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에 대하여...
그러므로 병子가 가로되, 문신(文臣)이란 곧 '글을 다루는 신하' 란 뜻이니 군주를 보좌하여 나라의 살림을 돌보고 내정과 외교를 맡아 각기 본분을 다하는 선비들을 이르...아, 이게 아닌가 .
문신하면 생각나는 추억이 있다. 이십대 중후반 시절 나는 아침에는 권투를 배웠고 저녁에는 이대 가구거리 근처의 도장에서 잔 프랭클 선생 계열의 주짓수를 배웠다. 아침 나절의 권투 체육관은 대부분 서둘러 운동을 마치고 출근하려는 아저씨들 몇이 전부였지만, 저녁 무렵의 주짓수 도장은 굉장했다. 위치가 위치인만큼 주변도 화려했지만, 수련생들의 절반 이상이 미군이나 외국인이었다. 당시는 주짓수가 정식으로 한국에서 들어와 꽃피운지 10여년, 모든 주짓떼로들의 성지로 꼽히는 아부다비 비다부아 대회의 티켓도 한두장이나마 한국에 막 배당될 무렵의 일이었다. 지금은 어딜 가나 권투와 주짓수가 이른바 실전무술의 최고봉이라 꼽는 이들이 적지 않으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여하튼 나는 그 곳에서 열심히 구르고 발버둥치면서 주짓수와 영어를 배웠다.
아무래도 일본 > 브라질 > 다시 일본과 미국 > 한국의 순으로 (계열에 따라 차이는 있다.) 퍼져나간 무공이니만큼 도장 분위기 또한 자유롭고 개방적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라틴 음악을 틀어주었으며, 승급에 성공하는 사람들은 브라질 본토 전통에 따라 돌아가며 띠로 가볍게 잔등을 맞기도 했다. 그럴때마다 나는 외국인들의 엄청난 근육에 새겨진 문신을 보았다. 나는 가게를 운영하던 시절에 춤바람이 나서 주말마다 쌀사와 바차따를 배우느라 한동안 홍대도 엄청 들락거렸는데, 홍대에서도 그 정도의 문신은 못 봤지 싶다. 우악스럽고 괴기스러운 문신부터 해서 자기 가족을 새긴 친근한 문신도 종종 보았다. 하지만 그 중 제일 압권은 따로 있었으니, 지금도 눈에 선명한, 몸이 호리호리하고 작은 미군의 문신이었다. 외국 사람이라고 다 몸이 크고 뼈대가 굵은건 아니구나 싶은 사람이었는데, 훈련을 좀 하다 갑자기 그대로 푹 쓰러져버렸다. 무척 더운 여름날이었는데, 평소 운동을 잘 안하던 사람이(군인이?!) 갑작스럽게 격렬하게 움직이자 열이 뻗쳐서 버텨내지 못한 것이다. 사범님은 찬물을 떠오라고 하셨고, 그는 힘들게 두꺼운 도복을 벗었다. 유도나 주짓수 도복은 잡고 당기고 밀고 조르는 힘에 버티기 위해 손톱이 빠질 정도로 튼튼하고 두껍게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그 도복을 벗자마자 가녀린 하얀 몸에(묘사가 왜 이래) 새겨진 그것은 도덕경....?!! (알아채버린 왕년의 전공자) 맙소사, 그 미군은 그 작고 가녀린 등에, 왼쪽에는 금방이라도 뛰쳐나올듯한 동양화 풍의 호랑이 한 마리, 그리고 오른쪽에는 도덕경의 일부를 새겼는데, 상선약수 넉 자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헤이, 두 유 노우 김연.. 아니, 김용옥?!
