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

이틀 동안 비가 세차게 왔다.

by Aner병문

회사 동료들과 모처럼 소주 한 잔 하고 돌아온 밤부터 비가 굵게 그었다. 당일은 견딜만했는데 근 십 년만에 참이슬 대신 마신 처음처럼이 내공(?!)을 흩은 탓인지 온 몸이 쑤셔 일어날 수가 없었다. 고량주라도 반 병 하면 기운도 나고 훈련도 할텐데, 아내는 걱정 반 매정 반 으로 어제도 소주 댓 병 잡숫고 들어오시고는 무슨 또 술입니꺼, 안됩니데이, 딱 자르시어 차마 술 마시면 덜 아플 거란 말조차 꺼낼 수 없었다. 인간이란 양심이 있어야 하므로 나는 당연히 아이도 잘 돌보고 가사노동도 잘했다. 아내는 최근 동물의 숲인가 하는 게임을 시작했는데 무슨 게임이 몇 시간마다 한 번씩 해줘야 유리하다는 모양이었다. 나는 늘 나 대신 집에서 홀로 고생하는 아내와 아이를 위해, 아내의 간식거리를 사다주고, 아이가 분유 대실 먹을 우유와 이유식 대신 먹을 미역국을 끓였다. 몸은 계속해서 쾅쾅 울렸다. 집안일을 하지 않을 때 나는 거의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덴마와 갓핑크만 보았다. 마치 무림처럼, 천하제일의 솜씨를 지녔으나 게으름으로 대중의 신망을 잃은 고수와, 오랫동안 갈고 닦은 필력 및 연출력을 마음껏 펼치는 신진고수의 작품을 보았다. 날은 덥다가 추웠다. 어머니는 소고기를 잔뜩 구워주셨지만, 술은 주지 않으셨다. 딸아이는 김치통을 번쩍 들며 애교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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