상주의자들과 공리주의자들이다. 먼저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이 계약이 자발적으로 합의하여 맺은 계약임을 강조한다. 계약의 자유를 존중하여야 한다고 말이다.


또한 공리주의는 전체 행복이 커진다는 것을 강조한다. 불임부부는 아기라는 공리가, 대리모는 큰 수입이라는 공리를 증진시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대한 두 가지 반박이 가능하다.


반박1: 합의에 결함이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계약과 동의의 이면에는 불충분한 정보가 개입되어 있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어떤 선택을 하든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하는데, 압력을 받는 상황, 재정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과연 자발성이 가능한 것인가? 결국 강요에 의한 선택이 된다.


반박2: 여성의 출산 능력은 사고팔 수 없는 고귀한 것이다.


아기나 임신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행위는 그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비하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재화나 사회적 행위의 가치는 우리가 마음대로 부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상품화시킬 수는 없듯이 인간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이지, 사용하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존중과 사용이라는 서로 다른 방식이 필요한데 먼저 존중이란 그 사람의 가치를 그를 이용했을 때보다 더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이 시대의 도덕 철학자인 엘리자베스 앤더슨(Elizabeth Anderson)은 대리 출산 논란에 이 논리를 적용했다. 그는 대리 출산 계약이 여성의 노동과 아기를 상품화함으로써 그 가치를 비하하고, 아기를 사랑하고 보살펴야 할 인간으로 소중히 여기기보다는 이익을 얻는 수단으로 이용한다고 한다.

[앤더스 강의 포스터 출처 구글 이미지]

또한 상업적 대리 출산이야말로 여성의 몸을 물건을 찍어 내는 공장으로 비하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대상화는 부모의 본분을 박탈하는 것이며 여성의 노동을 소외된 노동으로 전락시킨다고 주장했다.


대리 출산 계약에서, [어머니는] 아기와 모자 관계를 형성하지도, 형성하려 시도하지도 않겠다는 데 동의한다. 임신이라는 사회적 행위가 마땅히 지향해야 하는 목적인 아기와의 감정적 유대를 억지로 끊기 때문에 어머니의 노동은 소외된다.


이 주장은 공리주의에도 반대한다. 앤더슨은 모든 재화와 사회적 행위를 공리(혹은 돈)로 평가한다면, 아기, 임신, 부모 역할처럼 더 높은 기준으로 평가해야 마땅한 재화 및 사회적 행위의 가치를 비하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더 높은 기준이란 무엇일까? 한 가지 답은 이마누엘 칸트의 견해로써, 인간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어서 물건취급을 하면 안 되며 존엄성을 가진 목적의 존재로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하나의 시각은 그것이 추구하는 목적을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임신이라는 사회적 행위가 지향해야 하는 목적, 어머니와 아이의 감정적 유대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이론을 들 수 있다.


외주임신


한때 '아기 M(Baby M)’으로 알려졌던 멜리사 스턴은 조지 워싱턴 대학교에서 종교를 전공하고 최근에 졸업했다. 뉴저지에서 그녀의 양육을 둘러싼 유명한 소송이 벌어진 지 20년도 더 지났지만, 대리모 논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유럽에서는 많은 국가가 상업적 대리 출산을 금지하고, 미국에서는 10여 개 주가 이를 합법화했고, 10여 개 주가 금지했으며, 다른 주들은 법적으로 애매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오늘날에는 유전자 기술이 더욱 발전하여 대리모는 자신의 자궁만으로 빌려주면 되고, 불임부부의 정자와 난자를 체외수정하여 삽입하게 된다. 따라서 이 경우 대리모는 생물학적 어머니라고 하기도 어렵다. 이제는 “한 사람(보통은 친어머니)으로부터 난자를,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궁”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발전이 도덕적 문제의 해결을 가져다주는가? 얼핏 보면 그럴 것 같지만, 결국 본질적인 문제는 변함이 없다. 대리모의 몸을 통해 품어지는 아기와의 관계는 여전히 대상화시킬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문제는 오늘날 대리모를 구하는 가격이 비싸져 인도 도시 아난드에서는 외주임신제도가 활성화되고 있다고 한다. 불임부부 역시 자국보다 인도 대리모가 가격이 훨씬 저렴하여 이득을 얻는다.

[인도 아난드의 대리모들 출처 KBS]

이런 방식에서는 아이는 유전적으로 대리모의 자식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아기를 거래하는 것이 아니며 대리모가 아기의 소유권을 주장할 개연성도 적다. 하지만 이런 대리 출산으로 도덕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체외 수정을 통한 외주 임신은 도덕적인 문제를 더욱 부각시키게 되었다. 한 인도 대리모 여성은 예전에 가정부로 일할 때는 한 달에 25달러를 벌었는데, 9개월의 노동(임신)으로 4,500달러(15년치 수입)를 벌 수 이는 대리 임신은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었다고 한다. 그것이 자유로운 선택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결국 대리 임신 역시 가난이라는 문제가 선택을 강요하는, 그리고 여성의 몸을 여전히 도구로 전락시키는 행태는 변함이 없기에 논란이 해결될 수는 없는 것이다.




샌델은 이 장을 다음과 같이 마무리하고 있다.


아이를 출산하거나 전쟁을 하는 것처럼 서로 이질적으로 보이는 행위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도의 대리 출산과 앤드루 카네기가 남북전쟁에서 자기 대신 싸울 군인을 고용한 사례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 사례에서 정의에 대해 둘로 갈라져 경쟁하는 두 가지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자유시장에서 우리의 선택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세상에는 시장이 존중하지 않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미덕과 고귀한 재화가 존재할까?



<5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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