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이석원 님의 글을 일부 퍼왔습니다.

by Aner병문

(전략)


우리는

평생 남의 잘못을 지탄해온 사람들이 언젠가 화살이 자신에게로 향할때 얼마나 치졸해지는지 수없이 보아 왔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라 나는 생각한다.


이번일이 터지자 거리낌없이 할머니를 무시하고 모독하던 사람들중 다수가 어차피 진영의 이익을 위해 복무해온 자들인만큼 그들의 그런 행태가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법적 책임 운운하며 누구보다 앞장서서 가장 저열한 언어로 할머니를 재단하던 어떤 이의 모습은 특히 씁쓸하다. 그는 과연 지난날 무슨 마음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영화를 찍은 것일까. 그가 이런 상황에서 할머니 편에 서는게 아니라 할머니를 상대로 방어를 해야하는 쪽에 이입하고 편을 든것은 결국 당사자가 아닌 돕는자의 한계, 다시말해 시혜자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닌지. 위안부 할머니들은 단지 피해자이기 때문에 그 존재의 의미가 있을 뿐 혼자서는 싸울줄도 올바른 판단을 할줄도 모르는 그저 도움이 필요한 아이같은 존재로 계속해서 묘사 하면서 누구보다 이용수 할머니에게 무례했던 그는 끝내 할머니에겐 사과조차 남기지 않고 무책임하게 에스엔에스를 접었다.



이것은 일개 회계 부정의 문제가 아니다. 활동가의 삼십년 헌신이 무너지느니 어쩌느니 하는 사람중에 할머니의 무너지는 인격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찾아볼 수 없다. 과연 누구를 위한 운동이었나. 이렇게 피해자가 배제되어온 운동 방식이라면 처절히 반성하고 이제라도 바로 잡아야 하지 않나?


내가 알아본 바로는 그간 할머니들의 이런식의 폭로성 문제제기가 여러번 있었지만 모두 묵살 당했다.


왜 무엇을 위해 사람들은 수요일마다 모였고 성금을 냈는가. 할머니들의 목소리는 과연 그간 우리에게 어떠한 편집 없이 전달 되었는가.



반성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반성할 줄 모르는게 부끄러운 거지. 바로 우리가 일본에게 평생 한 말 아니었던가?


그러나 이번에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할머니를 알게 모르게 공격하고 그 인격과 정신을 폄훼하고 의심한 이들이 반성할 여지는 드물어 보인다. 그들이 평생 비난한 대상처럼.


마치 거울처럼.

작가의 이전글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