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적을곳이없어서!(짧은끄적임)

있는 그대로 보기의 어려움 - 부천만화박물관을 중심으로

by Aner병문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나의 힘든 청년 시절을 끝내주고, 푸근하고 안온한 아저씨의 세상으로 새롭게 인도해준 아내에게 정말 고마워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민하고 피로할때 아내에게 싫은 소리 하거나 짜증을 낼때가 있다. 이를테면 솔직히 어제 같은 경우에도 그랫는데, 밥잘하는 유진이 결혼식도 잘 참석했고, 아내가 평소에 부천만화박물관을 한번은 가보고 싶어하며 바로 코 앞이기에 같이 또 갔다. 아내는 적당히 보다가 만화책을 좀 보고 싶다 했고, 아이는 좀이 쑤셔서 내가 데리고 나와 박물관 앞에 작은 미끄럼틀에 풀어주었다. 만화박물관이라고는 해도, 아이보다는 청소년이나 성인을 위한 공간이라서, 아이들이 즐길만한 내용은 그 작은 미끄럼틀 하나뿐이었다. 그래도 건물 안으로 들고 나는 아이들은 모두 서너번씩 크지도 않은 미끄럼틀을 타고 다니니, 서로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소은이는 처음에는 저보다 훨씬 어린 아이들을 또 이끌고 다니며 대장 노릇을 하다가, 이번에는 제법 큰, 초등학교 저학년쯤은 되어보이는 언니 떼(!) 들을 만낫다. 붙임성 좋은 우리 딸, 동생들을 이끌고 다니는 것 또한 지루했는지, 정중하면서도 당당하게 다가가, ‘언니들, 나는 일곱살 전소은이야! 나랑도 같이 놀아주면 안돼?’ 하였다. 딱히 무례하지도 않았고, 저도 나름대로 예의를 지켜서 물어보길래, 어쩌나 보려고 멀리서 쳐다보고 있었다. 언니들은 잠시 수군대더니 최종적으로 결론내렸다. ‘미안! 언니들끼리 놀게!’




아이는 그때 분명히 낙담하였다. 나도 좀 안쓰러웠지만, 다큰 소녀들에게 억지로 우리 애 놀아달라 할수도 없고, 또 제 고집대로만 세상살이 다 할수도 없으니 내심 큰 약이 되었으리라 생각하며, 가까이 다가가자, 아이고 우리 딸, 그 입술을 삐죽삐죽 하면서 벌써 삐쳐서 울음 터뜨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혼을 낼 일도 아니고 해서 타일러보았지만, 이미 마음이 상해버린 아이는 별무소용, 안에 들어가도 싫고, 오로지 제 어미를 불러서 밖으로 나와서 가자고 하는데, 안그래도 학용품 살 일도 있고 해서 슬슬 이동해야할 때는 되었으나, 아내는 여섯번씩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카카오톡도 문자도 안 받았다. 아이는 계속해서 들어가기 싫다고 떼를 쓰는데, 아직 7살짜리를 혼자 두고 건물로 들어갈수도 없으니, 아내가 전화를 안받아 속이 탓다. 결국 아이를 큰 소리로 혼내서 억지로 안으로 들여보내 겨우 아내를 찾으니, 아내는 아니나다를까, 또 잠이 도져서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모두가 조용히 만화책 보고 있는 곳에서, 한편으로는 피곤도 했겠지만, 어찌나 짜증이 나야지, 싫은 소리 몇 마디 하고야 말았다. 아내도 당연히 억울했을 터이므로 몇 마디 응수했고, 졸지에 아이만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엄마아빠, 큰소리 내지 마아, 소은이 떄문인거야? 하며 눈치를 보았다. 미안해서 나도 아내도, 소은이 떄문은 아니데이~ 응, 소은이 땀시롱은 아니여~ 느 아빠가 화내가 그칸다~ 뭔소리여, 느그 어매가 전화를 안받응게 그런거여~ 하며 결국 아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풀긴 풀었다. 이럴때 항상 먼저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은 늘 감사하게도 아내다. 아내의 흉을 본 것은 아니고, 여하튼 너에게 ’그래도 자네 부군은 전화 잘받지?‘ 하니까 돌아오는 답이 걸작이었다. ’전화 안 받는 사람이 천지야. 적응 못한 내가 잘못이다~ 해야지.‘ 하였다.



부천 만화박물관의 유료전시회는, 시대에 개입하는 여러 만화에 관한 내용이었다. 나는 예전부터 만화는 상징보다 서사를 지닌 역동적인 회화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매 세대별로 가장 적극적으로 사회에 개입하는 도구라고 생각했다. 요컨대 들라크루아를 단숨에 유명 화가로 만들어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이 혁명을 ’상징’한다면 (정확히는 프랑스 대혁명이 아니고, 약 44년 격차가 있는 7월 혁명 떄의 그림) ‘베르사이유의 장미’ 는 혁명을 설명하고 묘사하는데 더 적합할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만화 전시회는 갑자기 돈을 받고 팔려오다시피 국제 결혼을 하게 된 베트남 출신 어린 아내 ’응옥‘ 이 그나마 임신을 해서 더욱 비인간적 대우를 받는 것을 막기 위한 고양이의 이야기 - ‘나는 시고양이로소이다.’ 로부터 시작하여, 버림받거나, 다르거나, 차별받거나 하는 인물들이 어떻게 시대와 세대를 돌파해나가는지 중점적으로 그려내는, 이른바 사회참여적인 만화들이 주를 이뤘다. 나 역시 젊엇을적 관심이 많던 분야였으나, 결혼과 가정을 유지하기도 바쁜 아저씨가 되니, 내가 기억나는 마지막 참여적 작가란, ‘송곳’ 을 비롯하여 한때 다양하게 좋아했던 최규석 선생 정도가 생각날 뿐이다.



