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그리고 PMO의 역할

어쩌면 없어질지도 모르는, 혹은 새로운 역할로 탈바꿈할지도 모르는.

by 이상민

제조업에서의 프로젝트 관리는 두 가지의 서로 다른 방향성을 경험했다.


아주 오래전 필립스에서 근무할 때 프로젝트는, 항상 실무진들이 중심이 되어 TFT 가 만들어졌고, TFT는 실무와 프로젝트를 병행하며 업무를 진행했었다. 전문적인 프로젝트 관리의 프레임워크를 배웠다거나, PMP 자격증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고, 실무를 잘하면서 동시에 시스템적인 지식이 있으며 커뮤니케이션과 프레젠테이션에 강점이 있는 사람이 TFT에서 프로젝트를 리딩하곤 했었다. 업무량이 급격히 늘었지만 '내가 프로젝트를 리딩한다'라는 생각에 즐거워하며 야근을 하곤 했었다. 굳이 정의하자면 기능 중심의 조직이었다.


다이슨에서 근무할 때는, 모든 대규모 프로젝트는 영국 혹은 싱가포르에 있는 PMO의 프로젝트 매니저 혹은 계약된 컨설팅 회사의 프로젝트 매니저와 한국의 실무 리더들이 TFT를 이루어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필립스 시절과 달라진 점은, 내 업무는 큰 프로젝트의 한 파트로 규정되었고, 전체적인 프로젝트 일정 관리, 커뮤니케이션, 보고서 작성 및 리더십팀 보고는 모두 프로젝트 리더의 역할이었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뛰어난 프로젝트 매니저를 만나기도 했지만, 실무를 전혀 모르고 단순히 팔로우업만 하는 컨설턴트를 보며 동료들과 욕을 한 바가지 했던 기억도 있다. 이때의 다이슨은 매트릭스 조직이었다.


물론 프로젝트의 사이즈나 상황에 따라 필립스도 다이슨도 서로 다른 방법론을 적용하는 경우들이 있었지만, 내가 근무했던 당시의 두 회사의 프로젝트에 대한 접근법은 다소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양쪽 모두 공통적인 부분이 있었다면, 프로젝트 매니저 업무의 큰 비중들이 프로젝트 일정 관리, 커뮤니케이션 및 커뮤니케이션 결과의 문서화, 깔끔하게 정리된 내용으로 리더십 보고라는 부분이었다. 바로 저 업무를 위해 프로젝트 매니저가 존재하는구나라고 느낄 정도로 엄청난 문서들을 만들어냈고, 일정이 막히는 부분 혹은 예산을 초과할 것 같은 부분들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서 다시 on-track으로 만들곤 했다.


매우 중앙집권적이면서 통제와 관리 위주의 프로젝트 관리법이었고, 이러한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Waterfall 방법으로 진행이 되어왔었다.


제조업에서 이러한 프로젝트에 익숙했던 나는, 쇼피를 거쳐서 쿠팡의 PM (Program Management)으로 입사하며, PO (Product Owner) 들의 Agile로 돌아가는 프로젝트를 처음 경험하며 경악했던 기억이 있다. 작은 단위의 업무들은 계속적으로 우선순위를 바꾸어가며 실제 생명처럼 여기저기서 돌아다녔고, 빠르게 시도하고 결과에 따라 다음 액션을 수시로 바꾸어가며 진행하는 다양한 실험들을 보며 혼란에 빠졌다가, 그 모든 과정과 결과와 데이터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문서에 정리해 가는 PO 팀의 능력자들을 보며 감탄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지금의 더파운더즈.

테크 회사는 아니었지만, 스타트업의 DNA를 간직한 채 폭발적으로 성장한 이곳에서, 나는 AX를 포함한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마주하며 문득 기묘한 위기감을 느꼈다.


"이제 PMO라는 조직은 필요 없지 않을까?"


