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전씨남정기(全氏男征記) - 전씨 소녀가 남자들 정복하는 이야기?!

by Aner병문

0. 어렸을때부터 싹수가 보였다.


나는 사실 친구가 그리 많은 편이 아니고, 학창 시절도 '쭈구리' (^^;;) 로 보내서 결혼할때 청첩을 보낼만한 벗이 많지는 않았다. 오히려 퇴직 전에 아들 장가 보낸다고 환호를 울리시던 어머니 아버지 손님들만 기백명... 진짜로 농담 아니고, 당시 다니던 회사 형님이 오셨다가 '살다살다 축의금 내려고 줄서는 결혼식은 처음 본다' 고 하실 정도였었다. 다행히도 꼭 친한 벗들을 포함, 당시 회사 동료들, 도장 사형제 사자매들이 와주어서 체면치레할만큼은 내 자리도 차서 참 감사했다. 경조사에 사람 살아온 태가 나는구나 를 처음 깨닫던 순간이기도 했다. (아내 역시 대학 다닐때는 강의 끝나면 바로 집에 오고, 방학때는 전화기 딱 꺼놓고, 집-교회-수영장만 다녀서 여고시절 친한 벗들 말고는 몇명 없단다.. 참으로 부창부수^^;;) 여하튼 중고등학교시절 함께 두드려맞고, 함께 심부름 다니던(^^;; 오늘 웃으면서 땀 많이 흘리네..ㅋㅋ) 동창 중 한 명이 '야, 전병문, 너 이럴 수 있냐, 뭐 얼굴 안 본다 어쩐다 하더니만 제수씨 너무 이쁘잖아!' 우리 아내야 언제나 천하절색이지만, 참 그때는 안 그래도 큰 키에 이십 년 넘게 수영으로 단련되어서 허리도 잘록하고 참 이뻤다. 오죽하면 우리 아버지께서도 나중에서야 '나는 솔직히 그랬당게, 쟈가 참말로 우리 병문이가 좋아서 시집오는 거이 길까?(맞을까?) 어쯔케 우리 복에 저렇게 이쁜 각시가 메누리로 왔으까?' 말씀하셨을 정도로, 아내는 내 외모에 비해 참말로 키도 크고 이뻤다.


그래서 그럴까....?

나랑 똑닮은 내 딸, 잘생긴 오빠들을 진짜 너무 좋아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 1살때


때는 바야흐로 소은이가 태어나고 한창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2021년대 초반, 당시 안양에는 '걷다보면' 이라는, 꽤 유명한 까페가 있었다. 자리도 널찍하고, 음료도 맛있었는데, 그 곳에서 가장 맛있던 음료는 다름아닌 인삼사과주스. 사과즙에 인삼가루, 우유를 절묘하게 타서 얼음과 함께 내주시는 음료였는데, 쌉쌀한 맛에 달콤고소한 뒷맛이 정말 잘 어울려서 좀처럼 까페에서 무언가를 사잡숫지 않는 어머니도 손님이 오시면 꼭 그 음료는 직접 사서 대접하실 정도였다. 그 까페에는 일전에도 한번 얘기한 적이 있었던, 일명 '안양소년단'- 짙은 눈썹에 큰 키, 날씬한 몸매를 지닌 아주 서글서글 잘생긴 청년이 일하고 있었는데, 우리 소은이는 말 안 배웠을때부터 그 오빠를 참 좋아했었다. 말도 못 하는 애인데, 아무리 부모라고 해도 그걸 어떻게 알아요... 라고 물어보신다면...











아니, 애가 엉엉 울다가도 그 오빠만 지나가면 울음을 그치고 그 오빠만 쭈욱 시선이 쫓아가는데 그럼 말 다한거 아닙니까?!!








네?! 그냥 어린 아기니까 아무나 지나가서 신기해서 그럴수도 있지 않냐구요?!!










그럼 애비는 왜 안 봐, 왜 (지금 생각해도 분통) 심지어 애비가 저 운다고 안아주려고 하니까 그 짧뚱한 손으로 애비 얼굴을 옆으로 밀면서까지 그 오빠 보려고.....ㅡㅡ;;;;;; 지금은 그 까페 없어지고, 안양소년단 총각도 간 곳을 모르지만.. 잘 삽니까, 학생....내 딸의 첫 사랑... (아, 속쓰려!)




2. 세월은 흘러흘러 5살.

