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
내 언뜻 배우기로
사회학에서 관찰당하는 집단이 연구자의 시선을 알게 되면 그를 의식하여 평소와 다른 행동 양식을 보인다 들었다. 심지어 의지가 있을리 없는 전자나 원자들도 관찰자의 시선에 따라 달리 움직이기도 한단다. 하기사 글러브 레거스 차고 맞서기만 해도 내 움직임에 따라 상대도 달리 움직이지 않던가. 그래서 영호충은 끝내 상대의 초식에 따라 천변만화하는 독고구검을 익혔나보다. 형식이 없음으로 형식을 이기니, 이는 곧 무형무위하는 리가 유형유위하는 기를 움직이는 퇴계학파의 진수...읍읍.
그러므로 문학이나 미술처럼 고정된 대상을 탐구하는 학문은 참으로 흥미롭다. 대상에 자유롭게 개입이 가능하기에 숱한 의미와 해석이 탄생하면서도 원작은 결코 훼손되지 아니한다. 이름이 기억나지 아니하는 어느 미학자는, 예술은 본디 제작자가 만든 작품의 여백을 관람자가 채워주는 일이라 했거니와 한편으로는 작가 또한 보는 이들과의 긴장감 있는 줄다리기를 계속해야 한다. 결국 글을 쓰건 그림을 그리건 조각을 하건 상대와 끊임없이 거리를 조절하며 발과 주먹을 겨루듯 의미를 주고받지 않으면 안된다. 삶의 이런 부분들이 가끔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