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부녀육아일지 - 미술관 옆 동물원, 아니 과학관.
시튼동물기를 보면, 그 유명한 도킨스 못지 않게, 짐승들이 인간처럼 영리할뿐 아니라 깊은 감정을 지니고 있는 생명체임이 여실히 느껴진다. 아내 블랑카를 잃어 외로이 죽은 늑대왕 로보, 자식에게 살아가는 방법을 전수하는 토끼 래길럭 모자母子, (Raggylug : 톱날귀, 뾰족귀 정도의 단어 정도 될까? 실제로 주인공 아들 토끼는 어렸을때 뱀한테 물려서 한쪽 귀가 삐죽삐죽 뜯겨나가는 흉터를 얻게된다. 내가 어렸을때 읽은 문고판에서는 이름이 '라기랏그' 라고 되어 있엇는데 일본어 중역판이었나보다^^;;). 야생마들을 지도하며 끝내 자유를 향해 몸을 던지는 검은말 무스탕Mustang 이야기 등, 어렸을때 내가 읽은 시튼동물기의 이야기들은, 생생하게 낭만적이었다. 몇 년 전, 나는 소은이를 아직 유모차를 태우고, 아내와 함께 가까운 공원을 자주 돌아다닐 무렵, 물길이 막혀 원래 가던 길로 가지 못하는 어느 어미 오리가, 제 자식을 하나하나 입에 물어다 다른 길로 떨궈준 뒤 다시 앞서 이끄는 모습을 보고 감탄했던 적이 있다. 제아무리 미물이라 할지라도, 사람이 괴롭히지 않는 이상 제 자식 버리거나 물어죽이는 어미아비에 대해 들어본 적은 없다. 그 오리 가족들이 어미의 부리에 물려 새로운 물길에 띄워질때, 그 모습이 신기했던지 몇몇 아이들이 가까이 다가가 구경하러 하자, 아내는 황급히 소리쳤었다. '학생들, 가까이 가모 안되니더! 사람 냄새 묻으모, 에미가 자식들 다 직이삐는기라!' 역시 산을 돌보는 나랏일 전문가 다운 풍모였다..^^;;
부모가 되니, 유독 시튼동물기 생각이 다시 나서, 예전에 읽던 문고판들이라도 찾아볼 생각은 하고 있다. 다만 내 서재에 책들이 이미 모두 엉켜 있어서, 나는 C.S 루이스의 '우리가 얼굴을 찾을때까지.' 도 정작 찾지 못해서, e-book으로 다시 싸게 사야만 했다. 좌우간 짐승도 제 부모의 역할을 다하는데, 먹이 찾고, 잘 곳 파고, 제 가정 꾸려 독립시키는 일에 전력을 다하다, 저 하늘 아래 들판 어딘가에서 제 목숨 고요히 묻어 가는데, 아내의 관대함 속에서 남편이자 아비가 되어, 내 자식 허투루 키울순 없었다. 돈은 많이 못 벌어도, 인물은 못 났어도, 나는 아내에게 좋은 남편이자, 아이에게 좋은 아비가 늘 되고 싶었다. 도킨스의 글에서도, 유전자는 결국 자신이 영속할 수 있는 장점들을 후대에 끊임없이 잇고자 번식을 자극한다 했다.
때가 되면 많이 놀아주기도 했지만, 가능한 많은 자극을 주고 싶어서, 박물관이나 과학관도 참 많이 갔다. 가능한 공연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지난 6년간 지켜온 바, 아이는 늘 책 읽는 아비를 곁에 봐서인가, 책을 보기는 보지만, 오래 가지 않았고, 제 아비처럼 책을 읽고 글을 쓰기보다는, 어린 영상세대답게 각종 전자기기로 영상을 보며 이야기를 듣거나, 혹은 직접 꾹꾹 눌러가며 글을 익히기를 좋아했다. 온몸을 쓰는 무공처럼 공부 역시 우직하게 읽고 쓰는 방법밖에 모르는 아비가 따라가기엔 너무 세련된 방식이었다. 늘 어린이집에서 최신식 교육의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는 애 고모는, 내가 너무 고리타분한 옛날 사람이라며 타박하였다. 나도 그걸 모르지 않아서, 아이에게 굳이 하나하나 따라 쓰라고 무조건 고집하기보다, 글을 많이 읽어주고, 함께 손잡고 어린이집이나 나들이갈때마다 글씨를 읽혀주고,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글도 써주면서 알려주려 노력했다.