동화작가 홍기 선생의 ’아침햇살 오르거든‘ 은 초등학교 5학년 국어교과서에도 실렸고, 이기철 시인의 시로도 인용되어 출처는 명확하지 않아도 기억하는 이들이 꽤 많은 좋은 동화다. 현명한 노스님과 순수한 동자승의 이야기다. 어느날 노스님은 무심코 어린 스님에게 햇살이 높이 오르거든, 스님들의 밥그릇인 발우-바리때를 씻은 뒤 뒤집어 말려놓으라 이르신다. 우리가 흔히 군대에서도 설거지 하듯, 씻고 나서 물기빠지게 거꾸로 엎어놓으란 이야기일 터이다. 그런데 나중에 말려놓은 그릇을 보니 영어로 ’upside down' 을 한게 하니라 ' inside out' 이랄까, 그러니까 그릇이 겉과 속을 마치 귤껍질 뒤집듯 뒤집어놓았다. 있을수가 없는 일이다. 마귀의 장난인지, 혹은 꿈을 꾸는지 알수 없어 혼란스러운 노스님 앞에서 동자승의 눈은 나는 하란대로 했을뿐이다, 하는 식으로 맑고 순수하기만 하다. 현명한 노스님은 떨리는 마음으로, 그러나 겉으로는 표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씀하신다. 다시 햇살이 오르거든, 원래대로 뒤집어놓거라. 동자승의 대답은 온순하여 천연덕스럽다. 네 스님. 동화는 그렇게 끝난다.



아마도 노스님은 있는 그대로 세상을 관철하여 보신 현명한 분일 터이다. 용이 식물처럼 뿌리에서 자라나는 어느 소설에서, 위대한 현자들은 용이 잠든 씨앗을 보고도 함부로 인간이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 여겨 그저 자연에 성장을 맡기고 떠났다 했다. 부천만화박물관의 표어가 말하는, 있는 그대로 세상을 봐주길 원한다는 뜻은 과연 그런 것일까?솔직히 나는 잘 알수 없다. 지금의 나는, 뭐든지 ’그럴수도 잇지.‘ 라고 생각하던 젊은 시절에서 벗어나, 더이상 내가 가치 판단할 수 없는 미묘한 신앙의 문제, 제 3의 성별의 문제, 기타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뭐든지 말을 아끼고, 내가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으로 변해버렸다. 나는 더이상 그에 대해 신경쓸 여력이 없고, 신경쓰고 싶지도 않다. 따라서 나는 내 아이가, 내 아내가, 더이상 그러한 복잡한 문제와 연관되어 논쟁하거나 골머리를 앓지 않앗으면 좋겠다. 나는 박목월 시인이 자신의 아우를 잃고 쓴 시에서 말하듯, ’열매가 떨어지면 툭 소리가 들리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져버렸다.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둘인 것이며, 남자와 여자 이외의 다른 성별을 생각하기 어려워졌고, 또한 절대적인 평등이 있다고도 여기지 않는다. 물론, 내가 결코 차별주의자가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기치 아래, 그 ‘모든 것들에 대해 함부로 말할수 없게 된다’ 면, 그 불편함에 대해서도 말할수 있어야 하는데, 그 불편함에 대해 함부로 입에 올렸다간 당장에 차별주의자로 몰리는게 무서워서 아예 입을 열지 않고, 그 영역으로 다시 넘어가고 싶지 않은 것뿐이다.



만화와 영화는, 비록 문자의 의존도가 적다지만, 서사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문학이다. 학생들에게 문학을 말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이 생각은 당연히 변하지 않을 터이다. ‘쥐’ 를 통해 만화 또한 시대를 대변할수 있음을 여실히 증명하는 아트 슈피겔만도 있다. 그러므로 나는 오히려 만화야말로, 있는 그대로 세상을 비추는 도구가 아니라, 모든 것을 가감없이 말할 수 있는 도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차별받고, 소외받던 사람들에 대한 울부짖음은 물론 좋다. 그러나 그에 경도되어 오히려 기존의 가치를 가진 사람들을 비판하고자 한다면, 그 또한 결국은 같은 방식의 폭력을 되돌이하는 데에 지나지 않을 터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만화는, 본질적 힘을 잃고, 어린이들이 즐겁게 보는 유희로 낙인찍혀지는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태권도 12년차를 포함하여 올해로 무공을 배운지 이십이년차. 모든 무공은 저항이라고 늘 생각해왔다. 잉여를 독점하여 튼튼하고 강하며, 사회적으로도 위세가 있는 이들은 유전적으로, 물리적으로 그 막강함을 대물림해왓을터이다. 법으로, 군대로, 혹은 드잡이질로 강자들은 늘 약자를 핍박해온 역사가 분명히 있다. 칼을 빼앗긴 이들은 농기구로 싸웠고, 농기구조차 없던 이들은 손발을 바위와 나무에 두드려가며 단련시켜 싸웠다. 그러므로 무공은 약자가 강자를 대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나 강자가 무공을 독점하는 순간 이는 잘못된 억압의 도구가 된다. 나는 만화가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내 딸이 사는 세상이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아는만큼 글과 무공과 예술과 유희를 아이에게 알려줄 터이다. 나머지는 스스로 살아가는 젊은이의 몫이다. 이미 너무 좁게 굳어진 내게, 더이상의 꿈과 가능성은 너무 적다. 나는 있는 그대로 보자는 말 자체가 너무 무서워져버린, 소심한 사내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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