'



5살이 될때까지, 소은이는 어린이집 포함, 안양 놀이터 주변의 오빠들뿐 아니고, 제 어미 동네에 놀러가면, 난생 처음, 거기다 낯선 억양의 오빠들에게까지 주저없이 달려들며(아내 왈, 그래, 소은아! 여자는 직진인기라! 가서 쟁취해뿌라!) 다양한 오빠들을 섭렵(?!) 해오며 자랐다. 가만 보니 연하나 동갑보다는 오빠를 월등히 좋아하긴 하는데, 점점 머리가 굵어질수록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같은 오빠라도 좀 더 덩치가 크고, 듬직하고, 골격이 있는 오빠를 좋아하더라. 같은 오빠라도 가녀리고 난들난들한 꽃미남 같은 오빠들보다는 사내대장부 같은 오빠들을 좋아하니, 아무래도 작은 키와 약한 뼈대에 포한이 진 아비의 욕심이 투영되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였다.



최근 있었던 일인데, 내가 평일에 쉬어 소은이를 데리러 빨리 갔던 날, 소은이는 무려 놀이터에서, 아직 식지 않은 땡볕을 받으며 2시간이나 뛰어 놀앗는데, 그 이유인즉슨, 예닐곱살 될법한 오빠에게 꽂혀서...(^^;; 미치겠다.)그 오빠는 반바지에 러닝셔츠만 입어도 까무잡잡한 탄 피부가 유감없이 드러나 참으로 섹시하였으며(옷 입어, 옷!) 심지어 커다란 자전거도 마치 한 마리 말처럼 용맹스럽게 다루는 남자다움을 지닌 자차 소유자...(....) 그 오빠는 나보다 젊어뵈는 어머니가 축구공을 함께 가지고 오셨는데, 축구로 단련된 굵은 허벅지를 그야말로 폭발할듯 뿜어내며 페달질을 하는 모습에 소은이가 한번에 반했는지 어쨌는지, 난생 처음 보는 오빠에게 여전히 부끄러움도 모르고 '오빠! 나는 소은이야! 우리 같이 놀자!' 하며 킥보드를 타고 맹돌격! 오빠는 덩치에 비해 상당히 내성적인 성격이었는지, 아무 말도 못하고 부끄러워하며 자전거를 타고 공원을 돌며 도망치기 시작했지만, 전소은 기운도 좋다, 그 땡볕에 물만 몇 모금 마시고, 킥보드를 퍽퍽 밀어대며 오빠~ 같이 가~ 하면서 진짜로 두 시간을 돌았다. 나는 계속 옆을 뛰면서 소은아, 오빠는 혼자 놀고 싶디야, 아빠랑 놀자니께? 하며 말렸지만, 이미 외간 남자에게 폭 빠진 내 딸...(...) 그야말로 태권도 5대 정신 중 백절불굴을 유감없이 뽐내며, '오빠~ 같이 놀자아~' 하면서 맹추격하는 기세가 마치 사바나의 암사자를 방불케 했다. 하기야 네 어미가 태교로 동물의 왕국 많이 보긴 했지... 나는 내심 소년의 어머니라도 좀 말려주길 바랐으나, 어머니는 뭐가 그리 바쁘신지, 그늘에서 통화를 하시느라 정신없었다. 어머님.. 제가 딸을 잘못 키운 탓이지만, 아드님의 신변이 위태합니다.. 여하튼 쫓고 쫓기는 시간이 계속되어 마침내 해도 지기 시작하고, 열기도 한 풀 꺾일때쯤, 역시 기운이 함께 꺾인 소년이 조그맣게, 그러나 분명하게 말하였다. '야아...너 저리 가.. 쫓아오지 마아아...' 와, 그 순간 전소은 표정. 정말 한편으론 안쓰러우면서, 한편으론 봤어야 하는데, 나이 5세에 처음 당한 실연의 맛이 쓰라렸던지, 입술을 삐쭉삐쭉 하면서, '아빠아..소은이는 오빠랑 놀고 찌픈데... 오빠는 싫대요오...' 하며 처연하게 중얼거렸다. 야 이 ㄴ아.. 니 애비를 그렇게 챙겨봐라... 너 두 시간 동안 쫓아다니면서 땀 뺀 애비는 안 보이냐?!!!?!?! 다행히도 그때 떄마침 여동생이 영상통화 걸어줬는데, 사연을 듣더니 박장대소하면서 옆에서 같이 일하던 소은이 담임 선생님을 바꿔줘서, 담임 선생님도 역시 웃으시느라 한바퀴 구르신 다음에 소은이를 잘 달래서 집에 무사 귀가했고, 그리고 그 날 저녁에 전소은 감기 걸렸다... 야, 너 지금 보니 몸살 혹은 상사병인거 아니냐?!!!



