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적을곳이없어서!(짧은끄적임)

ITF 1525일차 ㅡ 고단자 승단 심사 참관

by Aner병문


아침에 소은이 보내놓고 훈련하려고 도장으로 부지런히 가고 있는데, 웬 서양인 노부부가 다정하게 서로 손을 잡고 내 앞을 지나치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 회사 근처에는 호텔이 하나 있어서 종종 여러 외국인들도 보고 , 길 알려줄 일도 있지만, 지하철로 한 정거장 남짓, 걸어서 20여분만 와도 대부분 중국인들뿐, 서양인들을 볼 일은 거의 없다. 그나마 역 건너편으로 가야 동유럽 계열의 덩치 크고 무섭게 생긴, 문신투성이 청년들을 만날 수 있다. 여하튼 다정해뵈는 그 노부부는 까페에 잠시 들러 말을 물어보는듯도 했는데, (여기서 잠시 참견해야 되나 생각했다.) 가만히 보니 나와 가는 길이 같았을뿐더러, 어랍쇼, 우리 도장 건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도장 찾아온 외국인 수련자분들이시라는 심증이 굳어지는 찰나, 내가 아직 열지 않은 도장 문 앞을 기웃거리시면서 고개를 갸웃하시기에, 아, 이 분들은 외국 손님들이시구나 서둘러 뛰어갔다. 나 영어 안 쓴 지 좀 되었는데, 흠흠, 익스큐즈, 굿모닝 써, 앤 맴, 메이 아 헬ㅍ~? Oh, you, Good morning, We are getting here for test. Sean is here? 션, 은 다름 아닌 우리 사범님 영어 이름. 승단 심사자들이시구나! 도장 문을 여니 열혈 부사범님이 어제 저녁에 미리 준비했을, 승단 심사대가 보였고, 두 노부부의 연배를 보아도, 활기차보이긴 하셔도 고단자이시리란 짐작은 갔다 .다행히도 우리 사범님은 10분 내로 오셨다.




호주 사범님의 사모님은 나와 같은 3단, 그리고 이번에 승단 심사를 준비하는 호주 사범님은 무려 7단..이번에 8단 심사를 보신단다. 키가 훌쩍 크셨고, 도복을 갈아입은 뒤 몸을 풀고 계셨다. 조심스레 경력을 여쭈니, 씩 웃으면서, 난 자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태권도를 했지, 훗. 하시었다. 그 때 수염을 멋있게 기르고, 역시 날렵하게 생긴, 중동 사람처럼 생긴 청년이 도장 입구에서부터 운동화와 양말을 벗고 들어왔다. 아니야, 그럴 필요 없엌ㅋㅋㅋㅋ 서둘러 그에게 여기서부터 신발을 벗을 필요가 없다고 알려주었다. 수염을 워낙 멋있게 길러 어디 사우디에서라도 왔나 싶었는데, 이제 겨우 스물다섯살 먹은 아르헨띠나 젊은이였다. 아니, 근데 스물다섯살 한창 나이에 벌써 4단이라고?! 스스로를 Martin 이라고 소개한 미스타 아로자는 펠리페 사범님이나 까를라보다 훨씬 서구적으로 생겼고, 무엇보다 미국인 뺨칠 정도로 영어가 유창했다. 아마도 국제태권도연맹 60주년을 맞아 이번에 국내 행사를 치르고, 갈라라가 사성님 가시기 전에 고단자 승단 심사까지 예정되어 있었던 모양인데, 미스타 아로자는 그 승단 심사를 돕기 위해 함꼐 한국에 온 모양이었다. 내친 김에 두 달 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함꼐 훈련을 한다고 했다.




뒤이어 갈라라가 사성님과 호세 사현님, 그리고 처음 뵙는 또다른 사성님이 함께 오셨다. 그나마 영어 몇 마디 할 줄 안다고, 사범님 일 돕느라 아르헨띠나 ITF의 대부이실뿐 아니라 ITF 전체에서도 큰 인물이신 갈라라가 사성님은 지금껏 태권도를 해오며 두어 번 뵙는 영광을 가졌다. ‘전사의 힘’ 을 집필하셨을때보다 훨씬 시간이 지나셨는데도 지치신 기색도, 삭아든 기색도 없으셨다. 오히려 약간 은 더 젊으실, 호주 사범님이 많이 긴장하신 상황이었다.




