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적을곳이없어서!(짧은끄적임)

블루투스를 거부하고 유선 이어셋으로 돌아오는 세상에 대하여.

by Aner병문


작금의 세상이란 어떤 세상인가? 내 직장의 기준에서 보았을떄, 명백히 올해, 일로써 만나뵙는 분들은 화가 많아졌다. 그들은 좀처럼 일의 해결을 위해 긴 대화를 원치 않고 일단 무조건 해결해달라고만 한다. 앞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몇 가지 여쭐라 치면 왜 그리 말이 많냐는 식이다. 내가 내놓은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대번에 AI를 거론한다. AI의 답변은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털보 큰형님은 앞으로는 AI의 시대가 올거라며, 아니, 이미 AI의 시대라며 발맞춰 나가고, 적응해야만 된다고 했다. 꽤 오래전에 독립하여 개업한 형님은, 이미 하루 매출의 계산도, 그리고 앞으로 업장을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한 조언도 AI에게 얻고 있었다. 나는, 형님, 고등교육 받은 사람이 왜 그려, 좋은 머리를 받았으믄 써야제, 그걸 그냥 콤퓨타에 맡겨요? 하나 형님은 픽 웃으면서, 병문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운동하고 시장 장 봐오고 점심 저녁 장사 준비하는 내가 언제 야밤에 불 켜놓고 그거 하고 있겠어, 유료 구독해놓고 딱 맡기면 편해, 하며 일축하였다. 오히려 내게 오래 전 영국에서 도끼 들고 방직기 쪼개던 네드 러드가 어떻게 되었냐고도 반문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네드 러드는 망태 할아버지마냥 가공의 인물일뿐, 노동자의 복직을 위해 기계 때려부수던 러다이트 운동의 정확한 주축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는가보다. 털보 큰형님은 결혼하고 나서부터 내가 폭넓은 사고를 하지 못하고, 사람이 아주 협소하고 보수적으로 변햇다고 반농반진으로 놀리곤 한다. 직장 상사는 인터넷 검색을 가지고 정보를 조합하던 세대와, 이제 그 정보 조합마저도 제3의 존재에게 맡기는 세대가 또 갈렸다고 냉정하게 평했다. 하기사 내가 대학다닐때 방송에서 신물나게 듣던 이야기는, 메타적 인지 사고니, 소통 방식이니, 자료 접근은 이미 너무 쉽기 떄문에 접근한 자료를 가지고 어떻게 창조적, 창의적 사고를 할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속칭, 이해찬 세대가 소위 그러한 교육 방식에 경도되었던 세대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지금은 이러한 교육 방식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특히 태권도 훈련을 오래 하게 되면서, 나는 자꾸 뭐든지 직접 해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프랜시스 베이컨 비슷한 경험주의자가 되어버렷는데, 그러므로 내가 시도할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분야에 나는 더이상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다. 너는, AI가 어서 더 열심히 일해서 인간들을 모두 다 실직시켜서 다같이 놀고 먹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너어어어어어어어는 정말이지.....ㅋㅋㅋㅋㅋ




그렇다면 이러한 세상에서 인간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물론 가뭄에 콩나듯 좋은 소식도 들린다. 착한 손자가 할머니를 위해 치과 의사 선생님의 화장실 청소를 자처하며 틀니를 해드리고, 의대를 들어가기도 하며,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외국인 유학생의 한학기 등록금 봉투를 돌려주시기도 하고, 노약자를 구하는, 의로운 시민들의 이야기도 간간히 들리지만, 그를 뒤덮는 일들은 훨씬 더 끔찍하고 잔인하다. 모르는 아가씨가 생면부지의 남자들을 앱으로 만나 술에 약을 타서 죽이고, 직업 군인 남편이 제 아내가 산채로 구더기에 뒤덮이도록 분뇨와 굶주림 속에 방치해 죽이며, 제 배 아파 낳은 자식들이 버겁다며 밖에 내버려 죽이고, 목을 졸라 죽인다. 큰 칼로 참치를 해체하는 모습을 보이던 젊은 사업가는, 어느틈에 망한 사업을 되살리고자 사람을 셋씩이나 죽이고도 호의호식하며 기가 죽지 않는 마약왕이 되어 귀국했다. 늘하는 얘기지만, 아내는 옛날에도 이런 짓들이 많았을 터인데, 단지 매체가 더 발달되어 사람들이 더 이런 소식을 자주 접할 뿐이라고 비교적 냉정한 편이었다. 나는 이래도 무섭고 저래도 무서워서, 우리 딸 어찌 키우나 그저 걱정뿐이었다. 이런 세상에서 AI에게 답변을 강요해봐야, 내 입맛에 맞춘 알랑거림이나 몇 마디 내뱉을게 뻔하다. 이런 세상이라서, 나는 오히려 더욱 인의예지신 같은, 아주 오래 전의 미덕에 집착하는 사내가 되어버렸다.




