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한 도전

그때 그 순간 - "DRI 가 대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 거야?"

by 이상민


쿠팡에서 근무했던 많은 동료들이 토스로 이직하기도 했고.

지금 회사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개념인 DRI에 대해, 국내에서 가장 '제대로' 실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회사가 바로 토스다.


토스에서 말하는 DRI는 일의 시작과 끝, 그리고 결과에 대한 모든 권한과 책임을 갖는 단 한 사람이다.

하지만 상당히 많은 회사에서 이러한 개념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DRI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회사에서도 종종 권한은 없고 책임만 있거나, 혹은 단순 조율자 역할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대체 토스는 이걸 어떻게 하고 있는지, 특히 작은 스타트업 시절을 거쳐서, 지금의 모습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같이 보고 싶어서 구매한 책이다.



이 책은 2011년 봄부터, 2022년 초까지, 약 11년의 기간 동안 토스와 토스에 근무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치과대학을 다니던 토스의 창업자 이승건 대표는, 아이폰이 바꾸고 있던 세상의 변화를 느끼면서 자신도 앱 하나만 만들어 보는 도전을 하기로 결심한다. 기회비용은, 개원을 반년 미루는 것.


맘에 드는 개발자를 찾기는 지금도, 그때도 어렵지만, 이태양이라는 개발자를 만나 약 1년 동안 노력했지만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이승건은 이때 사무실 운영비 등을 대기 위해 일주일에 두 번은 의사로 근무하고 있었고, 함께 일하던 이태양은 인생을 걸 게 아니라면 솔직히 이야기해 달라고. 언젠가 치과의사로 돌아갈 거라면 자신은 여기서 그만두겠다는 말을 한다.


결국 2013년 4월 - 이승건은 비바리퍼블리카라는 법인을 설립하며, 파트타임 의사 근무를 그만둔다.


이후 맘에 맞는 초기 멤버들을 만나서, 오프라인 만남을 친구들과 공유하는 SNS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어떤 주제라도 의견을 올리고 투표할 수 있는 모바일 앱도 만들어보았지만 실패했다.

이후 전 직원이 서울 각지로 흩어져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보기도 하고, 이때 '송금과 결제를 마찰 없이' 해보자는, 지금의 토스를 만든 아이디어가 처음 언급된다.


우여곡절 끝에 토스를 창업하고, 규제에 발목 잡혀 회사를 접을 뻔하기도 하고, 카카오에서 비슷한 서비스를 론칭한다는 소식에 토스를 포기하자라는 의견을 내기도 하며 고생하지만, 결국 2015년 토스 서비스가 정식 출시하게 된다.


이후 회사가 조금씩 성장하며, 토스 용어로는 Silo, 업계 용어로는 Squad 혹은 Agile 조직 구조를 만들며, 제품의 목적에 따라 구성된 단위 조직이 마치 하나의 스타트업처럼 독립성과 완결성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낸다. 이 사일로는 제품의 목표, 실험 과정과 일정, 예산 수립과 실행까지 온전히 전체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물론, 보안/법무/재무/인사/홍보/마케팅/사업개발/고객상담은 전통적인 팀 조직으로 남았고, 개발/디자인/프로덕트오너의 테크 조직만 이러한 조직 구조를 가져갔다.


넷플릭스의 Culture Deck을 읽은 후, 토스 역시 모든 구성원을 뛰어난 역량과 높은 책임의식을 가진 어른으로 대우한다는 기본 전제를 만들었다. 세세한 업무 지침이나 관리가 필요 없는 탁월한 인재를 채용하며, 이렇게 합류한 팀원은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받고 자율성을 부여받는다. 보고와 결재 등의 프로세스는 단계적으로 없애며, 누구든 이의를 제기할 수 있으며 결정권자 (Direct Responsible Individual - DRI)는 경청할 의무가 있지만, 그 누구도 DRI의 결정을 바꾸도록 강요할 수 없다. 결정이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피해는 온전히 회사가 감수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에는 괴리가 있었고, 야근이 권장되는 문화, 소수의 매니지먼트 팀이 중요한 일을 결정한다는 불신 - 이에 타운홀 미팅을 통해 공개적으로 설명했다.


"승리를 축하할 필요도 있는 것 같다. 목표를 달성했는데 아무도 칭찬하지 않는다."

"성장을 체감할 수 있는 셀레브레이션을 하겠다. 서로 감사하고 성과를 축하하자. 나도 각자가 잘하고 있음을 더 자주 이야기 하겠다. 하지만 우리는 앞으로 더 잘해야 할 것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파티를 열 때는 아니다."


