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클로이 자오, 이터널스, 미국, 2022.
감독 클로이 자오, 주연 셀마 헤이엑(에이잭 역), 젬마 챈(키르케/쎄르시 역), 리처드 매든(이카리스/이카루스 역), 리아 맥휴(스프라이트 역), 쿠마일 난지아니(킨고 역), 앤절리나 졸리(티나/아테나 역), 마동석(길가메쉬 역), 배리 키오건(드루이그 역), 로런 리들로프(머큐리/매커리 역), 브라이언 태이리 헨리(패스터스/헤파이스토스 역), 이터널스, 미국, 2022.
이 일기장의 제목과 소제목에는 여백이 많이 배정되어 있지 않아 영화를 감평할때는, 보통 소제목에 간단한 출처만 인용하고, 일기를 시작하기 전 비로소 주연을 상세히 적는 편이다. 전체적으로 영화를 연출하는 감독이 논밭이라면, 주연들은 그로부터 심기워 싹을 튀우고 줄기를 서로 얽어 결실을 맺는 농작물과도 같다. 그러므로 나는 늘상 주연을 쓸 때, 영화사가 주로 광고하는 주연 외에도, 서사의 축을 담당하여 주연의 역할을 더하는 이가 있는지를 눈여겨본다. 영화의 모든 장면과 소품에 결코 낭비란 있을 수 없으니, 결국 아주 작은 소품이나 역할을 다하는 배우도 사실상 주조연의 가름이 어떨때는 너무 가혹한가 싶기도 하나, 무엇 하나 빠지면 서운한 비빔밥에도 혀가 더 끌리는 재료가 있기 마련이므로, 나는 가능한한 배우들 중 이름을 알 수 있는 이들을 좀 더 눈여겨보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좌우지간 예전만은 못해도, 나는 장예모 감독의 '영웅' 과 알퐁소 꾸아론 감독의 '그래비티' 를 미처 영화에서 못 본 일을 지금까지도 꽤 아쉬워하는데, 후자야 시간이 안되어 그렇다쳐도, 전작은 당시 친했던 친구가 영화관에서 돈 주고 본 일을 두고두고 후회한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나 못지 않게 무협에 대한 향수가 깊었던 동성 친구라 더욱 믿음이 갔다. 그런데 웬걸, OCN채널에서 툭하면 틀어주는 장면을 볼때마다, 물론 정통무공을 이십년 가까이 하는 지금으로서는, 아이고 연출이 지나치게 과장되었구나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지만, 좌우간 이십대 초반, 벌써 이십여년 전에 처음 그 영화를 보앗을때, 나는 주제부터 서사, 장면 연출에 이르기까지 정말이지 당시로서는 최적의 무협 영화였지 싶어 몹시 찬탄했었다. (훗날 이 계보는, 비둘기와 총격전으로 유명한 오우삼 감독의 검우강호가 잇게 된다. 영웅보다 좀 더 고전적이면서도 세련된 무협의 연출이 부족하지 않다.)
역시 마찬가지로, 타인들의 평만 듣고 극장에 보지 못했음을 후회하는 영화가 여기 또 하나 있다. 바로 전작 인피니트 사가 시리즈와 전혀 다른 결을 가지고 출발하는 마블의 '이터널스' 다. 사실 몇 년간 크고 작은 서사를 모두 챙겨보면서, 마침내 지구의 평화를 되찾게 된 영웅들의 이야기가 한 차례 큰 막을 내리면서, 결국 큰 틀로 보자면 지구를 침략하는 외계 악당들을 물리치는 영웅의 이야기가 수없이 반복될뿐인데, 거기에 역전된 성 관념이라거나, 정치, 경제, 사회적 개념을 빗대어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다르게 보이고자 애쓰는 설정 및 연출이 과해지면서 피로감을 급하게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적어도 엔드게임 이후로 나처럼 그다지 광적이지 않은 마블 팬들은 점점 이 피로에 물리고 있었고, 그나마 의미가 있을만한 서사라면, 이미 완성된듯 보이는 성인 영웅들과 별도로 천천히 성장해가는, '우리들의 친근한 이웃' 사춘기 소년 스파이더맨의 '집으로 돌아왔다, 멀리 떠나왔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3부작 일대기 정도였다. 제목에서부터 이미 스파이더맨의 서사만큼은, 전우주적 규모로 번져가는 인피니트 사가를 배경으로, 개인으로서의 청소년이 어떻게 영향받고 자아를 형성하는지를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잠깐 이야기가 다른데로 샜는데, 여하튼 이터널스라니, 이 양반들은 또 무엇인가, 게다가 자꾸 무슨 홈쇼핑도 아니고, 매회 거듭할때마다 초유의 악당! 하면서 여러 악당들이 나왓는데, 이번엔 또 이 영웅들이 나타나기 이전에 원초적 초인들이 있었다니, 그것도 이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 이미 먼저 썼던 설정과 서사가 아닌가 싶기도 하여 이래저래 보지 않았다.