AI와 함께 바이브 코딩으로 조직의 모든 곳에서 크고 작은 규모의 새로운 솔루션들이 만들어지고 있고,

이 모든 솔루션들을 과거처럼 PMO 조직에서 통제하고 승인하는 것은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가능하지도 않으며, 조직의 속도를 늦추는 병목이 될 뿐이었다. 일정 관리와 문서 작성이라는, 프로젝트 매니저의 상당시간을 차지하는 업무를 AI가 대신하는 입장에서, 전총적인 PMO 접근법은 그 생명을 다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계속해서 고민이 이어지기에, 나만의 관점이 아닌 전 세계 프로젝트 관리의 중심인 PMBOK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을지, 그리고 업계 리더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지 리서치해본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 가트너(Gartner)와 같은 주요 연구 기관의 산업 전망에 따르면, 2030년까지 일정 추적, 자동화된 보고서 작성, 위험 계산과 같은 일상적인 프로젝트 관리 업무의 약 80%가 인공지능에 의해 제거되거나 강력하게 증강될 것으로 예측된다.

- AI 도입이 전사적으로 확대됨에 따라 기업은 데이터 거버넌스, 기술 아키텍처의 중앙집중화 대 탈중앙화 간의 갈등, 그리고 미성숙한 의사결정 구조 내에서 기존의 구조적 약점이 증폭될 위험에 직면해 있다.

- PMBOK 6판은 본질적으로 변수를 통제 가능하고 선형적인 것으로 가정하는 예측형(Predictive), 즉 워터폴(Waterfall) 환경에 맞게 설계된 방법론이었다. 이 프레임워크 하에서 리스크 관리는 상세하고 수동적인 리스크 프로세스를 수반했다. 이러한 엄격함은 명확한 행정적 경계를 제공하는 장점이 있었으나, 현대의 AI 및 애자일(Agile) 시스템이 요구하는 역동적이고 지속적인 학습 루프에는 본질적으로 적대적인 환경을 조성했다.

- PMBOK 7판은 프로세스 중심의 무거운 아키텍처를 해체하고 원칙(Principle) 기반의 접근 방식을 채택했다. 이는 규정된 프로세스의 엄격한 실행에서 성과 도메인 최적화 및 가치 제공(Value Delivery) 극대화로 초점을 전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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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신적인 기업들은 전통적인 PMO를 가치 관리 오피스(Value Management Office, VMO)로 전환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패러다임의 전환은 "프로젝트를 올바르게 수행하는 것"에서 "올바른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으로의 이동이며, 승인된 프로젝트가 측정 가능한 전략적 영향을 실제로 창출하고 있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검증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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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의 PMO 운영 환경에서는 전사적인 단일 초거대 AI 시스템을 중앙에서 구축하여 일괄적으로 통제할 것인지, 아니면 개별 애자일 스쿼드(Agile Squad)에 각자의 제품 스트림과 업무 특성에 맞춰 미세 조정된 탈중앙화된 국지적 AI 에이전트를 부여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딜레마로 나타난다. 전사적인 조직의 정렬(중앙집중화)과 현장의 민첩한 실행력(탈중앙화)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을 찾는 것은 모든 CIO와 PMO 리더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대한 과제로 남을 것이다.

- 과거의 PMO가 일정표를 검사하고 템플릿 작성법을 가르치는 '행정 검열관' 같았다면, 현대의 전략적 조언자(VMO, 애자일 PMO 등)는 실무 팀이 스스로 잘 달릴 수 있도록 돕는 '고성과 팀 코치(High-Performance Coach)' 역할을 수행한다. 프로젝트 수행 중 혹은 종료 후에 얻은 교훈(Lessons Learned)을 추출하고, 이를 조직의 시스템에 내재화하여 다음 프로젝트가 더 빠르고 안전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조직 학습을 주도한다.


...

다시 말해, 전통적인 프로젝트 관리 프레임워크는 상당 부분 해체되거나 재조정되었으며, 역할은 오히려 사내 컨설턴트 혹은 코칭에 집중하는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직이 점차 가벼워지고, 더 작은 조직으로, 더 민첩하게 움직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정말 뛰어난 전략적 인사이트를 가진 소수의 인원이 아닌, 나와 같은 '보통의 PM'들은 그 거창한 전략적 조언자가 되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그 해답을 플레잉 코치 (Playing Coach)에서 찾고 싶다.

전략적 인사이트라는 거창하지만 모호한 단어 뒤에 숨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실무의 끈을 놓지 않은 채 AI라는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 변화하는 프레임워크를 유연하게 적용하며, 동료들이 가치 있는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현장에서 지원하는 사람.


그러한 모습이 오히려 이상적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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