그러나 역시 아이는 일단 뛰어놀기를 좋아했고, 그런 의미에서 제 아비보다는 어미처럼 과학을 좋아했다. 이과 출신인 아내는 수학과 과학에 밝았다. 아이가 정말로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과천과학관에는 물체의 이치를 늘 몸으로 익히는 각종 시설들이 놀이기구처럼 즐비했기 때문에 아이는 쿵쿵 뛰놀며 정말 즐거워했다. 아이는 5세와 6세 때 집중적으로 과학관을 많이 다녔는데, 아내는 그때마다 소은이를 안아주면서 이 원리는 이런 것이다, 저 원리는 저런 것이다, 쉽게 풀어 설명해주곤 했다. 가끔 그 옆을 지나던 소년소녀들이 '이 아주머니는 여기 직원인가?' 싶은 얼굴로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 모습들도 재밌었다. 아이는 제 어미의 설명을 귀담아 듣는지 모르겠지만, 신이 나서 과학관 1,2층과 바깥 놀이터까지, 다리가 휘청휘청 꺾이도록 재밌게 놀고 다녔다. 나? 나는 솔직히 처자식과 있으니 즐겁긴 했지만, 아내가 말해주는 물리적 이치가 썩 와닿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물리적 이치는 이미 고정되어 있는 개념이기에, 나는 사과가 중력의 영향을 받아 아래로 떨어지는 세상에 살고, 1에 1을 더하면 2가 되는 세상에 살고 있을뿐이다. 물론 진리를 아는 일은 중요하며, 진리에 벗어나지 않도록 스스로의 분수를 지키는 일은 윤리적인 일이지만, 그 물리적 이치가 내 삶에, 지켜야할 상식 이상으로 중요한 삶의 지표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내가 그래서 과학을 전공하지 못한 것이고, 내가 그래서 수학을 제대로 통달하지 못해 서양 철학과 논리학에 미숙하며, 내가 그래서 과학 교사 곽선생과 반농반진으로 투닥거리는 것이다. (근 1년만의 등장인가? ㅋㅋ)
나는 그래서 내심 6살이 된 아이와 함께 미술관에 갈때 어느 정도 기대가 있었다. 물론 아내와 내가 예상키로, 저 활달하고 발랄함이 넘치는 6세 소녀가 조용하고 고즈넉한 과천 미술관에서 얼마나 버틸지 알 수 없었다. 가격은 아주 쌌는데, 24세 이하, 65세 이상은 무료였고, 전시 하나에 인당 4,000원 꼴이었다. 나라 최고의 예술품들을 보는데 닭꼬치 4,500원 시대에 이정도면 호화롭다. 아내는 조각 공원 앞에서 아이와 함께 사과를 먹으면서, '예술이란 기이, 옛날에는 귀족 취미 아이가, 요즘은 세상 좋아졌데이. 글고, 서울이나 되니까네 이런 전시도 많은기라. 지방 박물관은 이런것도 별로 없으요.' 하며 연신 공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나는 중력의 영향을 받아 늘 아래로 떨어져야 하는 사과보다, 때로는 사람의 상상속에서 하늘 위로 솟구치는 사과가 더 좋았다. 그러한 사과를 상상하고 생각하고 감상할 수 있는 힘이 삶의 긍정적 태도라고 여겼고, 아이에게 그런 힘이 길러지길 바랐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이는 예상 외로 굉장히 미술관에서 구경을 잘했다. 물론 잠시 지쳐서 '엄마아, 나 간식 먹고 싶어요.' 해서 공원에서 달콤한 사과 한 알, 제 머리통만한 크기를 뚝딱 하고도, 까페에 들어가서 아이스크림 하나 또 먹긴 했지만, 과천 현대미술관의 상징과도 같은 백남준 선생의 TV탑도 놀라서 입을 벌리고 봤고, 무엇보다 도자 공예전을 제법 적극적으로 보았다. 사실 도자 공예라고 하면, 일단 술잔이나 찻잔처럼 실용적으로 쓰이는 그릇에 예술미를 가미한 것만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그 범위가 훨씬 넓어서, 건물 바깥의 꾸밈도 도자였고, 흙을 주물러 꾸며놓은 조각이나 장식품들도 모두 도자라서, 내가 아는 도자보다 훨씬 범위가 넓었다. 광복으로부터 근대시대에 이르기까지 도자 공예가 국가 차원에서 육성하는 해외 수출 산업의 소재이자, 민족성의 강조를 위해 집중되는 산업이었다면, 근대 들어서의 도자 공예는, 더욱 자유로우면서 다양한 방향으로 번져나가고 있었는데, 아내는 어느 도시농업 일가들이 연이어 쓴 동화와 함께 그 배경에 맞춰 만든 도자기 감자 작품들을, 나는 흙으로 빚어 만든 집 모양 공예품들을 좋아한데 반해, 아이는 정말 의외로 단아한 조선백자식 하얀 도자기들을 좋아했다. 화려하고 역동적인 작품들을 좋아할 줄 알았는데, 심심할 정도로 밋밋한 조선 백자식 도자기들을 보며 아이는 홀린듯 중얼거렸다. '엄마, 아빠, 봐요. 그릇이 너무 깨끗해. 엄청 하얘. 눈 같아요.' 현대인들이 지향해야할 아름다움은 조선 백자에 있다는 어느 서양 선생님의 말씀처럼, 저 하얀 조선의 색깔이 아이의 마음에 깊이 물든 것일까 싶었다.
