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넷맘 Jan 18. 2021

뉴질랜드에서 아이를 잃어버렸다.

삼단분리가 되는 삼둥이, 어떻게 하죠.


“그러다 아이라도 잃어버리면 어쩌려고?”

뉴질랜드에 가겠다고 처음 이야기했을 때, 언니가 내게 던진 한마디는 차가웠다.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무작정 좋은 면만 볼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대게 사람들은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새로운 무언가에 대한 설렘을 가지고 그것을 시작하기 마련이다. 뉴질랜드로 떠나기 전 나도 그랬다. 천혜의 자연환경, 깨끗한 공기, 비교적 저렴한 학비, 그리고 층간소음으로부터의 자유. 단 2개월 만에 뉴질랜드로 떠나겠다고 마음먹은 건 이러한 뉴질랜드의 장점 때문이었다.      




아이를 잃어버린다는 상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한마디에 제대로 뒤통수를 후려 맞은 기분이 들었다. 막막함이 가슴속에 밀려들었다. 친구, 친척 하나 없는 타국 땅에서 내 아이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너무나도 두려운 일이었다. 아이는 어떻게 될까. 영어도 한 마디 제대로 못하는, 엄마의 이름조차 한국어로 간신히 이야기하는 아이를 잃어버린다면, 아이는 어떻게 될까. 아이는 국제 미아가 될 것이 뻔했다. 아이를 잃게 된 다는 건 너무나도 끔찍한 상상이었다.     




사고는 뜻하지 않는 순간에 찾아왔다. 야외에서는 아이에게서 늘 시선을 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탁 트인 공간에서 삼단분리가 되는 삼둥이를 관찰하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큰애의 학교 맞은편에는 아주 넓은 공원이 있다. 뉴질랜드 곳곳에는 Reserve/Domain이라는 단어가 붙은 자연보호구역/공원 등을 쉽게 찾을 수가 있는데, 어디를 가든 푸르른 잔디를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 집 앞, 집 안의 가든 내에도 대부분 잔디가 있다.) 잔디가 있으면 주기적으로 깎아주어야 하고 벌레도 더 생기기 마련이지만, 이 나라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푸르름을 지향한다. 요즘 불멍(불을 멍하게 바라보며 멍 때리는 것)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뉴질랜드에는 어디를 가든 풀이 있기에 풀멍을 하기에 최적의 나라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풀멍은 정말 중독적이다. 특히, 아이들은 태생적으로 풀멍을 즐기는 것 같다. 아이들의 풀멍은 조금 다르다. 아이들은 풀을 보자마자 마치 레드썬하고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본능적으로 뛰는데, 그럴 때면 그 옆을 신나게 달리는 산책 나온 개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것. 남자아이들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날도 분명히 세 아이를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평소와 조금 달랐다면 중국 엄마들 틈에서 수다를 떠느라 경계가 느슨해졌다는 것이다. 빨간 티셔츠 세 개를 부지런히 번갈아 쳐다보았다. 안도감이 순식간에 공포감으로 뒤바뀐 것은 1호라고 생각했던 빨간 티셔츠가 나를 향해 뒤돌아 본 순간이었다. 눈을 끔뻑거렸다. 돌아선 아이는 1호가 아니었다. 그저 빨간 티셔츠를 입고 있는 다른 아이 었던 것이다.     




“시완아! 노시완!”

