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리듬을 타라

by leaves

우주 리듬을 타라를 다시 읽었다. 처음 그 책을 읽었을때의 내가 생각난다. 내 인생 전체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차고 하루를 보내는 것이 의미없고 불안하기만 했던. 인생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말이 그 책을 설명하는데 좀 도움이 될지도. 그때와 지금이 다른 것은 별로 없다. 집에서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하고 틈틈히 책을 읽거나 글을 썼다. 어떻게 하면 그 책의 내용대로 우주의 리듬을 탈 수 있을까. 그 말이 어렵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진정한 자유를 찾고 싶었지만 그게 어딨는지 몰랐다. 디팩 초프라는 우주란 바깥에 있는게 아니라 내 안에 있다고 말한다. 나와 타인이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가 나뉘어져 있는 게 아닌 것처럼 다른 존재가 아니라고 한다. 틱낫한 스님을 비롯 그 역시 명상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이 두 사람을 멘토로 삼지만 명상이 쉽지 않다. 너무 많은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아마 명상을 제대로 했다면 내 인생이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침에 일을 하면서 잠을 깨는데 익숙해져 버렸다. 이제는 좀 바꿔 보려고 한다. 그의 말이 매혹적인 것은 저 아름다운 별과 자연이 나와 하나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갈 수 없는 신성한 아름다움이 내 것일 수 있다는 것이 나를 설레게 한다. 내게 종교가 없었다면 나는 별을 숭배했을 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변한게 없지만 내 내면은 그전보다 많이 단단해 지고 폭발하기 일보 직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다시 평화를 찾는데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것은 몇줌의 음악, 몇줌의 책, 그리고 글쓰기로 탄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여전히 순간순간 불안하고 숨이 막힐 것 같을 때도 있지만 전처럼 우울에 깊이 빠지거나 분노로 나를 불살라 버리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화를 내는 사람이 손해라는 깨달음. 내가 좋아하는 평화로운 순간으로 돌아오는 노하우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내가 행복 안에 있음을 인식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전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집 안에만 갇혀 있는 삶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그림책테라피 모임에 가고 수필모임에 가고 독서모임과 성경모임에 가면서 나에게 맞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낸 것 같다. 글을 쓴다는 것이 여전히 버겁기도 하지만 마치 논밭에 씨를 뿌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한다. 씨와 모종을 심으면 어느새 몰라보게 자라있듯이 내가 쓴 한줄한줄이 콩나무가 되어 나를 미지의 곳으로 데려다준다. 애정과 기대를 먹고 자라는 꽃과 나무처럼 나 역시 나를 들여다봐주는 문우들이 있어 힘과 용기를 낸다. 나의 글로 사람들에게 어떤 깨달음과 재미를 줄까 생각하다보면 어느새 나 자신이 성큼 자라나 있다.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되는지 새삼 깨닫는 요즘이다. 나에게도 이중성이 있나보다. 나에게 관심을 표하는 사람이 있는게 좋을 때도 있고 부담될 때도 있으니. 나 혼자 있을 때 내가 진짜인지 사람들 속에 있을때 내가 진짜인지. 그동안 나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잘 몰랐던게 아닐까. 그 속에 있으니 내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구분하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나 자신을 알아가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감동받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럼 글도 잘 써질 것 같은 느낌. 세상이 살아갈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는 걸 느끼고 싶다. 나 뿐 아니라 아이도 그렇게 느낄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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