"아무리 스타트업이라지만 고용 불안이 느껴진다."

"제대로 일하지 않는 팀원이 계속 월급을 받으며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높이는 대신 퇴사를 선택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건강한 일이다. 그러나 옆 사람의 퇴사가 과도한 불안감을 준다는 것도 인정한다. 채용 과정을 더 강화해서 해결하겠다."


"휴가 무제한이고 출퇴근이 자율이라는데 사실은 야근을 장려하는 분위기가 모순적이다."

"밤새워 일하지 않으면 죄인인 듯한 느낌이 들게 한 것은 잘못이다.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데 노력하겠다. 그러나 동시에 밤새워서 미친 듯이 하는 사람들에게 더 큰 보상을 주는 것은 필요하다. 헌신은 보상받아야 한다."


이후에도 토스는 회사가 커지고 복잡해지며 다양한 수준의 성장통을 겪는다.

특히 '속도' 만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다른 중요한 일들을 미뤄두었던 토스의 방식은 서비스 장애를 계속해서 만들어냈고, 더 이상 속도만을 보고 달릴 수는 없는 상태가 되었다.


결국 SRE (Site Reliability Engineering)이라는 팀을 실리콘밸리 테크 회사의 컨셉을 차용해 와서 신설하고, 이 팀은 빠른 제품 개발 사이클의 압박에서 벗어나 시스템 고도화와 안정적인 운영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토스는, 속도가 여전히 중요한 요소이지만, 서비스가 많아지고 팀이 커져도 아무 문제 없이 더 빠르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의견이 일치했고, 튼튼한 인프라를 만드는 데에 토스팀의 속도와 자원이 집중되었다.


이후엔 디자인이었다. 다양한 서비스를 론칭하면서, 같은 앱 안에서도 서로 다른 디자인을 가지고 있는 까닭에, 낯선 환경에서 이탈하는 사용자의 비중도 높아지고 있었다. 또한 토스 디자이너 입장에서도 정해진 스타일이 없으니 매번 같은 고민과 동일한 잡무가 반복되었다. 속도를 외치며 디자인을 아무렇게나 내버려 둔 것이 이제와서는 속도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이에 대해서 토스는 토스 디자인 시스템 (TDS)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신기한 건, 이 프로젝트의 리더가 디자인이 아닌 Product Owner였다는 점이다. 당연히 디자인팀의 반발이 컸는데,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이 디자인 조직을 대표하는 UX 헤드를 맡는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문제제기였다.

하지만 당시 토스의 구조 - 사일로 내의 PO의 힘이 막강했기에 디자이너는 PO에게 쉽게 반기를 들 수 없었고, '매출에 도움이 되느냐'라는 기준 앞에 사용자 경험을 책임져야 하는 디자이너의 목소리는 위축되었던 상황에서, 토스의 창업자 이승건은 PO들이 존경하는 사람이 디자인을 리딩하면 PO 들도 디자이너의 영역을 존중하게 될 것이라 기대했기에 그대로 밀어붙였고,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프로젝트가 되었다.


...


이 책은, 내가 회사 안에서 운영하고 있는 북클럽에서 같이 읽었던 책이기도 했다.

당시 모든 회원들이 너무도 재미있게 읽었다며, 스타트업에서 오래도록 커리어를 쌓아왔던 친구는 다시 한번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느낀다며, 책의 여러 부분을 별도로 체크해서 되짚어보며 읽기도 했었다.


나는 이 책에서 스케일업에 집중했다.

어떻게 속도 일변도의 회사에서, 속도 말고도 중요한 가치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지.

알게 된 후에는 어떻게 대응했고, 어떻게 적용했는지.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여전히 중요한 '속도'는 어떻게 유지하려 했는지.

이 책은 이러한 부분에서 하나의 중요한 레퍼런스가 되어 주었다.


...


PO 들에게 토스는 토양어선이라는 말로 불린다.

그만큼 토스의 PO는 근무 강도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

들리는 소문도 많다.

DRI 로서 최종 결정을 할 수 있지만, 실패했을 때의 회사 내의 압박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내용.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감안하더라도, '토스 출신'이라는 메리트는 여전히 크다.

다양한 협업 관계에서 혹은 커피챗 환경에서 마주치는 '토스 출신'들은, 쿠팡에서의 '정말 똑똑한 동료'와 강렬한 논쟁을 주고받았던 경험과 비슷한, 선명하고 강한 이미지를 남기는 시간들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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