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과 양자물리학

by leaves

융은 물리학이 인간 경험의 다른 영역에서 비인과적 과정을 생각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양자역학은 뉴턴의 인과론의 노예에서 우리를 해방시킨다. 이제 우리는 인과론을 자연의 어길 수 없는 신성한 법칙으로 이해하거나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구조화하는 유일한 방식으로 보기 보다는 하나의 방식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닐스 보어의 말을 빌려서 말한다면 "인과론은 우리의 감각 인상들을 질서에 환원시키는 인식의 한 방법으로 생각될 수 있다" 물리학에 빛을 던지는 이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세계의 본성에 대한 자신들의 깊은 신념에 비추어 비인과론을 혐오한다. 또한 몇몇 뛰어난 과학자들은 비인과론의 관념에 격렬하게 저항한다. 아인슈타인은 비인과론이 자연에 대한 근본적인 사실이 아니며 양자역학의 현대 공식에 세워진 어떤 한계이고 불완전한 것이라는 신념을 가졌던 것으로 유명하다. 자주 인용되는 그의 유명한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아인슈타인이 합리성을 신뢰했다는 것과 양자역학의 현대적 공식을 반박하고 있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해 준다. 비록 우연과 비인과론이 종종 서로 교환하여 사용됨에도 불구하고 이 둘은 아주 다른 관념과 실제를 가리킨다. 여기서 나는 물리학과 심리학 둘 다에서 우연과 비인과론 사이를 구분하고자 한다. 융이 딱정벌레의 경험이 비인과적이라고 말한 것은 그 사건에 대한 인과적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이 점에서 그는 양자물리학자와 유사하다. 그러나 그가 동시성이 의미에 대한 비인과적인 표현이라고 말할 때 목적인(final cause)이나 목적론(teleology)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융은 특히 엄격한 인과론으로부터 우리를 풀어주고 우리를 결정론의 배타적인 노예 상태로부터 자유를 주는 지적 영감을 양자역학에서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만약 그가 이것보다 더 멀리 간다면 그는 직접 물리학에서 그의 동시성에 대한 이해로 안내하는 비인과론을 요구할 수 없다. 간단히 말해서 고전 물리학이건 양자물리학이건 어떤 물리학도 우리에게 동시성을 완전히 이해하게 살 수 없다. 그러나 상대성과 양자물리학 모두 시공간, 인과론, 자연에 대한 지나친 객관적 태도, 곧 고전 물리학의 모든 유산의 절대주의적 태도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킴으로써 신비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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