잠깐 사범님 심부름을 하느라 다시 도복에서 사복으로 갈아입고 외출을 하느라고, 호주 사범님의 모든 승단 심사를 다 보진 못했다. 솔직히 난 연배도 있으시고, 고단자 시니까 6단 마지막 틀인 통일 틀 포함해서 동작이나 몇 개 보는 요식행위가 아닐까 싶었는데,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통일 틀이야 당연히 보셨겠지만 그 외의 어려운 고단자 틀도 몇 개 더 보셨는지, 벌써 숨이 거칠고 땀을 가득 흘리고 계셨다. 나는 호주 사범님의 도산 틀을 볼 기회를 가졌는데, 약간 긴장하셨는지, 사인 웨이브의 모든 첫 동작이 아래로 가라앉는 대신 위로 뜨시는 것만 제외한다면, 춘추를 잊을만한 노익장이었다. 미스타 아로자는 도복을 갈아입고 옆에 서 있다가 호주 사범님의 발차기 심사부터 함께 돕기 시작을 했는데, 아니, 칠십이 가까운 분에게 앞돌려차기 와 반대돌려차기 연이어 좌우로 차기 반복은 그렇다치고, 1보 맞서기도 그렇다 치고, 손발 격파도 그렇다 치고, 보호장비도 없이, 물론 가볍게 하셨지만, 맨손발로 진짜로 맞서기를 할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스물다섯 한창 젊은이를 상대로 칠십이 가까운 어른이 뛰고 차고 치고 돌고, 심지어 맨손발로...내가 다 조마조마할 지경이었다.



무슨 합기도마냥, 상대가 목을 조를때 어떻게 뿌리쳐서 내동댕이치고 꺾는가 를 보는 ‘호신술’ 심사도 있었다. 나는 처음에 아르헨띠나나 다른 계열의 독자적인 심사인가 했는데, 원래 ITF의 심사에 있는 구성이라고 했다. 다만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안한다고 했다. 나는 원래 관절기도 나름대로 오래 했었고, 열혈 부사범님은 한번도 관절기를 제대로 배워본적이 없어서 오히려 나중에라도 한번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비록 진짜로 격렬하게 하진 않았지만, 대부분의 심사를 함께 도운 미스타 아로자의 실력은 실로 대단했다. 겉보기에도 결코 무르지 않은, 잘 벼린 명검처럼 아주 날렵하고 야무지게 생긴 청년이었는데, 여러 사범님들이 공들여 키운 수제자라는 티가 역력히 났다. 앞서 말했듯이 그 어떤 중남미 계열 사범님들보다 영어가 뛰어나서 실시간 통역이 가능했고, 준비 자세에서 별다른 추가 동작없이 앞발 돌려차기와 뒤돌아옆차찌르기 등이 아주 유려하고 부드럽게 나갔다. 아무리 나이가 스무살 정도 아래라도 대단한 실력이었다. 그는 심사를 마치고 씩 웃으면서, 매일매일 사범님들을 찾아뵙고 ’fixed every details of basic' 을 하면 된다고 했다. 젊은 나이부터 그는 여러 고단자들에게 기초를 착실히 닦았을 터이다. 내가 다 망가진 몸으로 서른살떄부터 겨우 사범님을 찾아뵈어 지금까지 겨우 조금씩 쌓는 기초를, 그는 이미 어린 나이부터 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우리 도장의 좋은 자극이 되기 바랐다.



호주 사범님은 약 1시간 가까이 심사를 보셨고, 순조롭게 8단을 받으셨다. 틀 24개와 태권도의 동작은 6단까지 다 배우고, 7단부터 9단까지는 태권도와 사회에 기여한 업적 등까지도 포함하여 한 사람의 인생도 승단에 포함된다고 들은 바 있다. 호주 사모님은 기뻐하셨다. 나는 사실 오랜만에 고단자들을 뵙고 영어도 쓰고 정신없어 압도당하고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한편으론, 정말이지 고단자 승단 심사가 내게 좋은 자극이 되어서, 나도 저 분들의 연배까지, 그 단이 되진 못하더라도 오랫동안 연습할 수 있기를 바랐다. 오늘은 땀흘려 훈련하는 일은 전혀 하지 못했다. 대신 정신적으로 정돈된 기분이었다.



오늘의 훈련

- 고단자 승단 심사 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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