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독서감평)

2020년 김유정문학상 수상집

by Aner병문

정지아, '우리는 어디까지 알까' 외


늦은 설 인사를 드릴 겸하여 여고 동창 결혼식을 맞아 준비한다는 아내를 먼저 보내고, 나도 주말에 아내가 미리 끊어주신 KTX표로 처가를 다녀왔다. 이틀 못 본 새에 딸에게는 희한한 버릇이 생겼는데, 낯선 이들이 오면 그들이 지나갈때까지 겁을 먹고 멈춰 부모의 다리 사이로 숨은 뒤 찡찡대는 낯가림 정도는 알고 있었으나, 요즘에는 손을 가리거나, 겁을 먹어 부모의 손을 놓기도 싫으면 제 눈을 꾸욱 감아버리는 것이었다. 이 무슨, 저 숨는다고 머리만 땅에 박는 타조도 아니고, 눈만 감으면 사람이 없다고 생각치도 않을텐데, 그러다 슬그머니 실눈을 뜨고 낯선 이가 갔나 살피다가, 고 귀여운 모습에 사람들이 벙긋거리며 아직도 저를 에워싸고 있으면, 도로 눈을 감고는 그예 키도 작은 애비의 어깨에 얼굴을 푹 파묻어버리었다.



감각이 존재를 보장해주는가? 불교에서는 오래전에 이미 공(空)의 개념으로 감각기관으로 인지하는 속세의 무상함을 말했고, 서양 철학 역시 칸트 이후로 본격적으로 감각을 넘어선 존재자 자체에 대한 탐구에 들어건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지 못한다 해도, 뉴스에 나오지 않는다 해도, 세상의 차가운 그늘과 휘어진 웅덩이는 늘 있다. 문학의 역할 역시, 이러한 사회의 뒷그늘을 긁어주고 파헤치고 보여주는데 있다.



어떤 문학상 수상집을 꼭 집어 보지는 아니하나, 생전의 김유정은 이미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시대를 앞서간 츤데레' 점순이가 등장하는 동백꽃, 또한 해학의 극치를 달리는 금 따는 콩밭, 어떻게든 시집 가고 싶어 아비지와 애인 사이를 은근히 충동질하는 또다른 점순이가 등장하는 봄, 봄. 중학생 때읽었으나 아직도 제법 야하게 느껴지는 소낙비- 등으로 목가적이고 농경적인 작품을 써낸데 비해 실제로는 아쿠타카와 류노스케를 연상시키도록 음습한 정열을 가진, 병약하면서도 완고한 사내였다. 당대의 예인이었던 박녹주 선생을 향한 뜨겁다 못해 끝간데 모르는 소유욕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런가, 김유정문학상의 수상작들은 좀처럼 목가적이고 토속적이라기보단, 역시 다른 문학 작품과 비슷하게, 현실의 외로움, 부조리함, 불편함, 간극 등을 여과없이 다룬다.



생각해보니 한동안 소설을 많이 읽지 않은 탓인지, 읽는데 탄력이 붙지 않았다. 특히 '신세이다이 가옥' 같은 경우에는, 심사평을 보고 나서야 이 소설이 가진 상징성과 의미를 명확히 알기도 했다. 심사평에서는 당 작이 '가부장제에 편입된 조모에 대한 서사를 보여줌으로써, 여성이 어떻게 남성우위의 공범이 되는가' 를 보여준다고 했다. 나는 어른이란 원래 그런거 아닌가,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오히려 입양아의 귀향 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집중했었다. 반면 '연수' 같은 작품은, 나 역시 운전에 서툴기 때문에 재미나게 읽었는데, 심사평에서는 여성 운전 강사와 운전 말고는 무엇이든 잘하는 엘리뜨 여성과의 운전 강습을 통해 '새로운 여성끼리의 연대' 를 보여줬다고 평했으나, 내가 보기엔 비혼을 매개로 친어머니와도 관계가 멀어져가면서, 자신이 모르는 또다른 영역에 대해서는 어머니처럼 다른 여성에게 기대는, '어쩔 수 없는 관계의 갈구' 를 보았을 뿐이다. 물론 에릭 가다머의 말처럼, 예술에 의도적인 공백은 각 독자나 관람자의 해석으로 채워지는 것이지만, 한동안 문학을 꾸준히 읽지 않은 티가 드러나나 싶어 잠시 숨을 골랐었다.



포항 처가를 오며가며 모처럼 책을 읽었다. 날이 밝으면 또 도장을 가고, 술을 마셔야 한다. 무엇이든 오래 반복해야 몸과 마음에 스민다. 이번 3주 간의 여유를 모아서 조금이라도 더 습작을 이어나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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