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밀레니얼 재테크 블로그에서 처음 발행되었습니다.
당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얘기하지 말고 당신의 예산을 보여주십시오.
- 조 바이든 (미국 제46대 대통령)
가계부는 예산 설정과 행동 변화에 필요한 데이터만 제공할 뿐 실제로 소비를 줄이는 것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궁극적으로 소비를 줄이는 것은 가계부가 아닌, 행동의 변화입니다.
이러한 행동의 변화를 위해선 시스템을 만들고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일을 시작하고 몇 년에 걸쳐 3개의 다른 가계부 앱을 쓰면서 지출을 통제하려고 해본 적이 있습니다. 첫 번째 시도는, 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는데, 2주 정도는 매일 꼼꼼히 가계부를 작성하다 어느샌가 써야 한다는 사실조차 기억에서 사라졌죠. 당연히 지출 통제는 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는, 그 후로 1년 정도가 지난 뒤였는데, 이번에는 나름대로 사회생활도 좀 해봤으니 이번엔 꾸준히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매일 열심히 가계부를 작성했죠. 한동안 계속 쓰다 보니 뭔가 보람있다고 느껴지고 심지어 재미있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3개월 정도 열심히 썼지만 매일 쓰는 것에 대한 부담감에 결국 지쳐서 포기하게 되었죠. 역시 지출은 그대로고 저축도 잘 안 되었습니다.
세 번째 시도는, 그 후로 다시 1년 정도가 지난 뒤였습니다. 전에 썼던 두 앱이 모두 무료였기 때문에 쉽게 그만뒀다고 생각되어 그래서 이번에는 가장 좋다는 유료 가계부 앱을 과감하게 1년 치 결제했죠. 역시 유료 앱은 좋더군요, 그 기능에 감탄하면서 이번엔 거의 반년 정도는 쓰고 포기했습니다.
세 번의 실패 뒤론 가계부는 나랑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그냥 쓰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그 대신 매달 월급이 들어오면 먼저 월세나 카드값 등 고정 비용을 이체하고, 저축할 돈을 별도의 통장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남은 돈은 최대한 아껴 쓴다는 마음으로 지냈죠.
신기하게도, 매일 가계부를 쓸 땐 월급의 10%도 저축하기 힘들었는데, 언제부턴가 월급의 3분의1 정도를 저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이 그렇듯이, 저도 종잣돈을 모으기 위해선 매일 가계부를 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아니면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거로 생각했죠. 하지만 위에서 보듯이 가계부를 열심히 써도 생각보다 지출 통제나 저축이 잘 안 됬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했던 경험처럼 가계부를 열심히 쓰다가 포기한 경험은 아마 꽤 많은 사람이 했던 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계부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모든 지출을 빼먹지 않고 작성해줘야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죠.
매번 지출이 있을 때마다 작성하는 게 아니라면 시간이 지나 까먹을 수도 있고, 가계부를 작성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도 사실 쉽게 잊을 수 있죠. 그리고 이런 일이 몇 번 일어나면 다시 시작하기보단 차라리 포기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저도 이런 이유로 포기하게 되었죠.
그리고 매일 가계부를 작성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시간도 많이 듭니다. 매일 저녁 최소 10분정도 여기에 쓴다고 하더라도 이는 한 달이면 5시간, 1년이면 60시간 정도에 해당하는 시간이죠. 책을 한 권 읽는데 평균 5시간이 걸린다고 한다면, 12권의 책을 읽을 시간을 매년 가계부 작성에 쓰는 것이죠.
물론 요즘엔 카드와 연동이 되는 가계부 앱을 이용하면 지출이 자동으로 적히면서 시간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험상 이것도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직까진 기술과 데이터의 한계로, 앱이 모든 지출을 정확한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없고, 특히 현금을 이용한다면 본인이 결국 지출을 입력해 줘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과 밥을 먹을 때 먼저 본인이 계산하고 따로 돈을 받으면 이에 맞춰 다시 내용을 수정해줘야 하죠.
따라서 앱을 쓰더라도 결국 가계부를 제대로 작성하려면 시간이 꽤 들어가고, 중간에 포기하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소비를 줄이는 것은 행동의 변화입니다. 같은 소비 패턴을 유지한다면 지출을 절대 줄지 않죠. 따라서 과연 가계부를 쓰는 일이 막상 행동을 변화시키는지 한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제 생각에 가계부를 쓰기 시작하면, 이것을 꾸준히 쓴다는 그 행위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열심히 지출을 기록하면 뭔가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뿌듯해지지만, 정작 소비를 줄이는 것에는 신경이 덜 가는 것이죠. 그래서 막상 행동의 변화에 신경쓰지 않고 가계부를 열심히 쓰고 있다는 사실로 합리화하게 됩니다.
