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새해 복들 많이 받으셔요

by Aner병문

연말 연초에 정말이지 몸과 마음이 번잡스러웠다. 나는 능히 세 치 혀(?!)로 한 나라의 왕조차 겁박하여 물리치게 했던 인상여나 모수를 떠올렸고, 또 먼 옛날의 대륙을 떠올릴 것 없이, 우리 나라에도 강동 6주를 얻어내었던 서희와, 기름을 듬뿍 먹인 스승의 정자를 불태워 선조의 피난길을 도왔던 오성 이항복 같은 이도 떠올렸다. 고금의 외교관들을 떠올려야 할 정도로, 나는 누구 하나 특별히 잘못하지 않은 상황에서 균형을 지키고자 애썼다. 어째서 황희 정승이, 너도 옳고 쟤도 옳고 부인 말씀도 옳구나 했는지 알것도 같았고, 그렇게 해서 문제가 해결된다며 백 번도 더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



성탄 이후로도, 상황이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아니하여, 결국 나는 밧세바와 불륜을 저지르고, 그 남편 우리야를 속여 죽게 만들었으며, 그 이후로 낳은 아이를 하나님께서 친히 데려가실 때, 그러지 말기를 비는 다윗 왕처럼 술을 끊고, 면도를 하지 않고 쉼없이 기도했다. 늘 얕은 신앙을 가진 나로서는, 좀처럼 있지 아니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난생 처음으로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갈등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사람에게 구태여 말을 얹거나 징징대기를 멈추고, 아침 밤낮으로 기도문을 찾아보고, 성경을 읽고, 정말로 생각날때마다 기도했다. 밥을 줄였고, 술은 입에 대지 아니했으며, 도장에도 한 번 나가보지 못하고 아내와 아이를 돌보며 끊임없이 기도했다.



이전에도 회사 생활 때문에 힘들어 기도를 했을 때, 나는 내 기도의 한계를 명백히 느꼈다고 적은 적이 있다. 내 기도는 언제나 초월적으로 나를 사랑해주시는 분과의 대화와 감사가 아니었고, 그저 필요할때 민원넣듯 요구하고 마는 떼에 불과했다. 늘 입으로는 술을 마시면서, 내 삶을 주관하는 초월적인 존재에 대해 자랑해왔고, 얕은 학식과 신앙으로 타 종파를 서슴없이 비판하면서도, 나 스스로는 내 신앙을 돌아볼 줄 몰랐다. 정말 괴로웠던 약 2주간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내 신앙이 더 깊어지는 결과가 되었고,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불교에서 개신교로 개종했던 때와 비슷한 영적 체험을, 그러나 그 때보다는 덜 신비로웠을지언정, 훨씬 내 현실에 밀착된 경험과 은사를 받았음을 조심히 고백코자 한다.



성경에는, 고난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만사형통하리라고 했었던 구약의 요셉조차 친형제들이 그를 꾀어 노예상인에 팔았고, 불륜의 누명을 썼으며, 덕분에 몇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그 억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신약의 스데반 집사는, 신앙을 지키려다 돌을 맞아 죽었고, 사도 바울은 천릿길을 누비며 전도를 했으나, 그 스스로의 병약함은 고치지 못했다. 수없는 목사님들의 진솔한 강의를 찾아 듣고, 보고, 기도하면서, 나는 내 신앙 역시 책을 읽거나 태권도를 훈련함과 마찬가지로 몸에 배이는 훈련을 해야 함을 깨달았다. 그 동안 나도 아내도, 하나님이 주신 행복에 취해서 주변에 상처받고 외로운 사람들을 너무 몰랐다. 이는 그에 대한 깨우침과도 같았다.



나의 이러한 작은 깨우침에 제일 기뻐한 사람은 친구이자 우리 교회 목사님의 따님이기도 한 얀미였다. 그러므로 겨우 고난의 7부 능선쯤을 넘고, 양측의 감정이 어느 정도 사그라들었을때 나는 비로소 마음을 조금 놓을 수 있었다. 이제서야 나는 내 삶으로 다시 돌아와, 올 한 해, 방치해놓았던 나의 삶을 조금 더 체계적으로 살고자 한다.


다음과 같은 내용을 열심히 하고자 몇 자 적는다.


1. 아침의 시작과 밤의 마무리는 항상 진솔한 기도로 할 것

2. 쓸데없는 영상 구독 및 멍하니 있는 시간을 줄이고, 다시 철학vs철학 구판/신판 및 성경부터 시작하여 독서를 멈추지 않을 것.

3. 도장에 가건 가지 않건 태권도 훈련량을 유지할 것

4. 반주 습관을 없애고, 꼭 필요할때만 술을 마실것(이것 제일 크다..ㅋ)

5. 영어/중국어/일본어 공부 다시 시작할것(회사가 바빠져서 연말부터 잘 하지 못했다.)

6. 주변의 상처받은 이들에게 경박하지 않게 교회 다니는 사람으로서 본을 보일 것.



쓰고 보니, 이룰 수 있으려나 의심스럽다. 사실 나는 올해부터 아내와 함께 교회의 집사가 되었고(엌ㅋㅋㅋㅋ) 목사님은, 우리 교회의 올해 표어를, 앙드레 지드처럼 '좁은 문으로 들어가자!' 라고 부르짖으셨다. 책을 읽다보면 책을 틀어쥐게 되고, 태권도의 기술을 반복하다보면, 그 기술이 몸에 배어 삶의 방식이 되듯이, 우리 가족의 근본 역시 신앙이지 않으면 안된다. 연세대 신학자 김학철 선생님께서는 '기왕 술을 마실거라면, 교회 다니는 사람은 저렇게 술을 마시는구나.' 라는 본을 보일 수 있게 하면 좋다고 하셨다. 나도 그 마음이 깊이 와닿아서, 조금 더 노력해보고자 한다. 한동안 말이 없다가 이제서야 겨우 흩어지는 몇 글자를 적는다. 유용주 시인처럼, 말보다는 몸으로 부딪히는 문장을 쓰고, 그에 맞게 살아보는 사내이고 싶다. 새해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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