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 선생의 철학VS철학 동양편의 초반부는 신구 판을 막론하고 고대 제자백가로 시작했다가 중반부는 인도ㅡ중국의 다양한 승려들을 중심으로 불교 사상을 다룬다. (일본 승려를 비롯한 일본 철학자들이 없는게 좀 아쉽긴 하다. 개정증보판이 더 나오려나?) 동양삼국이 왕국 기틀을 갖출 무렵 불교라는 종교 및 철학이 거대한 형이상학적 사유를 제공하며 왕권에 근거를 더한 면이 분명히 있다. 싯다르타 본인도 석가족의 왕자였으며, 아소카 왕, 쇼토쿠 태자, 법흥왕, 소수림왕 등을 비롯한 많은 삼국의 왕족, 귀족들이 적지 않게 불교에 깊이 심취했다. 사실 내가 보기에도 불교나 유교는 인격신이 직접 인간의 구원을 돕기보다 강렬한 논리와 공부, 수양으로 스스로 구원을 향해 가니, 종교라기보다는 공부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교회 집사로서, 불교나 유학은 학문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편, 불교는 이상하게도(?) 국가 권력과 역사적으로 깊이 닿아있었다. 불교 하면 깊은 암자에 차 마시며 질박히 수양하는 스님도 생각나지만, 휘황찬란한 가사를 차려입고 구중궁궐에서 온천하를 호령하며 불법을 강론할뿐 아니라, 심지어 세상을 다스리는 지혜까지도 친히 알려주시는 사극 속 스님도 낯설지 않으니, 오죽하면 야단법석 野壇法席 이란 말이 있으랴. 측천무후의 곁에서 순금으로 만든 사자를 놓고 백장은 화엄의 위대한 전체주의를 설법했고, 먼나라 신라 귀족 출신의 승려를 수제자로 삼아, 그에게는 화엄의 의지가 있다 말할 정도였는데, 그가 바로 당진항에서 당나라행 배를 타기 전 해골물을 마시고 일체유심조의 진리를 깨달은 원효와 결별한 의상대사다. 모든 것은 결국에 마음에 달렸으니 굳이 당나라까지 경전공부를 할 필요를 상실해버린 소성거사 원효는, 민중들과 어울리며 불경을 쉽게 풀이해내고, 대중과 함께 하는 불교에 주력했다. 심신건강한 승려가 왜 속인俗人들에게 빌붙어 구걸하냐며, 하루 일하지 않는자 굶으라 했던 백장 스님 또한 이와 맥락이 닿는다.
생각해보면, 생로병사의 네 관문을 보며 이미 세상의 향락을 저버린 젊은 왕자 싯다르타가 왕권강화를 생각했을리 만무하다. 아버지 정반왕이 아들의 마음을 돌리고자 밤새 화려한 연회를 열지만, 이미 속세의 쾌락에 흥미를 잃은 왕자가 새벽녘 슬쩍 잔칫상을 보니 놀다지쳐 잠든 아내며 무희들의 아름다움은 어디 가고 술과 피로에 찌들어 입을 벌리고 잠든 얼굴을 보며 그는 떠나기로 마음을 굳힌다. 이때 애마를 타고 궁궐 담을 넘으려 하자 신선들은 천궁의 네 수문장을.보내 말의 네 발굽을 떠받쳐 소리없이 조용히 떠나도록 돕는다. 속세에 남는다면 인도 전역을 통일할 대정복자가 될 것이요, 출가한다면 천세만세 칭송받는 구원자가 되리라는 예언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집착을 버리고 가장 자유로운 인간이 되어야한다는 불교의 고승들조차 권력 최심부에서 부처의 말씀을 알랑방귀로 바꾸기 바빴다. 지난 대통령도 그렇거니와 유튜브에 심심찮게 나오는, 영부인과 긴밀한 관계라는 긴머리 백발도사도 영 보기에 불편하다. 오죽하면 송나라 신유학의 대가 명도 정호는, 참선하는 스님들의 위계질서를 보고 하은주 세 나라보다 더한 예절을 이 절에서 보았다 조롱할 정도였다. 승려들조차 누가 더 많이 깨달았네, 누가 더 절밥을 많이 먹었네 운운하며 스스로 높아지고자 했다. (교회도 비슷한 부분이 분명 있다.)
대통령이 여섯번이나 출석명령서를 거부하고 헌법재판소에서 스스로 변호하기 위해 법전을 들고 공부한다는 뉴스가 있었다. 본디 검사 출신이니 법 지식이 오죽하랴. 그러나 불교가 왕을 위한 권력이론이 아니듯, 개신교가 백인들의 지배를 위한 이념이 아니듯, 대체 무엇을 위해 그는 옛 고시보듯 두문불출하며 법전만 파고 있을까? 무엇을 위한 정치인가? 누굴 위한 법인가? 이제는 마키아벨리나 한비자가 말하는 군주의 세상이 아니다. 정치 시스템론을 들먹이기엔 모든 장치가 올바로 작동하지 않았다. 가장 높은 이에 있는 이가 우리에게 마음이 없어서 그렇다. 라깡은 사랑하는만큼 이해한다 했고, 왕양명과 하이데거, 훗설 모두, 사물에 마음이 닿아야 인식된다고 했다. 온기 없는 법 앞에 사람이 어찌 안중에 있으랴. 저 법장이 측천무후에게 화엄을 강의할때 쓴 금사자만큼이나 덧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