아내나 나나, 지갑 작고 마음 좁은 서민인지라, 혹시 나라 최고의 예술품들 중 몇 점이라도 깨면 우리집 기둥뿌리 다 드러난다 싶어서 아내와 나는 아이를 꼭 안고, '소은아, 너 저그 있는 것중 하나라도 작신 깨불믄 우리 집 난리나네잉. 소은이 저기 있는거 다 물어줘야 돼야.' '(눈빛 흔들림) 소은이.. 집에 못가요?' '하모, 못 가제. 소은이 여서 청소하고, 깬거 다 돈 내야 카고.' '이잉, 엄마아빠 카드 있잖아.' '카드로 될 일이 아이라! 엄마는 돈 없데이~' '아빠도 돈 웂시야. 우리 소은이 절대 저서 날랑새맹키로 뛰댕기면 난리난다잉.' 영호남 단결의 말투 때문인지 아이는 점잖게 미술관에서 잘 관람해줘서 참 고마웠다. 의외로 아이는 미술관도 재밌었다고 했고, 다음에도 과학관과 미술관을 또 오고 싶다고 했다. 가족이 함께 있는데 어딘들 즐겁지 않겠는가.
오고 가는 길이 좀 막혔다. 날이 풀리면서 경마공원 쪽으로 집중되는 차들이 많았다. 사실 나는 어렷을때 어머니 아버지 따라 경마공원을 자주 갔었다. 도박을 하러 가신게 아니라 정말 경마공원이 잘되어 있어서, 어머니는 어린 우리 남매에게 말 구경도 하고, 수채화도 그리라고, 미술도구 다 싸가지고, 감성이 길러진다며 그렇게 자주 가셨다. 아버지도 취미삼아 소액 정도는 하셨지만, 결코 깊이 빠지지 않고 좋은 기억이었었다. 그래서 소은이도 크면 경마공원 데려가서 말도 보여주고 자전거도 타고 재밌게 놀자 했더니, 아내가 크게 눈살을 찌푸렸다. '뭔 소리 하는교? 겡마공원이 와 좋겠어예? 우리 작년 여름에 고모네 놀러가가 그 정선 카지노 기가막히게 꾸며놓은게 기억 안나는교? 어른들 모시고 가서 커피 한잔 마싰으니까 그런거야 있을수 있지만, 우리 가족끼리는 저런데 절대 안간데이. 저런식으로 사람을 꾀는기라. 어른들 모시고 주변에서 차마시고 밥 먹고 이정도야 할 수 있지만, 우리 가족끼린 절대 안되니더. 가서 무슨 꾐을 어예 당할라꼬. 저저 보소. 저 줄 길게 늘어선거. 저게 다 지옥줄인기라!' 좀처럼 뭘 하지 말란법이 없던 아내인지라 나는 잠자코 들었다. 아내는 술도 마시되, 여러 날 많이 마시게 하지 않고, 가끔 호텔의 카지노나 바 등도 절대 가지 못하게 했다. 나는 사실 카지노에서는 온갖 술과 먹을 것이 다 무료라고 해서, 도박은 정말 취향이 아니므로, 기왕 주는 꽁술 마시면서 구경이나 한번 해볼까 싶긴 했는데, 아내가 정말이지 적극적으로 반대했었다. '여보야는 고등교육 받은 사람이 사람이 어예 그런교, 거가 와 다 묵고 마시는게 꽁이겠는교? 그런 식으로 사람을 꾀는기라! 내 돈주고 한잔 사묵고 마이소! 술 뭐 좋다꼬, 꽁술까지 찾아 거까지 가능교!' 내가 참..아내는 현명하게 두었다. 끄덕끄덕. 아이의 적성을 찾아주기 위한 부모의 여정은 계속됩니다..(급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