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말과 현실의 간극처럼.

by Aner병문

김훈 선생의 칼의 노래, 에서, 충무공께서는 늘 전장의 사선을 넘나드셨으나, 뜻밖에도 내륙의 고향에서 그보다 먼저 죽은 아들 면을 기억하며, 고향과 처자식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칼부림을 다했던, 아들의 검술을 떠올린다. 실록이나 난중일기에서는, 실제로 서른이 넘어 무과를 준비하시느라, 전략에서는 대단하셨어도 개인의 무용은 그다지 출중하시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좌우지간 소설 속 충무공께서는, 죽음의 직전에서 살기 위해 부딪혔던, 아들의 검이 그리던, 점과 선과 면에 대하여 오랫동안 생각하시었다. 따져보면, 누구나 링 위에 올라가기 전에는, 아니 설사 길거리의 몸부림일지라도, 자신의 의지처럼 몸이 움직이고, 또 그 움직임의 결과가 내가 원한대로 나온다고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매주 금요일마다 사내들끼리 아무런 장비없이 땀을 뿌리면서, 멍이 들고 피가 나도록 맨손발을 부딪히지만, 내 공격의 정점과 상대 공격의 정점이 서로 부딪는 점의 교차라든가, 손발이 그리는 호선 이전에 다른 선이 먼저 그어져 끊어지거나, 혹은 점과 선이 통과할 수 없는 넓적한 면으로 방어하는, 그 모든 모습들은, 모두 생각할 수 있고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 지언정, 끝내 몸으로 매번 재현할 수는 없을 터이다. 그러므로 모든 공부와 사랑처럼, 결국 무공도, 이상과 현실은 차이가 있다.



맹 서방이 오늘 결혼했다. 허리가 한 줌처럼 가늘고, 아직 어린 티가 나는 제수씨와 함께 결혼하여 입이 찢어지도록 미소가 가득하였다. 아내는 내 어깨에 턱을 대고, 아이고, 우리도 4년 전에 저랬었는데, 벌써 소은이 저래 크고, 시간이 이래 지났다 아입니까, 하면서 작게 웃었다. 과연 커다란 교회에서의 결혼답게 주례를 맡은 목사님은 젊고 재치가 있으셨고, 축가를 부르는 젊은 형제자매들도 재기발랄하시었다. 아무도 술을 마시지 않는 결혼 피로연장에서, 나 혼자 뷔페 음식으로 소주 두 병을 비우면서, 나는 사실 안주보다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을 곱씹고 있었다. 하객 여러분, 신랑신부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상대 때문에 행복하려고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주기 위해 결혼하는 것입니다. 나는 언제나 말과 글을 통해, 늘 아내에게 행복을 주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나 정말로 그랬던가? 상대의 움직임을 읽기 전에 내 공격을 먼저 퍼붓거나, 상대의 속임수에 넘어가 먼저 방어를 취하다 당하듯이, 혹은 그런 뜻이 아닌 글을 오역하여 잘못 이해했듯이, 나는 내 아내의 뜻보다, 내 외로움과 답답함에 먼저 치여 아내를 힘들게 한 적은 없었던가? 내 모든 태권도의 점과 선과 면이 칸딘스키의 그림처럼 올바로 그려진 적이 없었는데, 하물며 내 삶은 과연 내 뜻대로 가던가? 무엇을 읽고 쓰고 배우건간에, 꾸역꾸역 처넣던간에, 혹은 술을 마셔 잊던 간에, 나는 내 삶을 제대로 버티고 채운 적이 있었나? 알 수 없다. 나는 아무 것도 몰라서, 늘 읽고 쓰고 땀을 흘리고, 술을 마신다. 아내는 잠시 회의에 갔다. 나는 너가 아내 먹으라고 보내놓은 아이스크림 케잌을 냉장고에 넣어놓고, 잠시 끄적거리고 있다. TV에서는 보헤미안 랩소디가 흘러 나오고 있다. 노래만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내조차도, 제 삶의 시작과 끝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그의 음악은, 그의 삶을 온전히 대변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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