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자식과 함께 산다는 것 - 가정의 달 5월을 중심으로.
내 나이가 마흔이니 벌써 너와 알고 지낸지도 십여년은 이미 훌쩍 넘었다. 경기 북부에 사는 누군가가 연락이 두절되었으니, (살아있냐?!) 이제 너가 내가 알고 지낸 가장 오랜 벗이 되었다. 둘 다 이십대 초중반에 만났을 때는, 각자 꿈도 많고, 상처도 많고 해서, 하루 종일 술 마시며 문학 이야기, 영화 이야기로 하루 가는 줄 몰랐는데, 각자 시집 장가가고 점점 갈수록 만나는 날이나 시간이 줄어들며, 이제 한 열 번만 더 만나면, 전 선생님 환갑 때 만나겠어, 라며 너가 농을 걸기도 하게 되었고, 어쩌다 카카오톡 메시지로 이야기를 나누면, 무슨 반상회 어머님들마냥 각자 아직 결혼하지 않은 가족 구성원들 이야기 하느라 바쁘다. 너는 너대로, 믿음직한 남편 챙기느라 정신이 없고, 나는 나대로 내 가정 챙기느라 넋이 빠져 있다. 결국 다들 이렇게 나이 먹어가는 것이기에, 한때 문무겸비를 꿈꾸던 고주망태 사내와, 문학을 위해 청춘도 불사를듯해 보이는 미소녀는 이제 흐릿한 뒤켠의 그림자가 되어버렸다.
솔직히 방송에서 결혼이나 육아가 마치 전적으로 '피해보고 희생당하는 것'처럼 그려지는 이유를 이해할 수는 있다. 뼈빠지게 주5일 일하고, 야근에 연장근무까지 마치고, 그나마 달콤하게 연애하거나, 늦잠자거나, 취미 생활하거나, 술 마시거나, 하루 종일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유튜브 보고 게임하고 놀아도 괜찮았던 '혼자만의 삶' 이 전적으로 없어지듯 느껴지기 때문이라 아닐까. 더이상 내가 원하던 것들을 할 수 없기에 마치 나를 부정당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며, 실제로 가정을 꾸리고 나서는, 이제까지의 나만을 고집할 수 없다는 사실은 당연하다. 애가 없어도 그렇지, 반려도 피곤하고 힘들텐데, 어찌 나 혼자 뒹굴거리며 내멋대로 놀고 먹고 나가고 할 수 있단 말인가. 가끔 TV에서, 몇몇 유명 연예인들이 '진정한 상남자의 삶' 이라면서 돈을 많이 번다는 이유로 아내에게 전적으로 가사 노동을 맡긴 채 혼자 유유자적 다락방에서 TV보고 책 읽고 낚시 다닐 뿐 아니라 심지어 요리하느라 바쁜 아내에게 여보, 물 좀, 여보, 손톱깎이, 하는 모습도 종종 봤는데, 어디까지나 방송용 꾸밈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부부 사이는 둘만 알겠지만, 진짜로 그렇게 '취급받으며' 사는 일이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며, 설사 정말 그렇다고 한다면, 단순히 돈만 많이 벌어왔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부부 간 정서 교류가 충분히 채워졌기 때문에 이해 가능한 범주의 영역이 되었을 것이다. 나 역시 운전 및 조립, 수리, 제조 등의 손 가는 일을 주로 하는 아내에게 미안해서 늘상 퇴근 후 밥하고 빨래하고 설거지, 청소 를 주로 도맡긴 하지만, 늘 부족하고 미안하게 느낀다.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새로운 공동체를 꾸리게 되었으며, 비로소 내가 평생 책임져야할, 가장 밀접한 사회가 새롭게 생겼음을 깨달았다. 특히 아이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최선을 다해 키워야할 존재였다.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막막하게 자란 10대 시절이 무서워서, 나는 아이의 떼를 무조건 받아줄순 없지만, 그래도 가능한 아이가 부모를 믿고 본인 이야기를 편하게 해줄 수 있는 관계가 되길 바랐다. 또한 부족한 남편을 믿고 선 봐서 석 달만에 시집 와주고, 항상 아들도 힘들고 어려워하는 시부모님 모시며 '어른은 그러실 수 있다. 그러시니 어른이다.' 뭐든지 '여보, 그럴수 있어요, 걱정 마시소.' 라고 말하는 아내에게 늘 고맙고 미안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절대로 이 가정을 배신하거나 무너뜨릴 수 없고, 올바로 유지하게끔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 것은 곧 한 명의 사회인으로서, 비로소 자신이 몸담은 사회에 최선을 다하는 기본적 태도이기도 했다.
