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정말 오랜만에 쓴다.

by Aner병문

지난 직장을 그만두고 남사부 형님, 두루미 누나와 함께 어울려 아내와 소주 열 병을 마셨다. 채 술이 깨지 않은 얼굴로 겨우 새로 옮긴 직장의 교육을 들었다. 아내와 함께 아이 키우는 내 입장에서야 많은 것을 바랄 수는 없었다. 그래서 형님과 누나도, 학교 선배기도 했던 지난 직장의 팀장님도, 새로 옮긴 직장에서 또 가깝게 일하게 된 너도, 그렇게 급하게 구하느니 일단 조금 쉬어가며 좋은 직장을 구해보면 어떻겠냐 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좋은 직장이래봐야 몸과 시간을 갈아바쳐 회사에 헌신을 다해야할 일이거나 혹은 저 노량진에서 죄인처럼 갇혀 말라가는 청춘들 사이에 불민한 몸 하나 더 비벼넣어 공무원 시험이나 준비해야할 팔자일텐데, 어느 쪽이든 밥을 벌어먹여야 하는 처자식이 있는 나로서는 구미가 당기지 아니했다. 나는 회사 안팎의 나를 완벽히 구분할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매었다. 다행히도 새 직장은 무엇보다 집에서 가까워서 시간을 많이 낼 수 있었다. 나는 아내의 허락을 받아 회사 바로 앞의 어학원에 등록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에 출발해도 아침 7시에 회사에 빠듯하게 도착하는 강남에서의 출퇴근과는 달리, 5시 20분에 일어나도 샤워 후 30분 내로 도착 가능한 회사와의 거리가 새삼 내 인생의 질을 얼마나 높여주는지 느꼈다. 사실 어학원을 다니지 않는다면 까짓거 8시에 일어나도 9시까지 도착은 문제없다. 만약 회사에서 야근 때문에 늦는다 해도, 운동삼아 걸어와도 1시간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 시간에 도장을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아내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라, 대신 나는 오래 전부터 아주 많이 녹슬어가던 영어를 다시 되살리는 길을 택했다. 중학교 때 외국으로 나가 다양한 경험을 했고, 밴드의 보컬도 했었다는 젊은 강사님은 내 영어를 듣더니 딱 한 마디 하셨다. "말도 유창하고 표현도 많이 알고 다 좋은데, 드럼으로 치면 드럼의 모든 부위를 전부 다 잘못 치고 있어요. 그런 사람은 기본부터 배우는 사람보다 오히려 영어 힘들 수도 있어요. 한국어로 먼저 천천히 생각해보시고, 그걸 영어로 바꾸는 연습을 많이 하셔야 해요. 동사 시제랑 전치사랑 수량이 제대로 맞는게 하나도 없어요." 아, 한 마디가 아니고 여러 마디였네.



