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나도 꽤 유명한 예술가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주로 소설가들이었고 이야기를 할 수록 재미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중엔 나와 대학시절을 함께 보낸 선배언니도 있다. 그녀가 왜 소설가가 되기로 했는지 나는 알기가 아려웠지만 그녀는 어느 순간 나의 친한 선배가 아니라 유명한 예술가로 세상에 알려졌다. 평범한 대학생에서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소설가가 되기 위해 그녀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어떻게 그렇게 변화할 수 있었을까. 나도 한때 글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녀의 소설을 필사하기도 하고 습작을 해보기도 했다. 임신을 해서도 문예창작할 수 있는 곳을 다니며 문우들을 만나고 내 소설을 좋아하는 이들도 만났다. 그때 함께 습작을 한 소설가 중에 이제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작가도 있었다. 그는 대학생이었는데 그의 꿈은 소설가였다. 나 역시 소설가가 되고 싶었지만 대학시절부터 다른 직업이 아닌 소설가를 꿈꾸는 사람이 있다는게 나로선 충격이었다. 왠지 소설가는 꿈으로 남겨두어야 할 직군에 속해 있다는 선입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내 소설을 좋아해 주었다. 그의 소설은 내게 낯선 세계를 보여주었다. 나의 에너지는 거기까지여서 난 결국 소설가가 되진 못했다. 사실 타인에게 그리 관심이 많지 않은 내가 소설을 쓰기엔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소설로 전세계를 누비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그를 멀리서 지켜보며 그와 나와의 차이점을 생각해 보곤 한다. 그는 아마도 자신이 소설가가 될 거라고 믿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과정을 즐기고 있었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한 그 문예창작 수업을 그는 벌써 세번째 듣고 있었다. 물론 우리를 가르치는 강사를 좋아해서 그런 것도 있었을 것이고 소설이 좋아서도 그랬을 것이다. 그때의 내 소설을 뒤돌아보면 어둡고 그로테스트 했다. 난 그런게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보여지는 인물의 이면에 숨겨진 어둠. 나에게 삶은 이상하고 어두운 시공간이었다. 이번에 동서문학상에서 수필로 상을 탔다. 소설로 상을 받은 이들을 보니 나이가 꽤 있는 분들이었다. 아마도 오랜시간을 포기하지 않고 줄곧 써왔기에 가능한 일일테다. 어쩌다 수필이라는 장르가 나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사실 나는 내 이야기를 하는데 서툴다. 드러내지 않고 숨기고 싶은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소설은 자유롭다. 내 이야기가 아닌 척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이런 저런 글들을 자유롭게 쓸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글은 나를 치유한다. 한바탕 쏟아내고 나면 내 머릿 속이 정리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쓸 수 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엔 별의별 일들이 존재하니 말이다. 글을 쓰고 나면 나는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된 기분이다. 내 글이 좀 더 재미있었으면 좋겠다. 하루종일 글을 쓸 수 있는 에너지를 갖고 싶다. 예술가의 삶은 어떨까. 왠지 부담이 되는 일들이 많을 것 같기도 하다. 세상에 자신을 보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보는 자기 시각이 있다는 건 현명해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말인 것 같다. 현명해지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