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

ITF 번외편 ㅡ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더니

by Aner병문

내 스스로와의 약속은 지켰다. 휴무 하루 처자식에게 염치없이 내내 자고, 다음날 또 출근하여 커피 넉 잔을 있는대로 부어넣었더니 비록 정규 훈련은 완전히 못했을망정 일하는 짬짬이 주먹쥐고 팔굽혀펴기하고, 앉았다 일어나고, 집에 돌아와 안식구와 대청소하고 찌개 끓이고, 삼십분 섀도우하고, 장 보고, 겨우내 딸이 먹을 호랑이콩 두 포대를 모두 까서 적게 나눠 냉동하고 겨우 네 시간 조금 너머 잤는데도 여전히 정신이 말똥말똥하였다. 기사 무협소설에 미친 시골 영감 키하나가 돈 끼호떼가 되기까지, 그는 소설로 굳이 그려내지 않는 기사의 삶 뒤편에는 마치 백조의 발버둥마냥 금화와 갈아입을 속옷, 약으로 가득 찬 짐배낭과 궂은 일을 대신해줄 종자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지만, 안다고 무엇이 달랐을까. 어차피 천하미녀도 보이지 않는데서 뒷간을 가며, 고승대덕도 욕망에 번뇌하는 구석이 있으므로 삶은 원래 번잡스러운 것이다. 다만 늘 조금씩 장난처럼 훈련해오던 몸의 습관이야말로, 큰 기술을 익히게 하기보다 지금처럼 더 나은 환경, 더 집중된 훈련을 할 수 있을 때의 대비라는 사실을 이제서야 안다.




일찍 훈련을 시작한 탓에 사주찌르기 막기부터 2단 마지막 고당 틀까지 하고도 영어방송 들으며 체력훈련까지 이십여분 정도 시간이 남았는데, 모처럼 발차기 연습을 많이 했다. 특히 다리가 짧은 나는, 앞발로 돌려차거나 옆차찌르고, 뒤돌려옆차찌르기, 반대돌려차기 연습을 좀 했는데 확실히 발차기가 많이 좋아졌지만, 오히려 오른발로 버티는 왼발차기가 여전히 휘청거린다. 이번 생일에 명분삼아 아내를 졸라 헤비백을 들여놓으려 했는데 안식구가 걸어놓은 바구니가 아주 딱인지라 굳이 돈들여 그럴 필요가 없었다. 뜻이 있는 곳에 다 길이 있나니..으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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