아이를 찾기 위해 사방팔방을 뒤졌다. 어디에도 1호가 보이지 않았다. 뜨거운 것이 가슴을 적시며 심장이 세차게 요동쳤다.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았다. 도대체 아이가 어디로 갔을까. 미칠 것 같았다. 삼십 분이 일분처럼 빠르게 흘렀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그 공원을 헤집고 다녔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경찰에 신고해야 할까. 한국이었다면 어땠을까. 한국에는 적어도 실종 미아를 위해 지문을 등록하는 시스템이라도 있었지. 삼둥이를 데리고 경찰서에서 아이들의 지문을 등록했던 기억이 난다. 그게 아니더라도 한국에는 길거리 곳곳에 CCTV가 있기에 아이를 찾기 좀 더 수월할 것이다. 그러나 이 광활한 나라는 어느 곳에서도 좀처럼 CCTV를 찾을 수 없다. 막막함이 밀려들었다. 혼미해진 정신 사이로 출국 전 언니의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새어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게. 그러다 아이라도 잃어버리면 어쩌려고......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타카코의 전화였다. 그녀는 내게 삼둥이와 함께 있냐고 물었다. 자신의 친구가 삼둥이 중 한 아이를 길거리에서 보았는데 울고 있는 아이를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타카코에게 물어본 것이었다. 타카코의 친구 엄마와도 안면이 있는 사이었다. 예전에 삼둥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갔을 때 만났던 기억이 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넓은 공원을 벗어난 아이는 공원을 따라 나있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녀가 만약 아이를 알아보지 못했다면 정말 대형사고가 날 수도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시완이가 내 품에 안겼다. 그새 아이의 머리칼에는 진득한 흙이 군데군데 묻어있었다. 아이를 안아주며 아주 어렸을 적 어린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당시 네 살이었던 나는 가족을 따라 화진포 해수욕장으로 여름 피서를 떠났다. 해수욕장에는 전국 노래자랑이 녹화되고 있었다. 수많은 인파가 해수욕장을 감쌌다. 사람들의 함성과 열기에 누가 사라져도 어색하지 않을 그런 날이었다. 시완이의 호기심은 어쩌면 나를 닮았을지도 모르겠다. 어린 나는 네 살의 시완이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엄마가 나를 찾은 건 전국 노래자랑 무대 위였다고 한다. 머리는 모래 범벅이 되어 두 눈 퉁퉁 울고 있는 나를 어떤 시민이 발견했고 송해 할아버지께서 무대 위로 올리셨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 어찌나 크게 우는지 내가 우는 모습과 쩔쩔매는 송해 할아버지를 보며 사람들이 한바탕 웃었다고 한다.      




잠시였지만 아이를 잃어버렸던 그날,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모래 범벅이 되어 눈물, 콧물을 흘리고 있었던 네 살의 나, 군데군데 흙투성이 되어 서럽게 울고 있었던 네 살의 시완이. 두 눈을 감으면 어렴풋한 기억들이 조각이 되어 두둥실 머릿속을 떠다니는 것 같았다. 그러다 불현듯 감사함이 떠올랐다. 삼십오 년 전 엄마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도, 사랑하는 시완이가 내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누군가의 관심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린 나를 외면하지 않았던 어느 시민의 작은 관심, 엄마를 찾아주었던 송해 할아버지, 한번 본 아이를 잊지 않고 기억해준 타카코의 친구, 아이의 엄마를 찾기 위해 나에게 전화해준 타카코. 나는 다시 한번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옛말을 절감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애정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때 이후로 나는 실종아동에 대한 동영상을 자주 찾아보게 되었다. 20년 만에 모녀가 기적적으로 재회한 이야기나 프랑스로 입양된 남매가 반백 년 만에 부모님과 상봉하는 영상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물이 흘러나온다. 검색해보니 십 년 이상 장기 실종된 아이들의 수가 무려 6백 명에 이른다고 한다. 아이가 증발되는 순간 남겨진 부모의 삶은 어떠할까.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슬픔, 그 멍에를 짊어진 스스로를 죄인이라 여기며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게 살아낼 누군가를 가슴속에 떠올려본다. 그렇게 생각한다. 아주 조금만 관심을 가지자고. 타인에 대한 작은 관심이 누군가의 삶에 기적을 만들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풀멍. 풀을 보면 본능적으로 달린다. 그리고 구른다.


시완이를 잃어버렸던 잔디 밭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뉴질랜드 기러기, 일 년을 더 연장하기로 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