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F 1228일차 ㅡ 오랜만의 주5일.성공!
젊었을적 총각 때, 나는 웬만하면 주5일 하루 4시간 훈련을 지켰다. 내 몸과 넋에 절실히 필요하기도 했지만, 또 그 말고는 낙도 없던 시절이었다. 배운 기술이 적었으니, 몇 가지의 기술만 끊임없이 반복하는 동안 쿵푸팬더의 한 장면처럼, 도장.바깥 창문은 해가 지고, 비 내리고, 바람 불고, 눈 날리는 장면들이 세월따라 흘렀다. 그렇게 10년이 지나고, 11년에 접어.나는 장가가고 아이낳고, 갈수록 소심해지고 고집스러운 중년 사내가 되어갔다.
굳이 주5일의 훈련이 아니더라도, 주방털보 큰형님, 밥잘하는 유진이와 더불어 회사의 한 부분을 맡아 하루 삼만 보를 뛰고 걷던 시절이었다. 매일 전국 곳곳의 귀한 막걸리를 반주삼아 밥을.반 솥씩 먹어도 포만감을 몰랐다. 마흔이.넘으니 비로소 몸이 삭고 무거워져, 목으로 넘긴 것들이 오래 머물러 떠나지 않았다. 팔순의 강 선생님은 마흔에 한번 꺾인다며 웃으셨다.
나이따라 몸 푸는 시간도 길어지는 법이라고, 사현님은 농담조로 말씀하셨다. 오른고관절이 아파서도 그렇겠지만, 요즘은 몸을 데워.땀을 내고 곳곳을 꼼꼼하게 풀어두지 않으면, 무릎이.제대로 올라가지 않는다. 결코 자랑할 기억은 아니지만, 술 마시다말고 벼락같이 뛰어나가 주정부리는 어느 사내를 땅에서 뽑아내듯 잡아채어 메다꽂던, 그 철없던 시절의 기력은 다시 오지.않는 모양이다.
근대 유도의 아버지, 강도관의 창시자 카노 지고로는, 죽을 때 도복에 흰 띠를 매어 입혀 묻어달라 했다. 천하의 무인도, 누구나 늙고 쇠락한다. 젊을 적 맨손으로 쇠뿔을 쳐날리던 배달 최영의께서도, 노쇠하여 고통스러워하셨으나, 그래도 꿋꿋이 제자들 앞에서 손수 함께 기초 연습을 하시고, 본을 보이셨다. 아프면 아픈대로, 못하면 못하는대로 갈수 있는 무공의 길이 있다.
헌드레드 사제와.맞서기 연습을 했다. 아직 흰 띠지만, 킥복싱 경험이 있고, 젊어 적응이 빨랐다. 젊고 날렵한 사제들에게 도움되는 사형이자 부사범이 되려면, 늘 부지런히 연습할수밖에 없다. 맞서기 또한 예외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