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세번째의 결혼기념일.

by Aner병문

중국 식료품 점에서, 그림도, 한자도 그럴듯한 혁명소주 를 샀을때, 그 기대와 달리 나는 하룻밤 새 그 한 병을 다 마시지 못했다. 늘 마시던 56도짜리 고량주보다 훨씬 낮은, 40도짜리 한 병이었는데 그랬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젊은 시절 소설처럼, 서른이 넘어 혁명을 믿을 수 없는 바보처럼, 나 역시 그런가 했다. 나는 혁명소주를, 그 혁명의 맛을, 이기지 못해 밤새 앓아누웠고, 그래도 아내와 같이 딸아이의 피부를 위하여 한의원을 다녀왔고, 삐뚜름한 바닥을 잘못 디뎌 발목이 접질린 아내를 무사히 집까지 데리고 왔다. 결국 나는 3일의 휴가 또한 제대로 쉬진 못했으나, 쉼없이 술을 마시고 잠을 잤는데, 단지 그뿐이었다. 기대처럼 그대로 이루어지는 삶이란, 정말 드물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의 마지막 술자리를, 아내와 더불어, 도장 사매들과 마친다. 내 태권도가 내 실력보다는, 태권도를 하겠다는 의지로 유지되듯이, 나의 가정도, 나의 공부도 늘 그렇다. 생각해보면, 신앙 또한, 내가 하나님께 무엇을 잘해서 아니라, 오로지 믿는다는 의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혼 생활도, 사랑도 오로지 사랑한다는 의지로부터 시작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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