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독서감평)

쿠와요시 아사, 초밥집 여사장님

by Aner병문

쿠와요시 아사 지음, 정유주 역, 초밥집 여사장님, AK, 2018.



내가 잠시 밥잘하는 유진이와 함께 요식업계에 몸을 담았을때의 주방의 털보 큰형님은, 본디 음악을 오래 하시다가 본인의 손재주를 살려 뒤늦게 독학으로 요리 실력을 쌓으신 분이었는데, 그 솜씨가 범상치 않아 아주 어렸을때부터 요리를 해온 밥잘하는 유진이조차도 도장에서는 '그 솜씨가 아마 독학만으로 쌓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혀를 내두르곤 했었다. 미국 생활을 하면서 서양인들을 상대로 캘리포니아 롤 등도 오래 쥐어봤다는 형님은, 늘상 그 유명한 '초밥집 지로' 사장님을 입에 올리면서, 그와 같은 요리의 명인이 되고 싶다는 말씀을 항상 했었다. 평생을, 한 곳에서 늙어가며 오로지 요리에만 매진하는 삶. 그 아들조차도 명인 소리 들을 정도의 경력을 쌓았지만, 아직도 조심스럽게 더 나이든 아버지 앞에서 달걀만 겨우 마는 모습을 보자면, 과연 일본 사회의 어느 한 축에는 무도뿐만이 아니라, 어느 전문 분야에서건 무섭도록 집중된, 삶의 첨단부가 있구나 생각할뿐이다.



솔직히 나는 그 영화를 보면서, 아무리 내가 책읽는게 좋거나 태권도가 좋아도, 혹은 술이 좋아도, 저렇게 평생을 매진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초밥집 여사장님의 삶은, 위대한 명인 지로 사장님보다는 그 쟁쟁함이 덜할지언정 훨씬 삶의 재미가 배어난다. 초밥집 여사장님이 손수 쓴 수필의 배경인 나토리 스시 역시 실제 있는 초밥집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 회사원이었던 여사장님이 동네 초밥집 남편에게 그저 '초밥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시집와서 하나하나 밥 짓는 법, 김발 마는 법, 혹은 남편과 아들이 세대교체를 하면서 새로운 초밥을 만들어내는 풍경 등을, 노동으로 직접 다듬어낸 언어와 그림으로 써낸 모습을 보면, 미스터 초밥왕처럼 소년만화스러운 극적인 전개는 하나도 없지만, 이 것이 바로 초밥의 세계구나, 이것이 바로 요리의 세계구나 를 금방 납득하게 된다. 아마 태권도와도 분명 맞닿는 부분이 있을 터이다. 우리의 찌르기나 뚫기, 차기가 언제나 매번 극적인 필살기가 아닌 것처럼.



초밥을 다루는 요리물들을 볼작시면, 꼭 '날생선 잘라서 밥 위에나 올려놓은 요리' 라며 초밥을 폄하하는 다른 요리인들이 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조경규 선생조차 '요리의 기술을 많이 쓸수록 더 좋은 요리라고 생각한다' 는 개인적 의견을 밝히셨다. 초밥의 장점은 살아 있는 생명은 직접 손으로 다듬어, 그 손으로 다시 앞에 있는 손님에게 내놓는다는 점에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한때 내가 몸을 담았던 바Bar 의 세계와는 또 다르다. 술의 은근한 스밈과 다르게, 초밥에는 한 사람의 삶을 지탱해주는 든든함이 있다. 곧 출근해야 하는데 벌써 배고파졌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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