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철학과 최진석 교수님께
최진석 교수님,
교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는 이해를 일부 할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 우리나라의 상황이 스스로 자립할 수 없었다는 시각도 흥미롭고 한 편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긴 합니다.
다만 두 가지 측면에서 전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첫 번째로는, 친일을 생계로 했는지, 아니면 영달을 위해서 했는지 정도는 가려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죽지 않기 위해서 일본군이 시키는 일을 했는지의 정도에 해당하는 ‘친일활동’과, 일본군 장교 명찰을 단 한국인이 같은 한국인을 괴롭혔던 활동을 달리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생계를 위해서 그랬다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그랬다면 무조건 용서해야 할까요? 제3, 제5 공화국에서 민주투사를 고문하던 공안간부도 처자식이 있는 사람들이었지요. 고문을 하다가 쉬는 시간에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살뜰하게 아들을 챙기던 그들을 생계라는 이름으로 무조건 용서를 해야 할까요? 그 시절에도 시위대 안에서 본인의 생명과 영달을 포기하고, 구호를 외치다 고문을 당한 민주투사들의 희생 덕에 우리가 지금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 게 아닐까요?
같은 일이 우리나라에 생겼을 때 우리 후손과 자식들에게 어떤 교훈을 줘야 하는 지의 측면에서 생각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가족을 챙겨라, 일단은 살고 봐라, 먹고는 살아라...라는 구호가 틀렸다고만 하기는 어렵겠습니다. 저도 제 자식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확실하게 얘기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그저 빌어먹기 위해서 조금 일본제국에 협조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친일을 했는지 구분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냐 하면, 비슷한 일이 우리나라에 또 생겼을 때 우리가 우리 후손과 자식들에게 바라는 행동양식이 어떤 것일까 하는 측면에서 보면 더욱 명확할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나라가 스스로의 힘으로 해방을 하지는 못했지만, 한국 전쟁과 미군정의 방해로 제대로 된 친일에 대한 단죄를 하지 못한 것은 대한민국의 치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두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 번째로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과 친일을 했던 분들이 해방 이후에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입니다.
백모 장군의 아들은 강남역의 수백억에 달하는 건물을 포함해서 많은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건물에서 근무했던 사람으로서 그 아들들이 정당하게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여 자산을 취득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의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주체사상을 만들었다는 황장엽이 탈북하여 망명을 한 뒤에 죽었을 때 대전 현충원에 묻힌 일입니다.
그가 북한의 고위 공무원이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가 이전에 한 일들과 상관없이, 더 살기 좋은 대한민국에 망명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우리나라는 그를 보호하고 예우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죽었을 때 국립묘지에 묻힐 자격이 있는지는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국립묘지는 대한민국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거나
큰 공헌을 한 분들을 기리기 위한 국립묘지인데, 이 전 대통령은 그를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했습니다. 70년을 다른 철학으로 살다가 죽기 전에 본인의 원칙과 철학을 바꾼다면 기존의 70년 간의 철학에 상관없이 갑자기 존경받아야 하는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우리 후손에게 무슨 교훈을 줄 것인지, 어떤 행동을 원하는지에 대한 시각에서 보면 친일파, 특히 친일로 인해 기본적인 생계가 아닌 영달을 영유했는지의 기준이 달라야 하며, 자의던 타의던간에 그들이 했던 친일활동, 그래서 독립운동을 하거나 혼선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일반 민간인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그 활동들에 대해서 사죄해야 하고, 친일 시기에 취득한 자산에 대한 환수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좌제를 적용해서 후손들을 벌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친일활동을 한 자들이 어떤 활동을 했는지, 그들이 친일로 취득한 자산에 대한 환수 또는 몰수, 독립운동을 한 분들에 대한 예우 및 보조와 같은 조치들이 시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5년 해방 이후에 제대로 된 친일에 대한 단죄를 하려고 할 때마다, ‘경제가 어려우니 민심을 하나로 모으자’,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로 나아가자’와 같은 구호를 많이 봐왔습니다. 이런 지루한 반복은 제대로 된 친일활동에 대한 단죄 또는 사죄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랑스의 단죄 행동을 우리가 무조건 따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무엇을 과거로부터 배울 것인가? 무엇을 후손에게 물려줄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본다면 좀 더 명확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http://m.mediatoday.asia/181106#_enlip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