3. 잘생기면 몇십 년 연상도 불사한다!!



이건 지난 달쯤 발생하였지만, 아직 미처 못 썼고, 주변 사람들한테는 한번씩 얘기한, 역시 가슴 아프기 짝이 없는 실화.


주말이나 쉬는 날에 비가 오는 닐이 잦아서, 아내와 내가 소은이를 데리고 동네 근처 키즈까페를 처음으로 가본 날이었다. 처가 포항에 비하면, 훨씬 아담한 키즈까페였지만, 대신 학부모님들을 위한 무료 오락기와 노래방까지 있어서 시간을 보내기엔 더 좋은 곳이었다. 아내와 나는 번갈아 가며 소은이를 돌보고 있엇는데, 소은이가 웬일로 아비 어미를 안 찾고(보통 신나면, 뭐든지 들고 와서, 아빠, 엄마! 이거 보세요! 하고 동참을 조름^^;;) 오래 있길래 뭔 짓 하나 가서 봤더니......




















너 왜 모르는 아저씨한테 요리 해드리고 있냐.....(.....)



키즈까페 어디에나 있는 요리 장난감이 즐비한 주방에서, 소은이 또래의 딸과 함께 오셨지만, 나와는 비교도 안되게 젊고 잘생긴 아버님이 한분 계셨는데(요즘 복화술, 묵찌빠로 유명한 최재림 배우 좀 연상되는 얼굴이셨다.) 지금도 기억나는데, 옅은 파란색 셔츠에 검은 청바지를 입으시고, 키도 크시고 몸매도 아주 좋으셨다. 전소은, 이제 오빠도 모자라 아저씨한테까지 넋이 나가서, 바구니 하나 가득 채소, 고기, 과일을 잔뜩 담아와서 장난감 주방에서 씻고 자르고, 정성스레 접시에 담아 '오빠아~ 드셔보세요~~' 콧소리까지 내가며... 야, 열녀 났다 열녀 났어...(...) 아버님은 민망해서 하하하하 하시면서도 눈빛은 '이 집 엄마아빠 어디 계세요, 애 좀 데려가세요~' 호소하고 계시었다. 나는 서둘러 죄송하다고 하면서, 전소은! 이 애비헌티 좀 줘바라, 뭐하는 것이여? 했더니 소은이 이 애비를 똑바로 올려다보면서, 아빤 저리 가아! (특유의 단호한 억양이 있다.) 하더니 이제는 장난감 칼을 대면서 좌우로 톡 갈라지게끔 만들어놓은 새우를 또 썰더니, 그걸 또 접시에 담은 다음, 무릎걸음으로 그 아버님께 다가가서, 직접 새우를 손으로 들고, 자아아아, 아아아아, 드셔보세요~ 야 임마!!! 니 애비 여깄다고!!! 아버님은 민망했는지 웃으면서, 딸을 안고 자리를 피해주셨다. 전소은, 그 모습을 보더니 어깨를 축 늘어뜨리면서, 그만해야겠다.... 야, 애비 달라고, 애비!!! 니 어미 없는동안 먹이고 재우고 업어주고 안아주는 애비가 여깄다고! ㅠㅠ 너랑 똑같이 생긴 니 애비 여깄다고! ㅠㅠㅠㅠㅠ




내가 툴툴거리면서, 아내와 교대하며 이야기했더니, 아내가 박장대소하면서도 은근슬쩍, 그래서 그 아저씨가 어데 있는데예? 그래서 내가 속으로 '어랍쇼.' 하면서 저그, 저 짝에 계시네, 저그 파란색 샤쓰, 하니까 아내가 스윽 눈을 돌려보더니, 오호옹, 아인게 아이라, 쫌 생기싰네, 우리 딸, 눈 높데이~ 아니, 저기요, 어머님, 지금 그게 반응이 맞는 반응입니까?!!!!!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제가 이러고 삽니다...ㅠㅠㅠ





오늘 좀 서러워서 이래저래 써봤음...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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