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시인

by leaves

등단식에서 가장 색다른 경험은 시낭송회였다. 여러 행사가 있었는데 좋아하는 시를 낭송하시는 몇분의 진지한 모습이 자세를 고쳐 앉게 했다. 한복을 차려 입고 낭송을 하는 모습을 보니 마치 내가 구한말 시인 이상이 살던 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만큼 시낭송은 내게 아주 옛날에 했던 그 무엇이었다. 시를 좋아해서 낭송까지 한다니 나처럼 문외한은 발 들일 곳이 아닌 것 같다. 나도 가끔 시집을 읽지만 제목에 끌리거나 한두편 마음에 드는 시가 있으면 사는 정도이다. 안양시에서도 낭송회를 했는데 낭송회를 듣고 시가 더 좋아져서 혼자 낭송하는 것을 녹음했다는 분도 계셨다. 젊은이들이 이 모습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어딘가에서 약간은 과장된 시낭송회를 보고 키득거리며 웃게 되진 않을까.

수필을 쓰려니 시를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범접할 수 없는 그 상징과 감성. 나는 시를 써본 적이 전혀 없다. 작가들을 이야기할 때 소설가에 대한 이야기는 흔히 하지만 시인에 대해 이야기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다 요즘 메리 올리버와 나희덕 시인의 시에 빠졌다. 재밌는 것은 내가 오래전 우연히 알게 된 에밀리 디킨슨과 메리 올리버가 비교되곤 한다는 것을 알았다. 에밀리 디킨슨은 죽을 때까지 집에서 칩거하면서 결혼도 하지 않고 시를 썼던 은둔의 시인으로 유명하다. 메리 올리버도 자연에 둘러싸인 공간에서 매일 산책하며 자연을 예찬하고 자신의 감성으로 끌어들인 시인으로 유명하다. 그러고 보니 내 성향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난 이런 때 무척 흥분이 된다. 내가 아끼던 시인이 새로 관심을 두게된 시인과 비슷한 범주에 있다니. 마치 동시성 같기도 하다. 아니면 내 취향이 나도 몰랐지만 생각보다 분명한 것인지도 모른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 시와 쓰는 이가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를까. 이제 막 시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기분이다. 한때 좋아하는 시를 기록해 놓은 적이 있었는데 그런 나 자신을 추억하는 것조차 낯설다. 나의 수필이 시처럼 상징으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나도 칩거라면 칩거하며 사는데 시인들처럼 자기 안에서 꽃이 피고 잎이 나듯이 스스로 발아할 수 있을까. 시인의 하루는 어떤 것인지 요즘들어 더욱 궁금해진다. 이런 물음이 나를 진정한 작가로 만들어 줄런지. 일단 써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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