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

불법 주택 철거 용역과 살생의 아침

by Aner병문

별일 없다면 오늘 퇴근 후에 도장 갈 예정이었기에 아침에 간단히 죄수운동법의 기초 동작을 아내에게도 알려주고 씻던 참이었는데, 아내가 조심스레 문을 두드렸다. 여보야, 미안한데 할 말이 있니더. 응, 어째 근가, 소은이 변 봤어요? 아니, 그것도 그건데요(꼭 애비 씻을 때 변 보는 딸..ㅜ) 창 밖에 쌍쌍벌이 집을 져놨니더, 내는 무수와가 건드릴수가 없어서...저거 지금은 짝은데 이삼일 내로 커질 거라, 그 전에 뿌사야 됩니데이. 그러하여 씻고 나가보니 처음에는 찾을 수가 없어서 사진을 찍어 다시 보여주었다. 여보, 밖에 없는디 잘못 본거 아녀? (사진 쓱 보시더니 바로 확대해서) 아이코 참, 여 있다 아잉교, 연근처럼 생긴거. 아닌게 아니라 그렇게 찾아도 안 보이던 벌집은 사진 확대한 구석에 마른 버섯마냥 매달려 있었는데 다시 나가 들여다보니 크기는 아기 주먹만할까, 생김은 참말 영락없는 연근이었다. 벌집도 벌집인데, 그 벌집 바로 위에 무슨 파수병처럼 제법 야무지게 생긴 길쭉한 벌 한 마리가 독수리처럼 도사리고 앉아 겹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반자동 우산을 저격총마냥 겨누고, 혹시나 덤벼 쏘이기라도 할까 싶어서 후드집업의 모자까지 둘러쓰고 벌집을 향해 영점을 맞춰 발사했다. 내 생각대로라면 벌집이 부서지는 순간에 벌은 곤충답게 파라락 날아오를 터이고, 에이, 철거되었네, 세상 인심, 아니 충심 蟲心 하고는 하며 안양천변 어데 우거진 숲 어귀에나 집 지으러 떠나보내는게 내 예상이었지만, 무슨 걸프전 오발참사도 아닌데, 쏜살같이 앞으로 뻗어나간 우산은 벌까지 정통으로 때려맞혀버렸다. 벌은 힘없이 궤적을 그리며 몇 번 날려고 애쓰다가 바닥에 픽 쓰러졌다. 미안한 마음에 혹시나 살까 싶어 들여다보니 더듬이와 다리가 구겨지고, 날개도 찢어져 내가 파브르인들 살려낼 성 싶지 않았다. 때마침 옆집 옥상에서 텃밭을 일궈 상추며 토마토를 가끔 나눠주시는 아버님이 쓱 나오셨다. 옆집 서방, 맑은 날에 우산들고 뭐해? 아, 벌집을 좀 치웠는데 벌도 죽고 입맛이 쎄하네요잉, 저것도 살겄다고 우리 집 처마에 집 지을 거일 건디, 저것도 알고보면 어느 집 애비일라나 어찔래나. 처음에는 서울말을 썼지만, 뒤로 갈수록 진하게 배어나는 사투리처럼, 나도 안타깝고 입맛이 썼다. 내 삶도 넉넉치 못하면서, 내 집 처마 밑으로 살겠다고 날아든 조그마한 축생 하나 거두지 못해 집을 부수고 살생까지 했다. 그러므로 묵자께서 유생 무마자에게, 유가의 선비들은 말로만 예와 의를 좇으며 그 행동은 떳떳치 못해 개돼지와 다르지 않다고 통렬히 비판하셨는데, 어쩐지 나도 영 입맛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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