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성경모임있는 날. 어떤 깨달음을 얻을지 기대가 된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고 이제는 믿음이 없는 이도 살려내신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말을 잘 듣고 행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솔직히 영원한 생명은 내가 원하는 것은 아니다. 이 부분에서는 불교에 가깝다. 윤회를 멈추고 카르마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불교에서는 어느 경지에 올라야 그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 과연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나는 적절한 삶을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먹고 사는데 급급해서 더 고차원적인 고민은 미뤄두고 있다. 심판이라는 말은 무슨 의미인지. 정말 악한 사람은 심판을 받는 것일까. 실제로 세상은 악한 사람이 더 살기 좋은 것 같다. 그렇게 최적화되어 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어도 십자가에 못받혀 돌아가실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신의 아들조차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이 세상이라는 공간. 솔직히 착하다는 것의 기준도 알 수 없다. 내가 있어 주위 사람들이 편하고 행복한게 착하다는 걸까. 최소한 그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예의바른 사람을 좋아한다. 그들 곁에 있으면 최소한 상처는 받지 않을 것 같다.
영원한 생명이 상처받지 않는 세상이라는 전제하에 이루어진다면 지금처럼 살면 좋을 것 같다. 그러고보니 많은 것들이 타인과 나의 관계에서 정해진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배려한다면 아마도 예수님의 뜻을 좀 따르는 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나의 새로운 계명은 서로 사랑하여라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나의 사랑은 너무나 조건적이다. 상대가 잘해주면 나도 잘해주고 아니면 나도 아니고. 이상하게 그렇게 된다. 편견없이 사랑할 수 있을까. 내겐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은 의미있다. 하지만 평생 해야할 일이다. 좀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좋겠다. 내가 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하는 것이 사랑이 맞다면 좀 더 인내심과 이해심을 가져야 겠다. 기분에 좌우되는 하루가 아니라 처음도 끝도 마음 안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