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믿어줬던 쿠팡의 리더들

어떻게 그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을까

by 이상민

쿠팡을 떠난 지 1년이 넘은 지금.

간혹 쿠팡에서의 2년이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다.


어느 한 사건.

어느 한 보고.

어느 한 사람.


즐겁기도 했고, 무엇보다 많이 배웠으며,

동시에 죽을 만큼 힘들었고, 동시에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던 시간들.


오늘은 쿠팡에서 나를 믿어줬던 리더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어떻게 그분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는지를 말해보려 한다.



쿠팡에 처음 입사했을 때는, 오랜만에 People Managing을 내려놓고, Individual Contributor로 들어갔다. (참고로, 피플 매니징을 한다고 연봉이 올라가진 않는다)


하지만 몇 달 후, 조직 변경이 일어나면서 동료들을 팀원으로 받아야 했고,

동시에 나의 보고라인 또한 Director와 Senior Director로 변경되었다.


두 분 다 Amazon 출신의 미국인들이었고, SCM 영역에서 나보다 훨씬 오랜 경력을 가진 분들이었다.

초반에는 이 분들이 어떠한 보고를 선호하는지 - 대면 보고, 슬랙을 통한 짧은 보고, 이메일로 구조화된 보고, Wiki 문서를 통한 디테일한 보고 - 를 파악하는데 시간을 보냈고, 그 이후에는 전형적인 쿠팡 스타일의 '지금 당장, 어떻게든, 이 모든 것을 동시에' 해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왔다.


성과를 내야만 하는 것은 기본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고, 내가 특별히 더 신경을 썼던 것들은 2가지였다.


1. 나의 리더들이 '모르는 상태'에서 공격받게 하지 않는 것

어떠한 경우에도 나의 리더들이 우리 팀의 문제를 내가 아닌 다른 팀의 에스컬레이션을 통해 먼저 듣지 않도록 하게 했다.


쿠팡은 에스컬레이션이 매우 일상화된 회사이고, 작은 문제라도 생길 경우, 너무나도 쉽고 빠르게 상대방의 임원에게 슬랙 메시지가 날아가는 곳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비즈니스 팀과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며, 내가 앉은 좌석을 일반 책상이 아닌 모두가 드나드는 라운지로 옮겼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아무런 부담 없이 내게 자신들의 이야기도 하고 궁금한 것도 물어볼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든 것이다. 나에게 질문을 하거나 간단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이제 막 입사한 1년 차 신입사원부터, 인도인 Senior Director까지 직급을 가리지 않았고, 이 안에서 수없이 많은 컨텍스트들을 들을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비즈니스 팀에서는 무엇인가 문제가 생겨서 우리 팀 리더들에게 에스컬레이션을 해야 할 경우, 내게 먼저 와서 어떠한 사유로, 언제쯤 에스컬레이션을 할 것 같다고 넌지시 말해주고 가면, 나는 그 에스컬레이션이 나의 리더들에게 도달하기 전에 내 쪽에서 먼저 아래와 같은 슬랙 메시지를 두 분 임원에게 보냈다.


"The Sales team will likely escalate the XXX issue to you very soon. The root causes are A, B, and C. I’ve already resolved A and will fix B by this Friday. However, I need your support with C, as my counterpart is not currently aligned with this solution. This affects 8 sellers with a total of 1,200 units. While the Sales team may claim a higher impact, these figures were just double-checked against the WMS."


이거면 충분했다.

이를 통해 두 분은 상대방이 갑작스럽게 문제를 제기해도 충분한 맥락과 데이터를 가지고 본인과 본인의 팀을 디펜스 할 수 있었으며, 더 나아가 모든 것이 통제 하에 있다는 신호를 강하게 줄 수 있었다.


2.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는 모습

다른 하나는, 잘못을 모두의 앞에서 인정하며 책임을 지는 모습이었다.


한 번은, 나의 팀원이 내 리더에게 슬랙으로 보고를 하던 중이었다. 리더는 보고의 방향성이 본인의 생각과 너무나도 너무나도 다르고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생각에 내 팀원을 강하게 챌린지 하고 있었다. 그걸 확인한 즉시 나는 대화에 끼어들었고 다음과 같이 전체 메시지를 보냈다.


"If the report was misleading, it is entirely my fault. I instructed him to approach this agenda this way. Please hold me accountable for this, not him. I will ensure the problem is clarified more thoroughly before giving orders next time and will not repeat this mistake."


사소한 순간이었지만, 리더들은 이를 통해 내가 잘못을 숨기거나 변명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고,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나와 나의 리더들은 어떠한 사안이라도 완벽한 솔직함으로 논의를 할 수 있었다.



신뢰는 양방향이다.

물론 이러한 나의 노력은 리더들에 대한 신뢰와 존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들은 모두에게 욕을 먹더라도 자기 팀원을 위해선 기꺼이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고,

조금이라도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해 주기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서 1:1을 통해 많은 조언을 주었고,

본인이 믿는 사람에게는 확실하게 위임해 주었다.


내가 너무 힘들다고 술 한 잔 하자고 했을 때, "지금 필요한 건 술 한 잔이 아니라 문제를 풀기 위해선 리소스" 라며 다른 팀의 헤드카운트를 빼앗아서 내게 주었던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분들과 함께했던 2년은.

내가 배우고, 성장하고, 또 즐거워했던.

그러한 시간이었다.


지금은 두 분 다 한국에 없고 다른 나라에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곧 또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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