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크의 시대....
그러므로 '이거 방탄이야 개새야~' 로 유명해지기 전까지의 배우 김희원이 연극을 그만두고 호주로 건너가 페인트공으로 입에 풀칠했듯이, 연기와 바텐더를 병행하던 마크 러팔로가 열연한 브루스 배너는 헐크로 변하기 직전 말한다. 내가 비밀 하나 알려줄까요, 난 언제나 화가 나 있어요. 다작요정, 연기하는 배가놈 배성우'조차' 합격하는 오디션에 떨어져 울던 김희원도 '저런 놈도 되는데 나는 왜 안 되나' 울분을 토했다고 하듯, 지금은 전세계에서 인지도를 쌓은 마크 러팔로에게도 늘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있었을 것이다. 젊은 시절의 말론 브란도를 연상시킨다는 찬사까지 받은 연기력을 지녔음에도, 그의 무명은 너무 길었고, 온갖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야 했으며, 뇌종양 투병에 이어 동생까지 총기 사고로 사망하고 만다. 그러므로 겉으로는 다소 유순해보이지만 화산 같은 분노를 늘 간직하고 있는 헐크로서의 그가 조용하게 내뱉는 대사는 곧 옷을 찢고 나올 초록색의 거구만큼이나 끔찍하리만치 생생하다.
시대가 사람을 졸아붙게 만든다. 배추가 돌아왔다, 를 쓴 이른바 '전설의 주먹' 방동규 씨도 그렇게 말했다. 드래곤볼에서 흔히 야무치나 피콜로 등이 전투력 측정기라고 하는데, 이름 한 번 들어본 적 없는 그 역시 김두한과 호형호제하는 실력자였다고 하니, 이쯤되면 김두한은 종로의 황제가 아니라 사실은 그 시절의 전투력 측정기가 아니었나 싶다. 젊었을 때는 주먹 하나 믿고 시장 상인들에게 생활비를 얻어쓰고, 몰락한 뒤에도 사내 대장부 운운하며 공밥 공술 얻어먹기를 예사로 했던 그를 긍정코자 하는 말이 결코 아니다. 학원 라이벌전 시리즈로 유명세를 탄 이와시게 타카시가 서정적으로 그려낸 '흐르는 강물처럼' 의 실존 인물 타네다 산토카의 삶 역시 긍정할 수 없다. 한편으로는 하이쿠의 서정시인으로 일본 근대를 방랑하며, 그의 시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그에게 숙식을 제공하며 열정적인 사랑까지 바쳤던, 그야말로 일본의 김삿갓이었으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그 역시 소설가 김성동 선생이 부르짖듯, 자력갱생(自力更生) 할 수 없는 인간이었고, 심지어 젊은 시절에는 문학한답시고 부모님이 물려주신 가산을 탕진하고도 모자라, 자신에게 헌신적인 아내까지 인신매매하려던 인간말종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왕년의 영광에 기대어 사는 주먹패나, 혹은 한량시인의 삶에 빗대어 이 시대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시대가 사람을 지나치게 몰아붙인다는 말만 가져오고 싶다. 사실, 세상이란, 어느 바둑 영화(를 표방한 액션영화)의 말처럼 그렇다. 고수에게는 놀이터이고, 하수에게는 처참한 지옥인 곳.
시대가 사람을 늘 압박하므로 사람들은 손해를 두려워한다. 스스로 권투도장을 오랫동안 운영하며 더 파이팅, 을 장기연재해온 모리카와 죠지는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끝까지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야말로 권투의 묘미' 라고 말했다. 실제로 4전 5기로 유명한 홍수환은 그 유명한 파나마 전에서 챔피언 카라스키야에게 네 번이나 다운을 당했지만, 끝내 다섯 번째의 역전 KO승을 거두어 지금까지도 명승부로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더이상 백절불굴이니, 다시 일어나는 끈기니 말하기조차 조심스럽다. 요즘은 그런 사람들을, 꼰대 를 넘어서 '라떼는 말이야~' 'LATTE IS A HORSE' 등의 말로 비웃기도 한다. 세대 갈등에 이어 임금 격차까지 벌어져, 선후 세대 간의 유대 관계는커녕 서로를 더욱 적대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즘 횡행하는 남혐-여혐이니, 페미니스트니, 빨갱이니, 꼰대보수니, 하는 말은 결국 상대에게 레떼르(letter)를 붙여 격리해두고, 마음껏 증오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아내는 나와 결혼하면서, 늘 참고 지내라고 당부했다. 젊은 시절에는 나도 참다 참다 터뜨리는 성격이었으나 나이를 먹고 결혼까지 하고 나니 이제는 딱히 급할 게 없어 느긋하게 지내려고 늘 노력하고 있다. 이것 잠시만 참으면, 처자식이 기다리는 따뜻한 집으로 갈 수 있는데- 라고 늘 생각한다. 내가 잠시 참지 못하여, 일이 커져 경찰서에 간다거나, 혹은 늘 분노의 부스러기를 가지고 집에 돌아간다면, 아내와 아이에게도 그 감정이 옮아갈 터이다. 그래서 가능한 바깥 일은 바깥에서 부드럽게 처리하고, 그러지 못할 일은 빨리 잊기로 늘 다짐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아닌게 아니라 얕보인다는 말을 꽤 듣는다. 사실 도장이나 교회를 제외하면 바깥에서 크게 터놓고 지내는 이가 둘뿐인지라, 늘 그냥 그러려니 하고 만다. 군대도 전투경찰을 나와, 모르는 이를 부를 때도 늘 '선생님' 소리가 입에 붙었다. 어제는 퇴근길에 장을 보러 가니, 주차장 문제로 서로 죽일듯이 싸우시길래 좀 말리다가 직원에게 넘겨 포기해버렸고, 약국으로 마스크를 사러 가니, 등본을 보여주고 가족 전부의 마스크를 사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대번에 등 뒤에서 아니, 마스크 이렇기 사재기 하는 맞는거예요? 불법 아니에요? 나한테는 옛날에 왜 안 팔았어요? 날선 소리가 들려온다. 등본을 보여드리며 상황 설명을 정중하게 하자마자 아유, 됐어요, 됐어, 알았어요! 하고 휙 가버리는데, 본인은 되었는지 모르지만, 갑자기 후다닥 얻어맞은 격이 된 나를 보며 약사 선생님이 요즘 늘 이래요, 처연하게 웃으신다. 이래서 예수님이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해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셨나보다. 요즘엔 퇴근길마다 아주 버스 뒷자리에서 바깥자리에만 앉아 있는 사람들 때문에 솔직히 피곤하다. 출근길은 일찍 나서므로 자리가 많이 비어 있지만, 퇴근길은 학생들 하교길과 겹쳐 자리가 아주 애매한데, 좀 앉을라 치면, 항상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좁은 버스 뒷자리 중에서도 바깥자리에만 앉아 있기 때문에 그 안자리로 들어가기가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 분명히 몇 년전 까지만 해도 그냥 앉는 순서대로 안쪽 자리부터 채워졌었는데... 이거 정말 나만 불편한 건가요. 버스 한 자리를 앉아도 절대로 손해보지 않겠다 라는 선언이 들리는 듯하여 가끔은 머리가 다 아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