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ITF태권도 925일차 - 태권도를 접근하는 3가지 방식
어제, 나는 아내에게 어렵게 허락을 얻어 도장에 하루 반나절 정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지난 화요일 목요일을 모두 아내의 허락을 받아 퇴근 후 도장에 가 있었기 때문에 사실 아내로서는 나와의 한 주, 또한 육아에서의 귀중한 짝꿍을 태권도장에 잠시 내준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내는 오늘 내가 퇴근하고 돌아와보니 유독 피곤해하였다. 내 죄가 크다.) 내 선택이니 본업을 병행하며 내 몸이 피곤한 것이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아내에게 다소 무리한 부담까지 지워가며 강행한 이유는 다 있었다. 이번 분기 심판 세미나와 지도자 교육, 그리고 승단 심사 도움 때문이었다. 그 동안 심판 세미나는 종종 들어왔지만, 지도자 교육은 어찌 되었긴 부사범이 된 뒤부터는 처음이고, 승단 심사 역시 부사범으로서 돕는 것은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큰 일을 겪으신 거창 사모님께서 다시금 독려하시어 3단 승단을 보신다는 것이 가장 큰일이었다. 적어도 우리 연배들 중에서는, 가장 먼저 3단 승단을 시작하신 셈이다.
그 동안 나는 약 8년 3개월 가량 사범님을 모시며 태권도를 연습해왔고, 그 이전에도 온갖 잡다한 무공들을 조금씩 손에 익혔다. 따라서 아주 어려운 고난도의 동작만 아니라면, 적어도 '할 줄 모르는' 동작은 그렇게 많지 않다. 정확히 못하거나, 깔끔하게 못해서 사제사매들에게 본이 되지 않을 따름이지, 내 스스로 방법 자체는 알고 있다. 하지만 태권도를 오랫동안 파고들면서, 점점 단순히 '이 동작을 할 줄 안다, 모른다' 를 떠나, 어떻게 하면 올바르게 잘하는 동작인지, 또 타인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시간이 늘게 되었다. 이 것은 단순히 내가 기술을 할 줄 아는 것과, 상대에게 실제로 적용하여 효과를 보는 것 이상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 점에서 이번 분기 교육은 나에게 하나 같이 소중한 내용들이었다.
일단 심판 세미나는 서산 도장 개관으로 여념이 없으신 벽돌 사범님께서 진행해주셨는데, 나는 이 때 태권도를 접근하는 방식이 여러 가지 있을 수 있겟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즉, 단순히 태권도를 할 줄 알고, 사용할 줄 아는 선을 지나, 적합한 기준 안에서 상대의 틀이나 맞서기를 평가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곽선생이 학생들에게 융합과학과 관련된 작문 숙제를 내준다며 평가 기준을 뭘로 하면 좋겠냐고 자문을 구하기에, 간단하게만 말해준 적이 있다. 먼저 문제를 내고, 네가 모범답안을 내면, 그에 미달되는 답안들과의 차이점이 자연스럽게 기준점이 될 터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동작을 심사하게 된다는 것은, '잘하는 태권도' 가 무엇인지 알고 적용할 줄 안다는 점이다. ITF태권도의 맞서기는, WT태권도와 유사하게 점수제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용할 수 있는 부위로 타격 가능한 곳을 '흔들릴 정도로' 치면 그에 따라 점수가 나뉘며, 하지 말아야할 행위를 할때 주의, 혹은 감점으로 판정한다. 틀은 힘, 기술, 균형 크게 3가지 분야로 각 5점씩 채점하는데, 이 중 균형에는 ITF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싸인 웨이브가 포함된다. 즉, 이러한 심사 기준을 알게 되면, 내가 태권도를 할때에도 무엇을 빠뜨리는가, 혹은 무엇을 과하게 하는가, 놓치지 않을 터이다.
사범님이 직접 전수해주신 지도자 교육 또한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동안은 그저 수련자일 뿐이라서, 사실 딱히 신경쓰지 않았는데, 지도자 교육 역시 태권도를 전혀 다르게 접근할 수 있는 또다른 방식이었다. 영상을 보고 틀의 동작을 따라할 수 있는건 누구나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도장으로 찾아오는 의미가 없다, 지도자는 영상 이상의 내용을 전달 할 수 있어야 하는 사람이며, 그러려면 동작의 기본 개념과 목표, 정확한 내용을 알아야 그에 맞춰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고, 사범님은 그렇게 교육을 시작하셨다. 약 2시간 동안, 외부 사범님들은 유급자 틀 연습을, 4단 이상은 유단자 틀을, 초단부터 3단 이하는 사범님과 직접 유급자 틀을 지도받았는데, '단순히 할 줄 아는 동작' 을 넘어서, 이 동작이 왜 필요하며, 어떤 목표로 쓰이는지, 왜 다르게 하면 안되는지를 아주 철저하게 지도받았다. 이 두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동안 내가 8년 3개월 동안, 아니 스무살부터 시작하여 오랫동안 반복했던 다른 무공들 또한 그저 자기 만족에 지나지 않았던가 자괴감이 들었다. 다른 무공을 배웠을때도 우리 사범님처럼 내게 잘 지도해주시던 명인들이 분명히 숱했을텐데, 그저 열심히, 오래 반복만 하면 되겠지 하는 아집이 결국 나를 어느 한 무공에 정착하지 못하게 하다가 이제서야 겨우 나이 들어 깨닫게 만든 셈이다. 특히 이미 도장을 운영하고 계시거나 클럽을 지도하고 있는 다른 유단자들에 비해, 나는 일반 수련자로서 도장을 돕기 위해 발탁된 셈이라, 이미 동작의 이해도나 숙련도는, 젊은 태권도 전공 출신의 다른 이들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더 올바른 방식으로, 더 많이, 더 열심히 정확하게 훈련하는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결심은 승단 심사 도움에도 역시 이어졌다. 칠순의 나이에 기어이 10회전의 맞서기를 모두 해내신 칠순의 커례 선생님, 그 외의 중년의 조 선생님, 정 선생님, 젊은 한재 동생 사제와 거창 사모님 모두 기어이 승단 심사를 모두 통과했다. 특히 그 어려운 고당 틀을 끝내 잘 해내고, 맞서기 또한 여력없이 잘 해내신 젊은 거창 사모님 덕분에 우리 모두 가슴이 뿌듯했다. 나 역시 어찌, 아무리 부족한들 계속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다음주는 서산 도장 개관식이다. 시간과 여유가 되는 한 마땅히 가서, 날을 걱정하지 않고 마실 터이다. 뜻과 마음이 있는 한, 태권도를 끊임없이 해서 결코 부끄럽지 않게 살 터이다. 큰 한 단락을 넘은, 하루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