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나는 이러고 산다.
내일까지 계속 비가 온다는데, 나는 이미 발목과 무릎이 아파 쩔쩔매며 회사뿐 아니라 도장에서도 절뚝거렸다. 무릎과 발목이 쑤시듯 후벼대듯 아픈 일은 익숙한데, 이번처럼 오른 무릎 바깥쪽과 오금 안쪽에 한데 부은듯 뜨겁고 화끈거리고, 이물감이 있기는 처음이었다. 걸을때마다 당겼고, 앉거나 누운 상태에서 일어나면 피가 안 통하는듯 남의 다리 같은데 불타는 고슴도치가 달라붙어 있는듯한 뜨겁고 날카로운 뻐근함은 떨어질 줄 몰랐다. 훈련 전에 왼종아리와 골반, 풀어주려고 왼다리를 쭉 편채 오른 무릎으로 쭈그리고 앉는 동작조차 제대로 못할 정도였다. 오죽하면 칠순의 강 선생님이 아이고, 이번 주 내내 출근전에 연습하셨는데, 좀 쉬셔야 하는 것 아니에요? 말을 건네시었다. 그러나 오후 출근은 순번에 따라 결정되니 아이 보내놓고 모처럼 자유롭게 연습할 시간을 놓칠수는 없다. 그렇게 마음 놓고 여유부려도 될 실력도 나이도 아니다. 무엇보다 한 시간 이상을 땀을 빼고 온 몸에 열이 나야 아프던 다리도 비로소 내 것처럼 부드러워진다.
지난번 칠순의 강 선생님께서 영상을 촬영해주시고, 몇 동작을 그림으로 옮겨주셨을 때, 몸도 풀지 않은 상태에서 3단 틀의 마지막인 최영 틀을 시연했었다. 유신 틀처럼 동작 수가 많거나(유신틀 무려 68동작! 31 동작으로 구성된 삼일 틀을 두.번해도 6동작 더 많다. ) 고당 틀처럼 다리를 쭉 뻗어 버티는 동작은 없지만 (나 나중에 서산 틀이나 문무 틀 어떻게 하지?) 돌려찬뒤 다시 반대돌려찬 상태에서 그대로 뒷차찌르는 동작이 좌우로 배치되어 있어 제법 성가시다. 그래도 중심이 흔들림이 없어, 어, 좀 늘었나 했는데 웬걸, 역시 나중에 영상을 보니 돌려차기 까진 어찌 봐줄만한데 이어 반대돌려차기와 뒷차찌르기가 잘봐줘야 허리 높이다. 발 높이가 기준보다 낮았으니 당연히 중심이 좋았던게다. 더 연습해야 한다.
아내는 내가 회사 일, 육아 다 하고, 책 한두 줄에 술 한두잔 버티면서도 잠 줄여가며 태권도하는 모습이 존경스럽다 했다. 나는 객관적으로 무공이 뛰어나지 못하고 또한 본업이 아니다. 그래도 집착하듯 떼어내지 못하고, 이십년 무력 武曆 중 십년 가까이 태권도를 하는 이유는, 육체가 물러서 정신까지 나약했던 십대 어린시절이 영영 내 가슴 속에 박혀서일까? 맹자께서는 대체 大體 , 즉 마음을 따르는 이가 대인이고, 호연지기를 기르는 이가 대장부라 하셨는데 속 좁고 비루한 현대인 주제에 틈만 나면 사내대장부를 입에 올리는 까닭도 그 때문일까?
매해마다 반드시 읽는, 또 앞으로도 다른 대체재가 없다면 기초로서 반드시 읽을, 강신주 선생의 철학 vs 철학의 부록ㅡ 개념어 및 인명정리만 마저 다 보고 나면 마루야마 마사오의 일본정치사상사연구 를 올 연말을 넘기더라도 다 읽을 계획이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이십대 중반 젊은 나이에 이미 이 책을 썼고, 클래식 등에도 정통하여 숱한 학술서적을 교향곡처럼 짜맞추어 펴냈지만, 어느 책도 출세작인 이 책만은 못하다 평가받는다. 자신만만하기 짝이 없는 도올 선생께서도 머릿말을 맡을 정도로 그 천재성을 아끼지 않는 책이기에 나는 이택후 선생의 책 못지 않게 이 책 또한 나이먹도록 눈여겨보고 있었다. 이 책을 빠르게 다 읽으면 내년 구정 전까지는 코스모스부터 시작하여 희랍철학입문 ㅡ 철학과 굴뚝청소부ㅡ 과학혁명의 구조 등으로 이어지는, 내가 가지고 있는 책 중에 서양철학을 훑을수 있는 40대의 서학 독서 편력을 시작할수 있다. 네루의 세계사편력도 다시 읽을 때가 되었고, 그때쯤이면 소은이 둘째를 키워볼수도 있고, 어쩌면 4단 승단을 슬슬 준비해야할 수도 있다.
나는 더이상 논술 강사도, 상아탑의 전문 학생도 아니다. 그런데 태권도를 놓지 못하듯, 대단한 지적 수준이 아닌데도 책을 놓지 못한다. 불현듯 옛 생각이 많이 나는 요즘이다. 이십년 전의 나는 불안감을 감추느라 소란스레 건방졌고, 술 장사를 한다는 핑계로 강의에 자주 늦었으며, 어떻게든 두각을 나타내고 싶어 취한채로 연구실에서, 빠Bar에서 보란듯이 공부했다. 결국 이루지 못한 미명들을 아직도 떨구지 못하고 산다. 예수님은 한 날의 걱정은 한 날로 족하다셨고, 부처님께서는 자성 自性 을 잊어 집착을 버리라셨으며, 지올팍은 노래했다. I am fuckin’ Christ…. 아 이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