다행히도 아이는 아직까지는 잘 크고 있다. 오랜만에 제 어미의 직장으로 다 같이 간다고 하니 아이는 춤을 추며 좋아했다. 엄마, 우리 가는거야? 우리 가는거지? 하며 내려가는 기차에서부터 흥분하여 눈이 반짝반짝했다. 날이 맑고 따뜻해지면서 봄나들이 여행객들이 많아, 우리는 열차를 갈아타기도 하고, 또 아내의 차를 타기도 하며 제법 힘들게 내려왔다. 오죽하면 아이가 큰소리로 한숨을 쉬며, 어휴, 진짜 엄마 집으로 가는거 한번 힘드네, 할 정도였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잠시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어머니 일 처리해드리고, 서둘러 애 데려와서 준비하고 출발하느라, 아침 일찍 밥 한공기 먹고, 점심에 커피 한잔 마신게 전부인지라, 저녁에 밥 먹기까지 공복으로 파김치처럼 지쳐 있었다. 그래도 무사히 아이를 데려다놓고, 짐을 푸니 마음이 놓였다. 가족은 늘 함께 해야 가족이다. 모처럼 장인께서도 다음날 건너오셔서 더 좋았다. 아버님께서는 사위, 딸, 손녀를 위해 선짓국과 회를 잔뜩 사오셨다. 진짜 물리도록 원없이 먹었다. 아이가 삼겹살 먹고 싶다해서 그 또한 푸짐하게 사주었다.




아내는 이틀간 사이사이 일을 해야해서 염치불구하고 운전을 거의 못하는 나는, 아버님께서 운전해주시는 차를 타고 아이를 열심히 쫓아다녓다. 아버님께서 쉬시는 동안, 나는 하루종일 아이를 쫓아다녔다. 새삼 나 혼자 아이를 쫓아다니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느끼는 나날들이었는데, 일곱살쯤 되니 아이는 고집도 더 늘고, 뭐든지 사달라, 해달라 조르기도 많이 했고, 놀기도 좋아했다. 덕분에 오후 일곱시반이면 거의 까무룩 잠들어 그거 하난 좋았다. 아이가 일찍 잠들면, 아버님은 쉬시고, 나는 달빛 받은 나무 아래서 아내와 나란히 앉아서 밤바람과 산풍경을 즐겼다. 아내의 직장이 산에 있다는건 정말 좋은 일이었다.



신문을 보니, 많은 사람들이 다시금 유선 이어셋을 쓰고 있다고 했다. 블루투스는 근거리 통신으로, 범위 내에서 선없이 무선 이어셋이나 헤드셋, TV, 기타 스피커나 외부 화면 등을 연결해준다. 느닷없이 나타난 ’파란 이빨‘ 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고, 또한 편리했다. 내 어렸을때도 유선 이어셋하면 둘둘 말다 금방 고장나고, 좀 쓰다보면 꼬여서, 보통 1년여 정도 쓰면 슬슬 한쪽 이어셋 부터 지직거리면서 안 들리곤 했었다. 몇몇 기술 전문간들은 블루투스 또한 어쨌든 ’또 한 다리’ 즉, 또 한 단계를 거쳐야 하는 불편함이 있음을 지적한다. 블루투스 전파 범위가 전자레인지 진동 주파수와 비슷하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다. 또한 지하철이나 사거리처럼 밀집된 지역에서는, 동일한 주파수에서의 간섭 현상 때문에 제아무리 좋은 기기라도 연결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러한 환경의 영향에 피로를 느낀다. 신문 기사 속 문장은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유선 이어셋은 그냥 구멍에 꽂기만 하면 되거든요!‘ 주파수건 환경이건, 호환성이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나도 회사에서 전산 일하며 사실 페어링pairing 이라는 걸 알았기 떄문에, 한동안 이걸 다른 어르신들에게 이해시키느라 애먹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예가 사람 간 인사하는 방식이었다. 누구나 처음 만났을떈 격식 차려 인사하듯, 블루투스 장비도 처음 연결되는 기기와는 이 페어링을 거쳐야 비로소 그 다음부터는 기기의 블루투스 목록에서 연결 가능한 기기로 보게 된다. 즉, 그떄부터 비로소 ’어, 왔어?‘ 하는 편한 사이가 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편해질 순 없다. 그래서 나는 페어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늘 설명했다. 그래야 그다음부터는 편한 사이가 되어서 블루투스 들어가서 누르기만 해도 연결이 바로바로 될거라고 알려드렸다.



날이 갈수록, 사람의 위대함이 느껴지는 요즘이다. 아직까지 사람처럼 환경에 적응하고, 사람처럼 변화에 빨리 대처하는 기계나 로봇이나 프로그램을 보지 못했다. 물론 AI가 더 발전하면 어떨지 아직은 모르겠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꾸만 기기에 길들여지면서, 스스로 가지고 있던 여유와 인정, 사고력까지도 상실되는 듯하여 마음이 아프다. 나도 요즘 자꾸 사람이 조급해지고, 기억력이 낮아지는듯 해서 억지로 더 옛날 식으로 머리를 많이 써보려고 노력중잉다. 그래서 아이와 끝말잇기도 하고, 드디어 보드게임도 같이 햇으며, 손 잡고 참새도 보러가고, 벚꽃 밑에서 서로 웃어도 본다 .힘들땐 나도 가끔 TV 틀어주고 그래, 유튜브 좀 봐라, 할때가 없지 않지만, 다행히도 우리 아이 또한 결코 하루 종일 TV만 보지 않는다. 저가 보다 지루하면 스스로 끄고, 공부도 하자고 하고, 밖에 나가 놀자고도 하고, 그림도 그린다. 나처럼 경박한 이에게, 이토록 적극적인 딸이 나와 다행이다. 아내의 덕이 큰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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