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관대함에 기대는 삶.

by Aner병문

겨우 마음의 번잡스러움을 걷어치우고, 혹시나 또 삶의 변동에 따라 마음이 날뛸까 기도로 누르면서, 나는 다시 글을 읽기 시작했다. 늘 해마다 강신주 선생의 방대한 대표작을 구판 신판으로 나누어 대조해가며 읽었지만, 그러다보니 용두사미마냥 후반부는 거의 기억나지 않을때도 있고, 학창시절 수학의 정석마냥 집합 부분만 늘 더러운가 싶기도 하여 이번에는 기억이 흐릿한 중반부터 더듬어 읽기 시작하였다.



싸르뜨르는 존재보다 선행하는 본질을 가진 사물과 무한한 가능성을 지녀 본질이 정해지지 않은 존재인 인간을 구분했다. 그러나 알뛰쎄는 인간은 이데올로기에 호명된 구조적 존재이며, 이미 역할이 정해진 연극 배우처럼 그 무대를 망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타의적 개체라고 지적했다. 종밀 스님은 사람의 마음은 거울과 같아 거울에 비치는 인식에 사로잡히지 않으려 노력해야 하지만, 임제 스님은 사람의 마음이 거울이라고 여기는 생각 자체가 집착이라고 꼬집었다. 러셀과 크립키는 고유명사와 일반명사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단순한 언어 표현 하나가 얼마나 큰 폭력을 야기시킬 수 있는지 분석했으며, 칸토어가 무한을 연구한 이후로 힐베르트와 브라우어는 수학의 공리와 철학의 기초를 연결시키려 했다.


여하튼 아침에 일어나서 훈련 시작하기 전에 그림으로 읽는 구약 이야기 와 아침에 한 절씩 책을 먼저 읽고, 이어서 훈련을 하고 밥을 먹고 씻고 출근하는 편인데, 막 책을 읽고 몸을 풀려는 사이에, 갑자기 뉘가 아침 댓바람부터 딩동딩동 초인종을 울렸다. 누구지 싶어 바깥 화면을 보니, 곱슬머리에 서글서글 키가 크고 잘생긴 젊은 남자가 거친 눈동자로 나를 노려다보는 듯 눈빛이 매웠다. '저기요, 저 쓰레기 치우는 사람인데요, 여기 애 키우시죠?' 사실 뒤이어 설명하겠으나 잘못한 건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아, 아니오, 안 키우는데요' 하려다 그래도 양심이 있어 '아, 예, 맞습니다, 무슨 일이 있는지요?' 되물었다. '일단 나와서 설명 좀 들으셔야겠는데요.' 하여 두 말 않고 나갔다.



사실 쓰레기는 종량제 봉투에 버려야 하고, 재활용품은 따로 버려야 한다. 재활용품은 상자에 담아서 따로 버리긴 했지만, 그 외의 쓰레기들은 솔직히 귀찮아 아기 기저귀며 온갖 생활쓰레기들을, 늘 있는 비닐봉지에 담아 새벽녘에 쓰레기 버리는 곳에 버렸던게 벌써 몇 달 되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버리거니와 나 역시 그 동안 별 말이 없어서 잘 넘어갔는데, 그 동안 버려온 양들이 점점 많아졌는지, 마침내 청소하는 선생이 나를 불러낸 것이다. '그동안은 제가 여기 애 키우는 거 알고 있어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진짜 양도 너무 많고, 제대로 묶지도 않으셔서 기저귀 다 바깥에 굴러다니고 하길래 할 수 없이 이제 말씀드리는거예요.' 하면서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시는데, 솔직히 낯이 다 뜨겁고 민망했다. 그동안 한 기도며, 읽은 책이며, 연습한 무공이 다 무슨 소용인가, 난감하기 이를데 없었다. 잘못하긴 잘못한거니까 깍듯이 고개 숙여 잘못했다고 하고, 앞으로는 꼭 종량제 봉투에 버리겠다고 말씀드렸다. 젊은 선생 역시 크게 탓하지 않아주시고, 다음에는 꼭 그렇게 해달라며 선선히 떠나셨다.



여하튼 민망하기 이를데 없었다. 올라와서 막 훈련하겠답시고, 탁자에 치워놓은 두꺼운 책들이며 성경이 무색할 정도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느끼는 바도 잇었는데, 그 청소하는 선생 역시 애 키우는 집이겠거니 하면서 몇 달 동안 참아주셨다는 관대함이 고마웠다. 결국 혼자 사는 세상은 역시 아닌 터이다. 그러므로 나 역시 타인을 탓하지 않고, 나를 참아주고 기다려주는 이들의 관대함이 있어 여지꺼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게 되리라 다시 한번 믿게 되었다. 다시 한번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술은 술잔에, 쓰레기는 종량제 봉투에...!!! 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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