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

아이폰으로 전화기를 바꾸며

by Aner병문

생전 운전 서툴듯 기기에 서툴다는 말도 달고 살 줄 알았으나 결혼 이후로 어쨌든 기기가 많이 생겼다. 결혼 선물로 LG 신형 전화기와 노트북을 아내가 사주었고, 열심히 일하여 애플 워치가 하나 생기는가 싶더니, 그러므로 너가 애플 워치 연결할 공기계를 흔쾌히 주었고, 아내가 다시 오륙년 넘게 쓰다가 마침내 유명을 달리한 전화기를 새로 사시며 받은 상품권으로 에어팟을 사주시고, 양꼬치에 고량주 한 병 걸친 값으로 딸내미 가지고 놀으라며 구형 아이패드를 넘겨받기도 했다. 그러다 마침내 업무상 필요하게 되어 커다란 아이폰으로 전화기마저 다시 바꾸게 되었다. LG 전화기의 마지막 역작이라 불리는 V40은 결혼하던 해에샀으니 벌써 햇수로는 4년이 되었으나 가볍고 튼튼하고흠집 하나 없이 잘 사용하던 기계인지라 아쉽고 안타깝기도 했다. 그치만 비슷한 때 나온 애플 전화기가 중고가가 여전히 백만원을 호가할때 내 전화기는 십만원이 고작이라니, 아니 이건 맨큐 선생도 설명 못할 중고 시작의 기적…




좌우지간 이번에 다시 아이폰으로 전화를 바꾸며 이래저래 느낀 바가 컸다. 젊은 사람들 말마따나아이폰이 색감 하나는 좋구나, 그 유명한 아이클라우드 서비스로 애플 기기끼리 연동은 잘 되는구나, 아무리 너가 공기계를 주었다지만 근 반 년 만에 그저 거의 시계로만 쓴 애플 워치는 진짜 편리하구나, 다만 자판은 다시 위치와 박자와 감도를 배워야하므로 힘들구나, 등은 다 기계를 바꾸면서 생기는 부가적인 내용이었고, 전화기 하나 바꾸며 삶의 번잡스러움까지 느낄 줄은 몰랐다.



안드로이드와 아이폰이 서로 다른 OS를 구동하기에 앱을 통해 개인 자료를 넘겨도 때때로 오류가 있다는 사실은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아내를 만나기 전, 나는 거의 스마트폰 초창기의 구형 전화기를 써왔고, 그 당시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카드, 일일이 내려받아 전화기용으로 작게 코드를 수정한 음악이며 영상을 이제는 전부 앱의 형태로 전화기에서 사용 중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오히려 전화기를 바꾸면서,얼마나 많은 계정과 암호를 기억해야하는지 깨달았고, 그 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내가 나임을 증명하고 기계에게 납득시켜야 한다는 사실에 아연했다. 결국 나는 아침 훈련조차 거른 채 하룻밤을 꼬박 새고서야 겨우 새 전화를.예전 전화 비슷하게 설정해둘 수 있었다. 이 모든 일은, 전화기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삶의 많은 부분을 우리가 전화기로 처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즈음에 딸이 감기에 걸렸다. 물놀이를 유난히 좋아하더니만은, 기침 콧물에 열이 38도 육박하여 겁이 났다. 나랏일을 보기 전 간호사였던 아내는 침착하게 아이의 몸을 닦아 열을 빼고, 약을 먹이고,입으로 콧물을 빨아내주었다. 잔심부름이나 나 역시 뜻밖에도 옮아버려 며칠 콧물 재채기로 고생했기에 늘 태권도를 연마하는 아비로서 통탄할 나약함이었다. 그때 나는 자정 넘어 내 품에서 군고구마마냥 뜨거운 몸으로 울던 아이 또한 단단하게 커갈수록, 너무 자질구레해서 뉘에게 전하지도 못 하고 혼자 감당해야할 삶의 번잡스러움을 겪고 있구나 생각했다. 다행히도 내가 새 전화에 익숙해지듯 아이도 씻은듯 금방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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