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땅히적을곳이없어서!(음식감평)

오늘의 면식수햏(23) - 신촌 ㄱ 라멘, 서초 ㄷ 냉면

by Aner병문



1. 신촌 ㄱ 라멘.


갈수록 소은이가 나이 먹어감에 따라 부모님께서 손녀 어린이집 보내기를 다소 버거워하셔서 야간 근무를 자청한지 꽤 되었다. 저녁에야 어디 갈 일이 없으니 손녀 쓰윽 데려와서 천천히 씻기고 옷 갈아입히고 밥 먹이고 재우면 되지만, 아침에는 깨워서 밥 먹이고 씻기는데, 혹시나 어데 소풍이라도 간다면 빨리 보내기까지 해야 되니, 저녁과는 달리 마음이 바빠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부모님 입장도 이해가 되었다. 그나마 딸이 제 아비가 '이건 안돼!' 하고 서울말로 엄포를 놓으면 '치, 아빠는 너무해! 욕심쟁이야!' 입술은 삐죽이면서도 말을 들으니, 그저 손녀 귀여우신 어머니 아버지 입장에서는 아비라도 있어 아이를 빨리 시간 맞춰 어린이집 데리고 가길 원하시었다. 그래서 올해 봄부터 사실 쭈욱 지금까지 오전에 소은이 보내고, 도장에서 오전반 훈련한 뒤 목욕하고 회사로 넘어가서 밤늦게 퇴근 뒤에, 짧게라도 책 보고 끄적이다 잠드는 시간을 이어왔다. 개인적으로는 어차피 아내와 주말부부로 지낼수밖에 없다면 나도 이 편이 좀 더 내게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저녁반은 아직 젊은 처녀인 열혈 부사범님, 그리고 오전반은 내가 맡아서 도와드리는 형국이 되었다. 사범님께서도 아이를 낳으시면서 돌볼 일이 많아지셔서, 내가 오전반을 도와드릴 수 있는 점이 다행이었다. 오전반은 저녁반과는 또다른 특색이 있는데, 바로 오전반에서 꾸준히 연습하실 수 있는 분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오전 시간을 태권도 훈련으로 보낼 수 있으려면, 물리적으로 시간이 많고, 심리적으로도 안정감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 사회에 편입되지 못한 젊은 취업준비생들이거나, 아니면 이미 사회의 산전수전을 다 겪으시고 이제 퇴직하여 유유자적하시는 어르신들이 주였다. 전자는 어찌되었건 사회에 정착해야 하므로 갑자기 면접이 잡히거나 학원 일정이 생기거나 혹은 기타 개인 사정으로 갑자기 훈련이 중단될수 있었고, 후자는 춘추가 있으시다보니 건강 문제라거나, 혹은 말년을 즐기셔야할 일도 많기 때문에 매일 꾸준한 양의 훈련을 감히 바라기가 어려웠다. 이러한 와중에도 우리 도장에서 꾸준히 훈련하시어 도복 입고 3단까지 받으신 칠순의 강 선생님은 단지 도장에 그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존경받을만한 분이시었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오전반을 꾸준히 하는 이가 있다면 웬지 더 정이 갈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글대는 저녁반도 저녁반대로 좋았지만, 오전반에 오래 있다보니 함께 형 오빠 식으로 어울리며 연습할 수 있는 이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있었다. 수없는 인연들이 교차되며 오고 갈 적에 드디어 정붙일만한 청년들이 몇 발견되었다. 그 중 한 쌍이 좌청룡 ㄱ 군과 우백호 ㅂ 군이다. 전자는 아직 미성년이지만 키가 훤칠하였고, 후자는 갓 제대 후 상경하여 한창 취업에 열올리는 젊은 청년이었다. 비슷한 때에 입문한 두 청년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형제처럼 어울려 서로 훈련하고 승급하니 보기 좋지 아니할 수 없었다. 가장 최근의 안산 대회에서 두 청년은 모두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누군가가 잘 가르쳐줘서 그런 읍읍...




결론 : 꽤 괜찮은 집입니다. 무난해요.


두 청년 모두 라멘을 좋아한다 하고, 신촌 근처에 한번도 다녀온 적이 없다 하여 정한 집입니다. 모처럼 오전시간이 빌때 훈련 후 모두 함께 다녀왔습니다. 신도림 ㄱ 라멘이 도장에서도 가깝고 자주 가는 집이긴 하지만, 좌청룡은 아직 미성년이고, 우백호는 서울 사람이 아니어서 둘 다 서울 중심가에서 자주 놀아본 적이 없다 하더군요. 제가 누굽니까. 철없는 시절 홍대 대마왕이라 불렸던 정도로 한때는 신촌, 홍대 에서 늘상 붙박여 있떤 청춘이었지요. 한 번 정도는 맛을 보여주자 싶어 나들이를 정했습니다. 사형제 간 이 정도 어울림은 있어야지요. 또한 이 즈음, 좌청룡의 첫 일본 여행이 예정되어 있기도 했었네요.