그러나 하루 아침을 아무리 일찍 시작한다 해도, 그래서 아내가 늘 나를 안쓰럽고 안타깝게 여겨도, 사실 하루 아침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로 시작하는 일은 더할 나위없는 보람과 기쁨이다. 20대 때의 내 거칠었던 기술을 30대 때 비로소 태권도로 다듬듯이, 나는 해외 한 번 나간 일 없이 오로지 학교에서 배웠고, 국내의 여러 지역에서 실제로 썼던 영어를 어학원에서 정리하는 일이 즐거웠다. 한 마디라도 더 해서 틀린걸 바로 잡고, 늘 적어놓았다. 그러고 나면 걸어서 십분도 걸리지 않는 회사에 가기 전까지, 읽던 책을 계속 읽고, 또 조금이라도 근력 운동을 했다. 그러므로 회사에 가서 일을 보더라도, 이미 하루의 숙제를 많이 끝마쳐 놓은 기분이라 훨씬 마음이 좋았다. 회사 안에서야 회사가 시키는대로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므로 회사 근방에서 잠시 일하게 된 너와 다시 만나, 퀴퀴하고 지린내나는 술집에서, 그러나 오히려 더욱 맛있었던 육회와 생고기를 놓고 술을 마셨을 때, 너는 내가 읽던 책을 넘겨다보면서, 조금 더 좋은 직장을 가질 수 있지 않겠느냐 넌지시 물었다. 나는 그때 늘 출근-점심-퇴근마다 뱀처럼 회사 주변에 퍼지는 많은 노동자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이 곳도 강남처럼 온갖 회사와 밥집, 술집이 즐비했지만, 물가가 달랐고, 문화가 달라서, 밥 먹기는 훨씬 편했다. 점잔빼는 강남의 술집과 밥집과 달리 이 곳의 골목은 어디서든 싸고 양많은 밥집 술집이 꽉꽉 들어차 있었고, 사람들은 온갖 식당에 들어가서 훨씬 싼 값의 밥을 맘껏 먹고 나오곤 했다. 나는 오랜만에 이 지역으로 돌아와서야, 요즘 회사원들을 위한 점심시간에, 비록 직접 해먹어야 하는 수고가 있긴 하지만, 달걀 프라이를 무한정 주는 서비스가 '국룰' 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깃집이고 곱창집이고 간에 점심 장사를 하는 곳이면 어디든 사람들이 달걀을 직접 부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조금이라도 돈을 계속 벌고, 육아를 하고, 공부를 계속 하기 위해 이 골목에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우산을 펴고 마치 파시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회사로 빨려들어갔다가, 또 짬날 때마다 팔굽혀펴기와 스쿼트를 하면서 책을 읽고, 남들처럼 점심 장사를 기웃거리며 달걀을 부쳐다가 먹고, 그리고 퇴근 버스에서만큼은 피할 수 없이 다른 이들에게 낑겨 버둥거리며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한갓지고 평화로운, 장삼이상 갑남을녀 한 서생의 삶이었다.



한때는 나도 청운의 꿈을 품었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대단한 사람인 양 착각하며 거만을 떨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 내게는 한때 글을 읽은 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의 자부심과 무공을 익힌 자로서의 인내 정도밖에 남지 아니했다. 무공이란, 종류를 불문하고 평생 동안 익혀 평생 동안 쓰지 않을 결심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문학을 읽고자 하는 이는, 함부로 동정을 구걸하거나 천박해져서는 안된다. 이 두 가지 결심만 지켜가며 가족을 건사할 수 있다면, 나는 무슨 일을 하든지 사실 크게 상관없었다. 회사에서의 나는, 무슨 일을 하든 온전한 내가 아니라는 사실만 생각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먹고 살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그 것은 나보다 더 훌륭한 대가들을 위해 준비된 삶이다. 나는 차라리 젊고 재능있는 너가 더 체계적으로 공부하여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랐다. 곽선생은 절치부심하여 기어이 자기가 원하는 교사가 되었다. 회사 특유의 피로만 견뎌낸다면, 그는 능히 훌륭한 동량지재들을 길러낼 것이다. 내 삶도 잘 못 챙겨먹는 처지이긴 하지만, 나는 언제나 직관적인 재능을 지닌 너가 부럽고 안쓰럽고 안타까웠다.



노아 벤샤가 써낸 우화집에서 빵장수 야곱은 평생 빵을 만들며 겸허하게 살아왔지만, 그의 지혜는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숨길 수 없었다. 하루를 노동과 공부와 신앙생활로 검소하게 보내는 그에게, 언제나 많은 이들이 의지하러 찾아오고, 그는 빵보다도 마음을 채워주는 지혜를 돌려준다. 나는 감히 그렇게 살 수 없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나는 가끔 쓸데없이 예민하고 얻는 것없이 낭만적이며 그러지 않아야 될때도 분별을 따지는 못된 심보가 아직도 남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늘 조용히 사는 편이 훨씬 행복하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과 벗과 책과 술이 있는 집, 혹은 도장으로 향할 수 있는 저녁이 얼마나 내게 소중한 것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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