이래저래 탈도 많고 꿈도 많고 허세도 많던 그 시절, 누가 볼세라 두꺼운 책에 꼭 술 한 병 챙겨다니던 그 시절, 실전적이고 효율적인 기술이라면 어데든 찾아가서 무턱대고 배우러 가던 그 시절, 나는 '경망스럽게도' 머리를 3mm로 밀고, 번개 모양 스크래치를 냈으며, 코 밑에는 멕시칸식 수염을 맵시나게 길렀고, 귀까지 뚫고 다녔다. 지금은 신경도 쓰지 않던 대머리가 그때는 왜 그리도 싫었는지, 파마를 해보려다 도저히 어렵겠다 하여 간 김에 염색까지 하기도 했었다. 키에 비해 어깨가 넓어지고, 도복에 늘 긁혀 얼굴은 흉터투성이로 험상궂었으며, 눈까지 살기에 번들거려 시비붙는 것조차 자랑스럽던, 정말이지 천박하고 피폐한 시절이었다. 나조차도 부끄러운 기억이니 당시 부모님의 심정이 몹시 참담하셨다는 말만 더하고 싶다. 내 생전 옷에 관한 책을 사다보며 옷 맵시까지 신경쓰고 다니던, 이십대 후반의 시절이었다. 늘 저녁마다 온갖 휘황찬란한 문신들이 눈에 들어오니, 나 역시 서른이 되기 전에 문신 하나 꼭 하고 싶다 생각했었다. 점점 가게의 가세가 기울고, 공부를 그만두고, 삶의 때가 끼기 시작하면서 나는 꾸미는데에 점점 심드렁해졌고, 결정적으로 권투를 가르쳐주시던 왕년의 세계 챔피언께서 '븽문아(꼭 븽문이 아니면 븅문이라 부르셨다.), 니는 사내 자식이 뭘 그렇게 주렁주렁 달고 다니냐, 여자맹키로!' 스파링을 하기 전 귀에서 귀고리를 빼내느라 낑낑거리던 나를 보며 책망하시었다. 하여 다시 머리를 검게 물들이고 귀고리를 빼고 얌전한 옷으로 주짓수 도장에 찾아가자 젊은 사범님은 픽 웃으며 말씀하셨다. 이제 철 좀 든 거야? 그렇게 꾸밈에 대한 내 열정은 나이와 함께, 그리고 무공을 익히는 사람의 질박함에 밀려 사라졌다. 지금은 문신을 보아도 그러려니 한다.
단순히 '철이 없어서 겉 꾸밈새에 신경쓴다' 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다. 라깡은 '사람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고 했다. 아침 저녁으로 운동 나가고 사잇시간에는 공부하고 가게 운영하기도 바빴던 그 시절, 나는 왜 점점 기울어가는 가게 사정도 외면하고 새 옷을 사고 귀를 뚫고 머리를 물들이며 문신을 하고 싶어했을까? 돌이켜보면 내 청춘에는 그러한 꾸밈이 필요치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타인에게 멋있어보이고 싶어서' 타인의 미적 기준을 내 몸에 적용시킨 것이다. 꾸미는 일 자체가 철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 것이 내 욕망이 아닌데도 줏대없이 타인의 욕망을 따라가서 내 몸을 물들였다. 공부자께서 '내가 하기 싫은 일은 타인에게도 강요하지 말라' 고 했을 때, 노자가 반박하며 '내가 하기 싫은 일이지만 타인은 하고 싶어할지 어떻게 아는가? 그러므로 타인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타인에게 강요치 말라' 고 했던 것과 맥락이 비슷하다. 어찌 되었건 철학을 공부했던 사람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젊었을 적 치기로 묻어두고 싶은 일이지만, 이십년 지기 곽 선생이 그 때의 사진을 아직도 몇 장 가지고 있고, 아내가 자꾸 호기심을 보이니 큰일이다.