점심 시간을 살짝 넘겨서 갓는데도 제법 줄이 좀 있었고, 자리는 모두 길쭉하게 벽을 보거나, 혹은 주방 쪽을 향하는 일자형이라, 여러 사람이 어울려 먹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은 좀 불편했습니다. 이른바 잔치국수나 라멘 쪽 맛집이란 왜 유독 이런 불편을 감수해야하는지, 본토에서도 그런지는 잘 알 수 없네요. 먹은지는 오래 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면과 차슈 모두 무난했고, 국물이 약간 더 짜고 강렬했던 생각이 납니다. 라무네를 파는 것도 좋앗네요. 아무래도 미성년자가 한 명 끼어 있으니까요. 함께 주문한 가라아게에는 적절히 간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어느 집의 가라아게는 간을 너무 약해서, 반찬으로 먹기에는 다소 서운한 감도 없지 않아 있었거든요. 신촌 주변 독수리거리와 서점 등을 돌아다니다 왔던 기억이 있는, 좋은 오전반 소풍이었습니다.





2. 서초 ㄷ 냉면



목사님 따님이자 교회 친구인 얀미가, '너네 가족은 언제나 냉면이구만.' 이라고 말할 정도로, 우리 가족은 냉면을 자주 먹었다. 아내는 잔치국수를 좀 더 좋아하지만, 잔치국수는 계절을 좀 탄다. 추운 겨울에도 냉면은 먹을 수 있지만, 더운 여름에는 잔치 국수를 먹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고 하면 너무 개인적 취향일까. 어쨌든 아이의 피부를 위해서라도 밀가루 음식보다는 냉면이 좀 더 낫다. 그러므로 우리 부부는 아이와 함께 다닐때 냉면 쫄면 막국수가 맛있는 집을 찾아 자주 헤매었다.



국립국악원과 예술의 전당을 비교적 자주 가는 편이다. 어느 쪽이든 속세에 벗어나는 재미와 기품이 있다. 그러나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예술에 절어 있다가도 '아빠, 엄마, 배고파요~ ' 라고 말하는 아이의 말에 정신을 차리게 된다. 서초 ㅂ 은 확실히 맛있는 곳이긴 하지만, 은근히 시간을 잡기가 어렵다. 우리 가족은 아무리 맛있어도 줄서는 집을 그리 썩 좋아하지 않는데다, 한 번은, 운영 시간 내에 갔는데도 재료가 다 떨어졌다며 다음에 오라신 적도 있었다. 아아, 가혹한 맛집이여...



이런 경우 보통 주변 맛집은 내가 찾게 된다. 평소 운전을 하지 않으며, 아내의 지역이 아니라면 아무래도 평소 걸어다니는 내가 그래도 파악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이 집도 그렇게 찾게 된 집이었다. 아이의 배고픔이 극에 달하기 전에, 어서, 빨리, 서둘러서...! 허위허위 늦은 밤에 갔던 그 날의 냉면집이었다.



결론 : 연예인이 단골이라고 해서 무조건 맛집은 아닙니다.



몇 번 말했지만 아내는 평양냉면을 썩 즐기지 않습니다. 나는 무척 좋아하는 독산동 ㅈ 면옥을 데려갔을때 아내의 표정이란, 으음... 그러고 나서 다음날 대형매장 식료품점의 대량생산용 새콤달콩 물냉면이 맛있다던 아내의 표정이란 또한..!! 으음 ㅋㅋㅋㅋ 아내는 여하튼 평양냉면과 술은 도통 무슨 맛이 먹는지 모르겟다 늘 말하지요. 사실 이 집도 평양냉면이 우선인 집이라 사실 늦은 시간 마땅히 찾을 곳이 없다면 아내도 쉽게 가지 않았을 겁니다. 시장이 반찬인 법이죠.



강남 땅에 있는 평양냉면집. 당시 오후 8시쯤 공연이 끝났고 냉면집을 찾느라 다소 지체되어 9시가 거의 다된 무렵에 불콰한 얼굴의 중년 직장인들께서 회식을 하고 있었어요. 불고기가 유명한 집이었는데 불고기를 굽는 식탁들이 제법 많았습니다. 냉면도 냉면이었지만, 고깃값도 정말 비싼 식당이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에는 밖에서 쉽게 못 사마실 소주병과 맥주병이 가득찬 식탁에는 고기향도 넘실거렸습니다. 육향을 봐서는 냉면도 맛있겠죠? 그렇겠죠? 맛있어야 하는데....



유명 연예인이 방송에서 자신의 단골집이라 소개한 집. 늦은 시간에도 혼자 찾아와 냉면을 먹는 손님도 제법 많았던 집.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말해서 냉면 맛은 제가 알기 어려웠습니다. 흔히들 평양냉면을 '고기가 그저 슬쩍 지나간 맛이다.' '걸레빤 물 맛이다.' 이야기하는 분들도 꽤 많은 줄 압니다. 물론 취향 존중해야죠. 그러나 독산동 ㅈ 면옥의 분명한 맛에 비해, 이곳 서초 ㄷ의 맛은, 지금까지도 제게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만두는 그냥저냥 무난햇구요. 면은 다소 메밀향이 강했고, 육수는 아주 밍밍해서 이게 과연 어떤 방향의 무슨 맛인지 솔직히 짐작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비빔냉면은 다소 달았던 기억입니다. 다행히도 아이는 잘 먹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냉면집을 간 때도 벌써 올해 초여름. 그 새 훌쩍 큰 우리 딸의 입맛, 갈수록 할머니 음식, 어미 음식을 구분해가며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데, 다시 찾아와도 이 집 냉면을 좋아할지는 알수 없네요. 제게도 아직은 그리 맛있는 기억으로 남지 않았습니다. 기각!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땅히적을곳이없어서!(짧은끄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