결론은 버킹검...이 아니라,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면 어느정도 꼭 봐야할 영화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의 설정은 성경과 아주 유사하다. 주고 받는 대화없이 마치 구약처럼 부지불식간에 강림하여 할말만 하고 떠나는 창조주 아리솀은, 선사시대 이전부터 이계의 괴물 디비안츠로부터 학살당하는 인류를 보살피기 위해 인간보다 초월적인 존재 이터널스를 창조하여 지구에 파견한다. 이들은 사실, 비단 지구뿐 아니라 온 은하계 곳곳에 뻗은 지성체들을 보호하고 있는데, 지구에는 마치 그들의 선지자 역할을 하는 치유사 에이잭을 비롯, 하늘을 날고 눈에서 광선을 뿜는 이카리스, 손에 닿는 물질을 다른 물질로 바꿀 수 있는 쎄르시, 환상과 환영을 만들 수 있는 스프라이트, 손에서 에너지결집체를 모아 총처럼 쏘는 킨고, 가장 강한 힘을 지닌 길가메시, 모든 무기에 정통한 티나, 가장 빠르게 내달리는 마카리, 온갖 도구를 고안하고 만드는 패스터스, 필멸자들의 정신을 조종해 뜻대로 부리는 드루이그가 한 무리를 이룬다. 이들은 아리솀이 만들어준 외형으로 고정되어 결코 늙지 않고, 기본적으로 날렵하고 강한데다 현명하다. 그들은 각자 인류의 중요한 시대마다 신화와 전설을 남길 정도로 인류를 많이 돕지만, 결코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며, 때로는 인류를 어떻게 해석하고 대해야할지 서로 반목하고 충돌하기도 한다. 창조주 아리솀은, 지구의 인류 절반이 통째로 지워지는 사건이 발생함에도 결코 이터널스의 초월적인 힘을 인류에게 직접적으로 나눠주지 않고, 이터널스 역시 아리솀과 유일하게 통하는 에이잭의 명령에 따라 시대에 맞는 지식과 철학, 사유 방식등을 적절히 공유하는 등 인류가 '인류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
영화가 지루하고 서사가 난삽하다는 평은, 아마도 주조연을 따로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각 인물들이 모두 인류의 한 시대마다 각자의 역할을 다하고, 연결되는 고리를 보여주기 위해서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소개하고 알려주는 연출이 반복되기 때문일 터이다. 그러나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도 했고, 특히 신앙과 세계사에 대한 약간의 관심만 있다면, 인류사의 어느 줄기에서 초월자라면 어떤 고민을 가졌겠구나, 또 인간은 당연히 이들에게 많은 것을 바랐겠구나, 라고 자연스럽게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 그닥 지루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인간과 함께 지내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에 어느 정도 물들어버린 이터널스와, 또한 그들을 대하는 인간들의 고민 등은, 교회를 다니며 공부하는 내 입장에서도 충분히 공유되고 공감되는 것이라, 딱히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을 틈이 없었다. 덧붙여 시각적인 효과도 매우 훌륭하며, 전투 장면이 적다는 점에 대해서도 공감하기 힘들다. 서사 자체가 지구의 전체 역사를 조망하는 수준인데, 주구장창 싸움만 할 수는 없을 터이다. 다만 결말에 들어 힘이 쭉 빠지는 점과 덧붙여 요즘 마블과 디즈니 측에서 유독 보이는 모습이긴 한데, 지나치게 여러 성 평등의 개념을 보이려고 애쓰는 연출이 결코 긍정적이기만 한 것인지, 이조차 나의 선입견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낯설어서 그럴 터이다. 좀 더 겪어봐야 판단할 수 있을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