제가 가계부를 쓰지 않기로 다짐한 후 저축이 늘어난 것도 이 이유인거 같습니다. 가계부를 쓰는 행위에 더이상 신경쓰지 않으므로, 실제 소비 패턴을 바꾸는 것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물론 가계부를 써서 행동의 변화가 생기고 덕분에 소비를 잘 관리하게 된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꽤 많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에겐 최대한 가계부를 쓰지 않고도 지출을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죠. 이러한 방법은 밑에서 더 설명하겠습니다.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가계부를 써도 돈이 잘 모이지 않는다면 가계부를 왜 쓰라고 할까요? 저는 가계부는 예산을 설정하고 행동 변화에 필요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달에 얼마를 저축하고, 얼마를 소비하려는 계획을 세우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본인이 어떻게 소비를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하죠. 가계부는 이에 필요한 소비 데이터를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최근 3개월 동안 월급의 20%는 저축, 남은 80%중 절반 정도는 월세, 식대비, 교통비에 쓰고 남은 절반은 그 외 카테고리에 쓰고 있다 같은 정보를 말하는 것이죠. 이러한 데이터가 없이는 제대로 된 예산을 설정하기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데이터는 2~3개월 치 같이 최소한의 양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몇 달 치의 데이터가 필요한 이유는 매월 지출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평균을 잡아주는 것이 더 정확하기 때문이죠. 이 이상으론 매일 꾸준히 가계부를 작성하는 것은 소비를 줄이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얘기했듯이 결국엔 행동의 변화가 있어야 지출을 줄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어떤 식의 변화가 필요할지 판단할 때 가계부의 데이터가 필요하죠. 예를 들어, 본인의 예산에서 식대비를 소득의 20%로 정했는데 실제 가계부에선 30%를 소비한다고 나온다면, 여기서 어떤 식의 변화를 해야 할지 (예를 들어 외식을 줄이거나 커피를 직접 만들어 마시는 등) 선택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이런 경우에도 매일 가계부를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선 시간이 꽤 오래 걸리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가끔 확인할 때 가계부를 다시 써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돈을 모으려고 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얼마를 모을지 먼저 정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매달 저축할 금액을 정하고, 남은 부분은 예산을 짜서 각종 소비에 배분하는 것이죠.
저축 목표는 비상금 마련, 부채 상환, 혹은 투자를 위한 종잣돈 마련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때는 반드시 언제까지, 얼마라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목표를 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매월 저축해야 할 금액을 정할 수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매월 400만 원을 월급으로 받는 한 밀레니얼 직장인 (편의상 앞으로는 A라고 부르겠습니다)이, 3년 뒤 투자를 위한 5,000만 원 종잣돈을 모으는 것으로 목표를 잡는다면, 매월 150만 원 정도씩 저축을 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소비 줄이기‘ 페이지에서 소개한 것처럼, 예산 설정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소비를 고정비와 변동비로 나누는 방법이 있고, 주거비와 식비 등 항목별로 나누는 방법도 있죠. 그리고 50/30/20 법칙처럼 세후 수입의 50%는 월세처럼 필수로 써야 하는 소비에, 30%는 유흥비처럼 원해서 쓰는 소비에, 남은 20%는 저축에 배분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참고만 될 뿐, 예산은 결국 개인의 저축 목표와 소비 우선순위에 따라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개인적으론 전 최대한 쉬운 방법을 선호합니다. 과정이 쉬워야만 포기하지 않고 오래동안 지속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처음 예산 설정을 시작하는 밀레니얼 직장인은 저축과 소비, 두 가지 항목만 가지고 예산을 설정하는 방법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애기한 A의 예로 들면, 매월 150만 원씩 저축한다면, 대략 수입의 40% 정도를 저축해야 하는 것으로 계산됩니다. 그리고 남은 60%는 각종 소비에 배분해야 하죠.
여기서 최근 몇 달 정도의 가계부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만약 A의 최근 3개월간 소비 비중이 소득의 80~90%였다면, 갑작스럽게 60%로 소비를 줄이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겠죠. 따라서 실제 데이터를 보고 예산을 조정해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만약 저축 목표가 생각보다 너무 높다면, 다시 위로 돌아가서 목표를 수정해야 할 수 있겠죠. 아니면 앞으로 소비를 줄여 저축 목표를 맞추는 것을 목표로 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A가 목표를 수정하지 않고 저축을 40% 하는 것으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그렇다면 A의 예산 배분은 40/60으로 맞추어졌습니다. 하지만 최근 가계부 데이터로 보면 실제로 소비는 대략 30/70에 가깝다고 나옵니다. 따라서 저축 목표를 맞추기 위해선 소비를 10%를 줄여야 하죠.
소비를 줄이기 위해선, 소비 항목을 쭉 훑어보고 과연 절약할 수 있는 항목이 무엇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여기서 본인의 우선순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A는 밥을 먹을 때 맛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배만 부르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커피의 경우, 맛은 상관없고 정신을 맑게 할 카페인만 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A는 집에 음식을 하거나 커피를 만드는 도구가 없어서 주로 밖에서 밥과 커피를 해결합니다. 따라서 앞으로 하루에 한 끼를 집에서 해 먹고 커피도 직접 만들어 마신다면, 10% 정도의 소비를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죠.
이러한 방법을 통해 어떻게 행동을 변화시켜야 할지 대략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우선순위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겐 더 저렴한 집으로 이사를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자가용이 아니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일 수도 있겠죠.
여기서 만약 어떠한 행동의 변화도 위에서 설정한 예산 배분을 맞출 수 없다면 다시 첫 번째 단계로 돌아가 저축 목표를 수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위의 내용은 사실 말은 쉽지만 실천하려고 하면 꽤 어렵습니다. 하루아침에 자신의 생활 패턴을 바꾸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죠. 그래서 최대한 실천하기 쉽도록 시스템을 만들고 천천히 행동을 변화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스템이란 월급을 받는 날부터 시작합니다. 월급을 받으면 먼저 월세 같은 고정비용과 저축을 바로 이체하는 것이죠. 그러면 그달 소비할 수 있는 금액이 바로 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체크카드를 사용하면 돈이 바로 빠져나가서 더 소비를 잘 관리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동시에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매달 조금씩 소비 패턴을 바꾸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에 너무 많이 바꾸려고 하면 중간에 포기하기 쉽죠.
이렇게 실천하다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통장 잔고가 매월 더 늘어나게 되는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소득은 바뀌지 않았지만, 소비가 줄어서 그런 것이죠. 매달 조금씩이라도 통장에 잔고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기쁨은 웬만한 소비보다도 낫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