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아니,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상을 들여오셨다. 우리 집에서 본가까지는 버스로 4정거장, 빠르게 걸으면 30분 조금 넘는 거리다. 가까운 거리인만큼 혹시나 젊은 며느리가 불편할까 싶어서 손녀 보고 싶으실 때 항상 명분삼아(?) 함께 먹자며 음식을 챙겨오시는 어머니의 마음을 우리 부부도 모르지 않았다. 밤새 내내 거친 비가 내려 어깨와 발바닥을 앓던 주일, 어머니는 자연산 회를 떠오셨다며 아버지와 함께 점심을 들자셨고, 부모님의 차 뒷좌석에는 바리바리 횟감 외에도 널찍한 상, 말 그대로 밥상이 하나 있었다. 아니, 막상 어머니와 함께 힘을 합쳐 꺼내어보니 역시나 보통 상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일찍부터 쏘는 듯한 눈빛에 날카로운 얼굴선으로 보통 상(相)은 아니라는 말씀을 늘 들으셨는데, 어머니가 만드시는 상(床) 역시 늘 남달랐다. 산을 좋아하시는 어머니는 젊었을 적부터 산을 즐기시며 이른바 괴목(槐木)이라 불리는 좋은 모양의 나무들이 있으면 집으로 가져와 사포로 결을 닦고, 니스를 발라 장식하기를 즐겨하셨는데, 연세가 점점 드시면서는 재미를 붙이시어 손잡이 달아 의자도 만드시고, 탁자도 예사로 만드셔서 심지어 지나던 등산객이 뭐하시는 분이냐며 값을 붙여 팔라고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여 운동과 노동으로 닳아버려 각자 어깨가 시원찮은 두 모자가 힘겹게 4층까지 널찍한 상을 거실에 들여놓으니, 과연 그 너비며 높이는 말할 것도 없고, 색깔마저 맞춤하여, 웬 상이냐 여쭙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돌아오는 어머니 말씀이 또한 걸작이시었다. 아, 5월은 가정의 달이고, 21일은 둘이 하나가 되는 숫자라고 부부의 날이람서, 느그들 펭소에 보드게임인가 뭔가 카드 넘구고 주사위 돌리는 거 하고 놀던디, 상이랍시고 째끄마내서 거그다가 밥이나 차려 먹겄냐, 해서 하나 맹글어서 갖구 왔다, 아, 백일이면 사돈 어른들도 오실거인디, 저 상에다가 뭘 차려내놓겄냐, 나중에 느그 친구들 올 때도 시어미가 해준거라고 자랑하고 씨언하게 놀아라이. 사포로 이미 몇번이나 밀고 니스를 먹인 상의 끝은 반질반질했다. 어머니는 신이 나는지 가락을 넣어 설명을 더하셨다. 이게 또 습기 먹어 뒤틀어지믄 뒤틀어지는대로, 갈라지믄 갈라지는대로 멋있고 좋은 것이여, 그게 세월을 먹는다는 거잉게, 근디 니들이 밥도 먹고 게임도 해야하는디, 그래 쓸 수 있겄냐, 인자 여그다 두툼한 유리만 하나 맞춰서 얹어놓으민 완성이여, 아마 볼 만할 것이다. 이런 날에 어찌 또 한 잔이 없을 수 있으랴, 그러므로 교회를 다녀온 나는 어머니 눈치를 보아가며 아버지 좋아하시는 막걸리를 땄다. 아내는 그 전날도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나를 보며 에휴, 아버님 때문에 봐드립니데이, 한번 웃고는 더 책망하지 않으시었다. 즐거운 가족의 점심이었다.
주말에는 예상과 달리, 아니, 혹은 예상대로 아무 것도 하지 못하였다. 아내는 모처럼 남편이 낮에 있는 주말에는 눈을 잠시 붙였고, 나는 갈수록 손발에 닿는 모든 것을 느끼기 좋아하는 아이와 놀아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전 직장의 형님을 만나 아내의 허락을 받고 몇 병의 술을 함께 했는데, 지친만큼 술을 잘 들지 못해 금방 취해버린 형님은, 미 비포 유 라는 영화 얘길 하면서 자신은 안락사를 생각하고 있다고, 직장이나 사생활에서 도대체 미래를 볼 수가 없다고, 애 키우고 사는 내 삶의 재미가 참 좋아보인다고 털어놓았다. 나와 함께 매장 일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기타를 치며 밴드를 하고 있는 형님은, 내게 이야기한 외에도 여러 아가씨들과 선을 보았던 모양인데, 그토록 맘처럼 잘 풀리지는 않는 모양이다.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형님의 기준이 다소 높고 까탈스러운 게 아닌가 싶었지만, 형님을 그 기준을 물릴 수 없다니 함부로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함께 일했던 형님들 중, 소리꾼 남상일을 닮았던 쇠질 형님은 보험을 파느라 잊을만하면 내게도 하나 들어달라 전화하는 관계로 소원해져버리었고, 기타 형님은 보통 생각하는 대구 사람답지 않게 참 부드럽고 점잖은 양반인데, 사적으로 마음 둘 곳 없어 직장에서도 답답해하니 내 마음도 함께 에였다. 다만 내색하지 않고, 형님이 좋지 않은 생각을 할까 싶어 짐짓 야단을 쳐서 술 잔뜩 먹여 보내고는, 잘 도착했는지 확답을 받았다. 아내에게 감히 얘기할 수 없는 내 청춘의 그늘 속에서, 나라고 왜 아니 좋은 생각이 없었고, 시도도 안 해봤을까, 다만 그 끝은 언제나 허망할 따름이다. 나는 그 끄트머리에서 아슬아슬하게 돌아왔고, 지금은 늘 그 기억을 홀로 반추하며 다시 나락으로 빠지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살아나가는 것은, 마치 다큐멘터리 맨 온 와이어 의 사내들처럼, 빌딩과 빌딩 사이에 줄을 걸쳐놓고 균형을 잡고자 애쓰는 것이기도 할테고, 늪 어딘가에 박혀 빠지지 않도록 늘 손발을 놀리며 버둥대는 것이기도 할테다. 