얼마 전 건너건너 찾아간 어느 브런치 작가 님의 글에서 제법 댓글로 불붙던 논쟁을 보았다. 연배가 있으신 여성께서 목에 문신을 하셨더니 남 눈에 보기 좋지 않아보이더라 는 내용이었는데, 문신과 사회적 계급에 관한 논란으로 번져 '문신한 사람은 천한 사람인가?' 라는 논쟁으로까지 치닫게 되었다. 문신은 마치 우리 나라의 보신탕처럼 예민한 것이라, 제아무리 좋은 사람이라 해도 그와 관련되었다 하면 선입견을 갖기 쉽다. 요즘에는 어린 학생들조차도 방학 때 일본식 문신을 하고 오는 것이 이미 유행이라 한다. 문신의 역사를 보자면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특정한 노동 계층을 상징하기 위한 쓰임이었고, 심지어 노예의 예(隸 : 종 예 )는 노예 신분을 표현하기 위해 눈끝을 칼로 찢어낸 흔적을 상징하는 글자니, 이로부터 문신이 고안되었다는 설 또한 있다.
물론 가난하고 거친 흑인 청년들이 즐기던 힙합이나, 그 이전 세대의 한 섞인 음악 재즈처럼, 오랑캐나 하층민들이 즐기던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그 지위가 격상되는 일은 흔하다. 이제는 누구나 힙합이나 재즈를 노예의 문화라고 멸시하지 않는다. (그래서도 안되는 일이다.) 그러므로 '문신이 무섭다' '멋있다' 라는 직관적인 감상이 아닌, '문신을 하는 사람들은 천박하다' 라는 말을 한다면, 그 것은 논점에 어긋난 말이다. 그 사람의 품격은 겉꾸밈이 아닌 행위가 결정하는 것이다.
다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는, 개성을 지나치게 표출하면 효율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회가 변화하고 있다. 영화에서 흔히 보는 미군 특수부대의 문신조차 요즘에는 군번과 부대 상징만 간단하게 그려넣도록 하고 있으며, 몸을 뒤덮는 문신을 하는 이들의 입대를 허락치 않는 일들도 흔하다. 이들 중 상당수가 이미 조직적인 갱스터들이며, 총기와 전술을 익혀 사회에서 더 큰 해악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인의 종복이어야할 공무원들 역시 시민들에게 '보편적인 감상' 을 전달키 위해서는 지나치게 큰 문신은 상대에게 공포를 느끼게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다만 바우 황대권 선생이 말씀하셨듯, '충격적인 아름다움을 주는' 부족사회의 문신들은 예술적으로 찬탄할만하다. 그 사회에 어울리는, 의미 있는 문신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문화권은 부족 사회처럼 단촐하게 운영되지 않으며, 문신을 통해 성인이 되었음을 상징하지도 않는다. 어떤 개념이나 행위에도 이른바 '적정한 선' 이 중요하므로, 문신을 하는 사람들 또한 자신의 문신이 스스로 욕망하여 결정하고 조절할 수 있는 선에서의 행동인지, 아니면 몇몇 문신 유튜버들의 말처럼 '내 몸이 자꾸 변해가는게 재밌어서' '하다보니 멈출 수가 없어서' 욕망의 추동을 제어할 수 없어서인지 스스로 확인해보는 태도가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또한 감히 덧붙이관대, 문신에 대해 스스로 뜨악해하거나 차별하거나 하는 마음이 있다면, 의심암귀 라는 열자의 말처럼, 내 스스로 그런 마음이 있어 문신을 보고 자극받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러나 나 역시도 팔을 뒤덮는 야쿠자풍 문신을 보면 무서운 건 사실이다.)
아내는 당연히 신실하신 분인만큼 큰 문신은 무섭지만, 약지 뿌리 부분에서 동그랗게 아주 작고 가느다란, 반지 대용의 문신은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말해왔다. 나는 굳이 문신을 한다면, 다시 몸을 예전처럼 좀 돌려놓은 다음, 등에 커다란 십자가를 하나 새기고, 왼쪽에는 창시자 님께서 손수 남기신 말씀 '태권일신' 을, 오른쪽에는 '진인사대천명' 을 새기고 싶었다. 아, 역시나 너무 '올드한' 아재 감성인가..ㅎㅎㅎ 쓰고보니 대단치도 아니한 수다를 큰 말인듯 써제껴서 오늘도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