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

아이가 돌아오던 날, 해가 났다.

by Aner병문

아이와 아내와 병원에 있는 동안 수도권은 내내 흐리고 비가 왔다. 혹시나 놀라실 선한 분들을 위하여 대단한 일은 아니었음 을 미리 말씀드리고 싶다. 단지 지난 토요일은, 아내가 내정되어 있던 회의를 위해 용산으로 잠시 외출했고, 어머니 아버지께서 때마침 손녀 보고 싶으시다고 정원이 으리으리한 까페에나 가시자 하여 다녀온 길이었다. 빵 진열대만 해도 과장 섞어 도장만 하고, 정원이며 쉼터는 운동장 같던, 광명의 유명 까페는 봄맞이 가족들로 붐비어 애 아니면 개였다. 낯선 사람은 물론이요, 이빨이 제 머리통만한 개 앞에서도 도통 겁이 없는 내 딸은, 할머니가 떠먹여주는 사과, 바나나, 물에 갠 달걀 노른자, 빵 껍질, 이유식 등을 따박따박 잘 받아먹으며 마음껏 뛰놀았다. 아내가 돌아올 시간에 맞추어 티라미수 조금 사고, 나는 구형 아이패드 건네주러 올 형님에게 술이나 한 잔 사러, 돌아오던 중에 아뿔싸, 아이가 차 안에서 먹은 것을 허옇게 후두둑 게워냈다. 아이 키우다보니 구토야 일상다반사고, 게다가 슬슬 멀미할 때인가 싶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내가 아이패드를 만져보며 양꼬치 불 앞에서 고량주 한 병 반 마실 즈음, 아버지 어머니께서 문자를 남기셨다. 소은이가 토가 심해서 일단 대학병원 왔다, 별일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라. 어른들이 별일 아니라니 별일은 아니겠으나 어찌 별일 아닌 일로 덮고 말 일인가, 덮다 라는 숙어가 bottle up 이었던가. 내색은 안했어도 서둘러 계산하고 돌아오는 길에 늘 챙겨오던 마시다 만 고량주까지 놓치고 왔다. 집안은 서둘러 떠난 흔적만 남아 어지러웠다.



마시다 만 술이 깨어 기분이 묘했다. 다시 연락드려보니 대단한 일은 아니었으나, 작은 몸에 여러 번 구토하여 탈수는 있을 터이므로 수액 맞히며 하루 이틀만 있어보자는 결론이랬다. 아내는 보호자 자격으로 간단한 코로나 검사만 받고 아이 곁에 있었으며, 그 외의 사람들은 정밀 검사를 받은 뒤 보호자와 교대해야만 병실에 들어올 수 있댔다. 그래도 난데없이 병원에서 이틀 밤을 지새울 아내가 안쓰러워 나도 가겠노라 나섰지만, 어머니와 아내가 모두 반대하고 나섰다. 아가 기운도 없는데다 짜증이 심해가 어차피 내만 찾을 낍니더, 코로나 땜시롱 여러 사람 드나들도 못 하이까네 꺽정 말고 집에 기시소, 벨일 아닙니데이. 암만, 그라제, 이런 일은 여자가 하는 것이여, 머스마가 옆에 있어서 머덜라고 그냐, 도움도 안됨시롱, 집 정리나 잘하고, 술 묵지 말고, 걱정 안 끼치는거이 느그 안사람 돕는거여. 고부 간에 쌍지팡이 짚고 나서니, 솔직히 나도 애비인지라 걱정도 되고 마음이 하전했으나 할 수 없이 뜻을 꺾었다. 새벽녘 늦도록 잠 못 이루며 냉장고 정리하고, 아내가 묵혀둔 고기를 볶고, 겨울 옷을 넣어놓고, 청소기 돌리고, 빨래하고, 집 안팎을 쓸고 닦고, 기도하고, 책 읽으며, 일 다녀왔다. 도장에 가고픈 마음 없지는 않았으나 처자식에게 면구스러워 결국 포기했다. 처자식과 부모님은 병원 안팎으로 고생하시는데 아들이랍시고 남편이랍시고 때는 이 때다 도장에나 가 있으면 뭐라 생각할 것인가, 행여나 짐 챙겨오라 부를 수도 있기에 그냥 집에서 가볍게 상념을 떨어주는 정도로만 훈련했다.



애초에 무슨 병증이 아니었기에 아이는 잘 돌아왔다. 병상에서 시달린 아내의 얼굴은 때꾼하여 안쓰러웠다. 어머니는 며느리 보기 더 미안하시어 그러셨겠지만, 내가 죽일 년이여, 며느리 없을때 더 잘해준다고 자꼬 퍼멕인 내가 죽일 년이여, 하셔서 위안하느라 진땀을 뺐다. 내가 부모가 처음이듯, 우리 부모님도 부모가 처음이었던 것처럼 조부모가 처음이지 않겠는가, 모두가 잘하려다 삐끗 넘치는 처음은 다 있는 것이다. 아이도 아내도 낯선 병상에서 잠을 설쳐 어제 저녁 여섯 시부터 잠들어 아침 일곱시가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아이는 속없이 잘 놀았다. 티없이 빵끗빵끗 웃었다. 아이의 움직임이 집을 흔들고, 웃음이 마음에 남았다. 3일 만에 안아보는 아내의 몸은 늘 부드럽고 따뜻하고, 마음처럼 넉넉했다. 다시 뜨는 해처럼, 아아, 내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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