지친 이들에게 지쳤다고 타박할 수는 없으나, 다만 의지만은 잃지 말아주기를 당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형님과 마시는 둥 마는 둥 마시고, 근 두 달만에 아들과 함께 또 술상을 마주하며 손녀를 보신 아버지께서 기분이 좋으실때, 나는 역시 소주 세 병째에서 그만 손목에 아내의 손칼을 맞고(그러니까 나 몰래 태권도교본을 보는게 분명하다니까?) 멈추었다가 그만 슬픈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는 어쩌면 모두 상상의 권력만을 허용받았구나 싶었던 것이다. 교회 식으로 말하자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 동산에서 추방당할 때부터, 맑스 식으로 말하자면 잉여가 생긴 이후부터, 유발 하라리 식으로 말하자면 인류가 땅에 묶인 뒤부터, 공맹 식으로 말하자면 인간이 천성을 더럽힐때부터, 노장 식으로 말하자면 인간이 문자를 익히고 선악을 구태여 분별하려 애쓸 때부터(쓰고나니 성경의 시각과 비슷하다.), 인간은 살고자 노동하지 않을 수 없었고, 모여 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계층이건 계급이건, 결국 사람 위와 아래에 각각 사람이 또 있으며, 좋든 싫든 그 높고 낮음과 귀하고 천함을 가르는 기준은 예전부터 굳건히 존재해왔으나, 그 동안 나는 역사의 진보와 인간의 내재된 선함을 믿으며, 그래도 계급 사회가 끊임없이 조금씩 무너지고 변화해가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을까 싶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이틀 연속을 마신 술이 머리 한 쪽을 갉아내는 듯했는데, 거기서 나는 사실 그 이전의 사회에서는 감히 계급 이동의 꿈조차 꿀 수 없었지만, 이제는 계급 이동이 가능하다면 상상이나 할 수 있는 그 정도의 여유가, 실상은 우리가 이룩한 진보의 전부가 아니었을까, 예나 지금이나 아주 특별한 이들만이 가능했던 소수의 계급 이동에 우리가 취해서,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고, 마음껏 노력하면 신분 상승을 할수 있다고, 그런 꿈을 꾸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는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제는 사랑조차 경쟁해야 하고, 1초에 계산을 십만번이나 할 수 있는 기계와도 경쟁해야 되는, 이 무서운 시대를 버텨낼 수 없으니까, 저 자본가들은 우리에게 그저 더이상 노동하지 않아도 된다는 꿈이라도 꾸게끔 해준 것은 아닐까, 별 그런 생각을 하면서, 팥빙수를 먹고, 술상을 치우고, 아기 기저귀를 갈고, 옷을 갈아입히고, 나도 또 쿨쿨 아내의 곁에서 잠들어버렸다.
결국 주말에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셈이다. 자전거라도 좀 타고 싶었고, 책도 좀 읽으려고 했는데, 여유가 조금 생겼을때, 커피 사다가 아내와 함께 세븐 원더스 듀얼 한 판 한 것이 전부다. 세븐 원더스 듀얼은 세븐 원더스 라는 문명 건설 게임에서 갈라져나온 2인용 게임이다. 상대의 차례를 갉아먹는 재미가 있기 때문에 이름을 날리다가 아예 제조사에서 2인용 게임을 따로 만들어주었다. 늘 게임을 사오고, 설명을 잘하는건 나지만, 지는 것은 언제나 나다. 그러므로, 게임 한 판을 해도 승자와 패자가 갈린다. 나는 내 딸이, 최선을 다해 살아도 패배 때문에 비참해지지 않는 세상에서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딸이 도복 띠를 매고, 글러브와 레거스를 찬 채 경기장으로 나가게 된다면, 나는 그 앞에서 패자에 대한 자비나 여유를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자신의 잉여를 생존 이외의 영역에서 소비할 수 있는 부유층만이 기부의 사치를 부릴 수 있듯이, 약자를 배려하려면 내가 먼저 강자가 되어야 한다는 모순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말하자면, 약하기 때문에 강해지려고 하고, 또한 서로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연대할 수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제는 다시 무언가를 해야할 때이다. 일단은 빨리 태권도를 하고 싶다. 몸이 늘어지니 자꾸 머리도 마음도 더욱 늘어진다.
그러므로 불비불명(不飛不鳴)의 고사를 정말 좋아한다. 사내대장부라면 마땅히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 충신 대부 오거가 3년 동안 날지도 울지도 않는 새에 빗대어 초 장왕의 방탕을 꼬집자, 장왕은 그 새가 한 번 날면 하늘을 놀라게 할 것이요, 한 번 울면 사람들이 다 놀랄 것이다, 대꾸한다. 사실 그는 3년 동안 방탕을 가장하여 진정 나라를 생각하는 충신들을 골라내고 있었으니, 훗날 초 장왕은 천하의 혼란을 평정하고, 주나라를 위협하면서 하늘이 내린 솥까지 탐내는 춘추오패 중 하나가 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사내대장부가 진짜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