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센도

피아노 치는 남자

by leaves

아이와 함께 임윤찬을 다룬 다큐 <크레센도>를 보고 왔다. 아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피아노 학원. 다른 학원은 다 끊어도 그것만은 유지하고 싶어하는 아이. 그 마음을 좀 더 이해해 보고 싶었다. 물론 나도 엄마 등쌀에 피아노학원에 다닌 적이 있었지만 별다른 흥미를 못 느꼈고 엄마도 학원비가 아까웠던지 그만두게 했다. 하지만 아이가 피아노 학원에서 배운 것을 연주하는 그 순간은 가장 평화로운 명상에 들 든 것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자주 들려주지는 않는다는 것. 완벽한 연주가 안될 것 같으면 아이는 절대 연주하려 하지 않는다. 임윤찬 공연보다 더 듣기 어려운 아이의 연주. 좀 더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영화 속에서 임윤찬은 수줍은 소년미 그 자체였다. 영화는 생각보다 임윤찬의 모습을 자주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인터뷰하는 다른 연주자들에 비해 조금 어눌하고 극강의 순수함을 보여준다. 실제 그는 인터뷰에서 선생님과의 대화를 언급하며 연주에서만큼은 자신의 성격대로 하지 않고 내면에서 하고 싶어하는대로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고 말한다. 여기 관객들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받아줄 것 같다. 라는 말을 남긴다. 그야말로 예술가다운 벌언이었다. 어쩌면 나 역시 수필가라는 예술가인데 나는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연기자처럼 평소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나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희노애락 또는 아름다움. 그것을 펼칠 기회를 나도 가지고 있지 않은가. 피아노든 글이든 예술이라는 것은 분명 우리를 자유롭게 만든다. 그 매력에 빠져 우리는 포기할 수 없다. 아이처럼. 사실 임윤찬의 연주는 많이 듣지 못했다. 그간 들어왔던 피아니스트는 조성진이었다. 쇼팽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가 반 클리이번에서 연주했던 라흐마니노프를 다시 듣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작곡가이기도 하다. Piano Concerto No. 2 in C Minor, Op. 18를 듣고 있으면 나의 아주 깊은 내면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 같다. 그 곡은 마치 폭풍우 속에서 춤을 추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또 하나의 폭풍우가 지나면 그 다음 폭풍우가 쏟아지고 그안에서 춤추는 나를 발견한다.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는 열정적인 연주자들로 가득찼다. 힘들고 어려운 곡을 아무렇지도 않게 치는 것이 모두 천재소리를 한번쯤 들어보았을 것 같다. 임윤찬의 연주는 그가 상을 탔다는 걸 의식하지 않더라도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는 몰입감이 있었다. 근데 그게 힘있는 연주에서가 아니라 잔잔한 곡을 시작할 때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영화에 대해 물었더니 아이 역시 집중이 잘 되는 영화였다고 말한다. 지루해 할까봐 걱정이었는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면서 물론 아이에게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내가 해주고 싶은 이야기 중 하나는 연주자들이 매 단계를 올라갈 때마다 그들이 한 것은 연습이었다는 점이다. 피아노를 치는 것이 즐겁기만 하겠는가 무엇이든 보상을 위해서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물론 하지는 않았지만 요즘들어 학교건 학원이건 왜 가야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는 아이의 사춘기를 맞아 영화를 통해 엄마로서 노력의 중요성 그리고 예술이라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길 바랐다. 힘들면서도 그 희열에 취하고 싶어하는 것이 예술이라는 걸 알아주길 바란다. 나야말로 예술이란 무엇인가. 평소 말없고 무뚝뚝한 내가 예술과 만나면 어떤 시너지를 낼 것인가. 나야말로 나의 행보가 궁금하다. 나만의 그랑프리를 속으로 정하고 싶다. 단순히 공모전이 아니라 내가 글을 쓰면서 가질 수 있는 희열.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궁금함이 남는다. 수필을 쓰는 이들 중에 진짜 자신의 모습을 쓰지는 못하겠다고 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자신을 모두 드러냈을때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두려운 것이다. 내가 이번에 글을 쓰면서 느낀 것은 사람들은 의외로 좋은 예술에 대해 관대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글을 쓸때마다 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 같다. 그 안에는 분명 아름다움이 감춰져 있을 테니.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 나도 글을 쓰는 게 아닐까. 나의 글이 예술이 될 때까지 써봐야겠다. 연주자들이 무던히 연습을 하듯이 나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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