유사배는 일찍이 청대 말 균력(均力) 주의를 주장하였다. 유학이니 불교니, 문(文)이니 무(武)니,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지 말고 모든 사회구성원이 문무를 겸비하고 예술과 기술 소양도 두루 갖추는 만능 인간이 되어야 비로소 서양 열강의 침탈에 맞서싸울수 있다고 믿었다. 어찌 가능할 것인가? 그는 하나의 사회가 거대한 학교처럼 기능하는 공동체를 구상했다. 그래서 10대~20대는 기초적인 학문과 기술, 도덕, 무공을 익히고, 30~40대에 예술과 문화, 공부를 깊이 하고, 50~60대는 사회의 일선에서 한발 물러나 어린 소년소녀들을 가르치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고 했다. 요즘 말로 래디컬Radical하기 짝이 없는, 실로 극단적인 이상주의지만, 적어도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사회에 전력을 다하며, 특히 교육을 중점으로 운영된다는 점은 몹시 흥미롭다. 아이들 앞에서는 찬물도 못 마신다는데, 부모야말로 아이에게 가장 가깝고 큰 스승이다. 어느 아비가 저는 멋대로 살며 너는 양순하게 자라라 하고, 어느 어미가 저는 사치하며 너는 검소하라 가르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아내도 그렇거니와 나 역시 아비가 되고 나서, 늘 부족한 모습을 어찌 가리고 좋은 모습을 보일까 머리가 아플때도 있었다. (그러니까 술도 진짜 많이 줄인거다;;)
이번 5월은 운이 좋아서 4일밖에 일하지 않는 주가 많았다. 다행히도 아내는 6월부터 바쁠 것이라며 가능한 자주 올라와주었다. 우리는 이제 몸이 더 크고 굵어진 아이를 위해, 아니, 정정한다. 아내는 새 킥보드를 사주고, 헌 킥보드는 자신의 관사로 가져가서 가끔씩만 비상용으로 타기로 했고, 자전거의 안장을 높여주어서 페달을 더 잘 밟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허벅지와 종아리가 튼튼한 소은이는 무슨 십팔반 마상재(十八班 馬上才 : 조선 무과에서 공식적으로 지정한 18개의 무공 중 말 위에서 부리는 고급 기술. 안장에 선 채로 활을 쏜다든가, 비스듬히 누워 월도 月刀로 말 목은 아니 베고 지푸라기 인형을 벤다던가 하는 재주) 을 하려는가 킥보드 위에서 발을 높이 쳐들고 균형도 잘 잡았다. 무릎 아래로 흔들림없이 쭉 뻗은 종아리와 불끈한 허벅지가 5세로서는 믿을 수 없게 튼튼해서 일품이었다. 새 킥보드는 중심이 낮고 무게가 더 나가서, 소은이가 땅을 박차는 힘을 잘 받았고 어렸을때의 작고 가벼운 킥보드처럼 앞으로 먼저 휙 나가서 고꾸라지지 않아 좋았다. 아내는 소은이를 위해서 가까운 철도박물관도 예약하고, 키즈 까페나 식물원도 예약하고, 운전도 손수했다. 도통 그런 데는 재주없는 나는, 군소리 없이 짐을 다 이고 지고 항상 아이와 아내를 쫓아다녔다. 늘 애쓰는 아내에 비하면 내가 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으되 다만 귀찮고 번거롭고 성가신 일들이었지만, 나는 늘 힘써 기른 체력과 끈기로 항상 반복하고 유지하는데 자신이 있었다.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아이는 어델 가나 붙임성이 좋고, 인사를 잘했고, 특히 듬직한 오빠라면 사족을 못 썼다. 잘생긴 오빠라면 다 좋은가 했더니, 가만 보니, 저보다 나이는 좀 있어보여도 마르고 여리게 생긴 오빠보다는 살집 있고 튼튼하고 뼈대가 굵은 오빠를 더 좋아했다. 그런 오빠들을 보면 소은이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달려 가서 오빠 안녕? 나는 소은이야! 우리 같이 놀래? 하고 적극적으로 반갑게 다가가지만, 또 한편으로는 대장 기질이 있어서, 제가 오빠의 자리를 정해주고, 자, 오빠 자린 여기야, 아니 넘어오면 안되지, 여긴 소은이 자리야! 하며 떼를 쓰기도 한다. 아내는 소은이가 나를 닮아서 통제형 인간이라고 하지만, 나는 오랜 삶의 경험으로 내가 정확히 알 수 있는 영역만 만들고 싶어 기를 쓸 뿐, 나는 소은이처럼 대범하고 호방하질 못하다. 소은이는 나한테 없는 대장 기질, 보스 자격이 있어서 사실 마음이 호걸처럼 웅대하게 컸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세월이 녹듯이 빠르다. 아내도 나에게 시집올땐 서른살 꽃같은 아가씨였는데, 지금도 어여쁘지만, 벌써 서른여섯이 되었으니 내가 결혼했을때보다 두 살을 더 먹었다. 금세 소은이는 자라 학교에 가고, 제 삶의 길을 찾고,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기쁠터인데, 나는 그때마다 어떤 모습으로 소은이 곁에 있을지 알수 없다. 다만 아내는 부모는 원래 타인이므로, 소은이도 금방 자라 부모를 귀찮아하게 될 것이라고, 저가 깨닫기 전에는 그저 살 길이나 잘 잡아주고 알아서 크게 두면 좋으리라 말하였다. 나는 단지 부모님이 제일 무섭던 십대 시절이 치가 떨려, 적어도 소은이가 언제든 힘들때 제 애비를 찾아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퇴근 후 도장을 다녀오느라 늦게 오면, 아빠, 왜 늦게왔어요? 태권도 했어요? 라며 번개같이 뛰어 안기는 지금처럼만 소은이가 있어주면 좋겠다. 내 스스로 청춘을 제대로 살지 못했는데, 내가 무슨 자격으로 소은이가 힘들때 감히 타박하고 꾸짖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다만 소은이가 어긋나고 삐뚜르지 않게 정성을 다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