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하루의 일상 - 내가 사방에 우겨쌈을 당하여도.

by Aner병문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 고린도후서 4:8~9



회사의 교육팀으로 전보될때 회사에서는 면접을 보면서 '집에서 육아도 쉽지 않을 줄 아는데, 집안의 동의는 충분히 구했느냐.' 고 내 의중을 물으시었다. 어머님께서 돌아가신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일이었다. 아내는 그 당시 곧 복직할 예정이었지만, 우리가 젊은 날에 지금 고생하지 않으면 또 언제나 이른바 '커리어' 를 쌓을 기회가 올지 알 수 없다며, 그 기회를 잡기를 권했다. 어머니 아버지는, 오랫동안 통화해오고 만나셨던 동갑내기 안사돈께서 돌아가신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제주도에서 잠시 요양중이셨고, 산에 다닐 수 있는 여유와 제주도를 다녀올 수 있는 한 달 남짓의 기간을 매해 보장해준다면, 나머지 육아는 어머니 아버지꼐서 최선을 다해보겠노라고 약속하셨다. 그래서 나는 사내 강사로서 별도 교육을 받았고, 시험도 무사 통과했으며, 교육 보조 업무 및 몇몇 강의에서도 비교적 좋은 평을 들었다. 여기까지였다.



보조 교육이 끝나고 4일 뒤, 나는 바로 혼자서, 신규 입사자들을 교육하는 3주간의 교육을 배정받았다. 나는 회사에서 주체적인 요구를 잘 하지 않는 편인데, 이번만큼은 가능한 회사의 다른 업무에서 제외해달라고 고집을 부려, 시간을 확보하고 교육 준비를 했다. 이 때의 교육 준비가 얼마나 방향을 잘못 잡고, 멍청한 짓이었는지는 나중에 따로 일기에 쓰겠다. 한 가지만 말하자면, 나는 내 상사이자 전임 강사가 짜준 기승전결 내에서 아주 편하게 했던 교육을 내 스스로의 능력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나는 전체적으로 교육 과정을 보지 못했고, 각 강의의 목표는 알고 있었지만, 그 목표를 지식 수준도, 살아온 결도 다른 남녀노소 학생들에게 전달할지 전혀 세부적인 그림을 짜지 못했다. 나는 지난 교육 보조 때와 다르게 내가 느끼기에도 허위허위 초라하고 정신없는 중구난방식 강의를 했다. 매일의 출석 업무를 비롯하여 입사 서류 정리, 전산 처리, 또 실제 업무 처리 연습을 위한 배정과 메일 보내기 등 곁가지 업무가 겹치지 나는 매일매일 눈이 돌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집에 가면 결코 편한 것이 아니라, 오매불망 나 오기만을 기다리는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소은이를 넘겨받아 또 잘 때까지 소은이를 돌봐야 했다. 주말에는 물론 아내가 거의 대부분 왔지만, 아내 역시 폭염과 홍수 등으로 숲을 돌보고, 평소의 업무를 하느라 나 못지 않게 지쳐 있기에 우리 부부는 몹시 피로해져갔다.



나는 보통 아침 4시에 일어나서 간단하게 아침먹고 씻고 준비하여 다섯시에는 집을 나서고, 여섯시쯤 도장에 도착하여 일곱시 전후까지 연습하였다. 씻고 다시 회사에 가면 보통 일곱시 삼십분. 다시 한번 세수하고, 땀을 식힌 뒤 걷기 위한 반팔 반바지에서 회사용 청바지와 셔츠로 갈아입고 하루의 교육 준비와 업무 준비를 하긴 하지만, 늘 계획대로 잘 되진 않는다. 정신없는 8시간을 보낸 뒤 학생들을 보내고 나면, 다 못한 업무와 교육의 부족한 점에 대한 지도를 받아 다시 다음날 교육 준비를 하다보면 오후 8시가 넘기 예사였다. 이러다보니 안그래도 덥고 힘든 나날에 기운 넘치는 손녀를 보느라 어머니 아버지도 예전과 다르게 더 예민해지시고, 내가 너무 회사에 오래 있는게 아니냐는 말씀까지 나오게 되었다. 육아는 정말이지 내 삶보다도 아이의 기준에 맞추어 몸과 마음을 다 집중해야하는 일이다. 충분히 지치실 수 있는 일이고, 솔직히 우리 부부가 해야 할 일을 맞벌이한다는 이유로 연세 드신 부모님께 일정량 이상을 전가한지라 죄송스러웠다.



그러므로 나는 몹시 치이는 일상을 살았다. 회사에서는 회사대로 치이고, 집에서는 집대로 치이고, 또 주말에 올라온 아내도 지쳐 있었으므로, 아내와 나는 몸과 마음을 나눌 여유도 없이 교대로 쉬고 아이를 돌봤다. 심지어 나는 주말에도 불안하여 회사에 나와 내부 자료를 읽고 조금이라도 모자란 교육을 보충할 생각에 아내에게 어쩔 수 없이 소은이를 봐달라는 부탁도 해야 했다. 그러므로 나는 주말을 제외하면 평소에 거의 서너 시간 정도만을 잤다. 나는 설명서와 교육 자료는 누구보다 많이 읽었으므로, 글을 쉼없이 읽었지만 여유 있게 책은 단 한 줄도 읽지 못했다. 짬이 나는 출퇴근 시간에 나는 잠시 성경을 읽거나, 유튜브를 틀어놓고 눈을 감았다가 또 괜히 불안해서 뭔가 다른 매체를 보곤 했다. 주중에 내게 유일하게 허락된 시간은, 오로지 도장에서 약 한 시간 정도 혼자 태권도에 집중하는 시간일 뿐이었다. 나는 정말이지 성경의 말씀대로 에워쌈을 당하고 있었다. 나는 갈 곳이 없었고, 막막하였고, 피곤하였으며, 누구와도 말하고 싶지 않다가도, 또 한편으로는 누구에게라도 내가 이렇게 힘들다고 말해주고픈 열망에도 시달렸다.



다행히도 소은이는 잘 크고 있다. 말도 정말 더 많이 늘었고, 이제 제 스스로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 수준을 지나쳐 무엇이든 제 손으로 직접 하지 않으면 '소은이가 할꺼야! 소은이가! 내가!' 라고 할 정도로 고집을 부리기도 한다. 아내도 매주 지방과 서울을 왕복하며 업무 보랴, 육아하랴, 정신없을텐데 늘 예민함 한번 없이 내 몸과 마음을 살펴주어 고마웠다. 아내의 말을 잘 들으면 일상에 무리가 없다. 아내는 폭염 때문에 피부가 따가워서 힘들어하고, 최근에 라식 수술을 한 눈이 결국 다시 나빠져서 새롭게 안경을 하나 맞추었다. 정말이지 아내라도 없었다면, 나는 이 막막한 시간들을 견뎌내기 정말 어려웠을 터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땅히적을곳이없어서(짧은끄적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